농업과 먹거리기본권의 위기 극복 위한 ‘먹거리 공동전선’ 절실

  • 입력 2023.06.18 18:00
  • 수정 2023.06.19 06:3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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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업도, 먹거리기본권도 위태로운 시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할 국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먹거리예산 229억8,000만원 삭감 등으로 응답하며 농업과 먹거리기본권 모두를 포기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농민·시민들의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농민운동 주체들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을 ‘거부’하는 투쟁을 강도 높게 전개하면서 농민기본법 제정 노력 또한 계속하고 있다. 먹거리운동 주체들도 먹거리예산을 삭감한 정부에 대한 규탄 목소리를 내며, 먹거리기본법 제정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러나 그동안 농민운동·먹거리운동 주체들의 현안과 관련해 양대 주체 간 결합 및 공동투쟁이 상시적이진 않았던 게 사실이다. 양측이 만들려는 법안을 놓고 봐도, 농민기본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 먹거리운동 주체들이 대대적으로 결합한 사례는 없었고, 먹거리기본법 제정 논의 과정 역시 농민운동 주체들이 대거 결합한 사례가 없었다. 물론 각 운동별 긴급한 현안들(양곡관리법 문제, 먹거리예산 삭감 문제 등)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은 있었으나, 농업·먹거리 문제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닌 만큼 농민·먹거리운동 주체 간 연대 필요성은 일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첫 번째 연결고리, 식량주권

연대 강화를 위해선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연결고리가 바로 ‘식량주권’이다. 특히 농민기본법안과 먹거리기본법안 모두 식량주권 달성문제를 중요한 사안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양대 법안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먹거리운동 주체들의 경우, 기후위기를 겪으며 농사가 힘들어지는 농민들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식량주권도 위태로워진다는 이야기를 계속해 왔다. 특히 최근 정부가 스마트팜·푸드테크 등 기술 만능주의적 농정을 추진하는 데 대한 먹거리운동 주체들의 대응 방안 논의가 시작됐는데, 이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식량주권 실현 방안은 ‘농촌 현실과 동떨어진 스마트팜·푸드테크’가 아니라 ‘현장 농민을 위한 농정 실천’임을 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선 ‘현장 농민을 위한 농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농민·먹거리운동 실천주체들이 함께 논의하고, 논의한 내용을 정부에 요구할 여지가 늘어날 수 있는 셈이다.

한편 농민기본법 안에는 △유전자조작물(GMO) 강력 규제 △친환경농업 확대 및 대안적 친환경인증제(참여인증) 도입 △공공급식에서의 국산 농산물 공급 확대 등 먹거리운동 주체들의 오랜 숙원이 담겨 있으며, 농민운동 주체들의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핵심 과제이자 먹거리운동 주체들도 중시하는 과제인 토종종자 사용 확대, 생물다양성 강화 등의 내용도 담겼다.

의외로 먹거리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 중 농민기본법에 이상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는 걸 모르는 이가 적지 않다는 전언도 있었다. 따라서 농민기본법 추진 주체들도 먹거리운동 동참 시민들(생협 조합원, 학부모, 도시 거주 청년, 기후정의 문제를 고민하는 시민 등)에게 농민기본법 속 내용을 더 많이 알리면 좋겠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연결고리, 생각보다 많다

농민·먹거리·환경운동 단체들이 지난 5월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정부 기후위기, 먹거리 정책 규탄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수나 기자
농민·먹거리·환경운동 단체들이 지난 5월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정부 기후위기, 먹거리 정책 규탄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수나 기자

이상의 내용 이외에도 농민운동·먹거리운동이 연결될 수 있는 고리는 많으며, 실제로 일부 시급한 현안을 통해 조금씩 양대 운동 주체들이 만나는 접점이 늘어나는 건 고무적이다.

첫째, 먹거리 안전성 문제를 들 수 있다. 특히 최근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 문제에 공동 대응하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중인데, 지난달 2일엔 농민·먹거리운동 단체들이 함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미래가 없는 윤석열정부 규탄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이날 시국선언 참가자들은 삭감된 양대 먹거리예산의 복원과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 반대, 먹거리기본법 조속 제정 및 먹거리기본권 보장 등을 함께 요구했다.

GMO 문제의 경우, 만에 하나 GMO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안전성이 검증됐다고 하더라도, 식량주권 및 중소농의 삶을 위협한다는 점에선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 매년 5월 진행되는 몬산토·바이엘 GMO반대행진을 비롯한 반GMO 투쟁은 식량주권 옹호 및 반(反)신자유주의 투쟁이란 점에서 농민운동의 가치와 연결된다.

둘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및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우리나라의 식량주권을 위협할 경제협력체 참가 반대투쟁을 들 수 있다. CPTPP, IPEF가 식량주권 및 국민 먹거리 안전성을 저해하는 내용(CPTPP·IPEF의 검역주권 훼손 등 비관세장벽 철폐 문제, 농산물 추가 수입개방 문제, IPEF의 GMO 관련 규제완화 압박 문제 등)을 담은 만큼, 농민·먹거리운동 주체들의 공동 대응 접점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좋은 사례가 있다.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지난해 4월 1일 한살림연합에서 열린 전국먹거리연대 정기총회에서 참가한 농민·먹거리운동 단체 대표자·활동가들에게 “농민·먹거리운동 주체들이 힘을 합쳐 CPTPP를 막아내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절절히 호소했다. 이에 참가자들 모두 CPTPP 반대투쟁 결합을 결의했으며, 같은 달 13일 열린 ‘CPTPP 가입 저지를 위한 전국농어민대회’ 및 이후 투쟁에 적극 결합했다.

셋째,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동대응이다. 정부와 자본이 추진하는 ‘기후스마트농업’, ‘푸드테크’ 등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근본 대안이 아니라는 데는 농민·먹거리운동 주체들의 생각이 통한다. 따라서 양측이 함께 진정한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으며, 농민기본법과 먹거리기본법도 그러한 관점에서 함께 추진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선 ‘먹거리운동진영’에 직접 포함된다곤 보기 어려운 도시의 다른 운동 주체들(환경운동·장애인운동·빈곤철폐운동 등 넓은 범위의 기후정의운동)이 함께할 수 있다. 이미 지난해 9.24 기후정의행진, 올해 4.14 기후정의파업에선 농민·도시민을 기후정의운동의 엄연한 주체로서 호명한 바 있다.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전국먹거리연대 공동대표)는 “식량주권, 지속가능한 농업·농촌, 농민의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위한 농민운동은 안으로는 농민의 협동·단결과 밖으로는 소비자 대중의 지지·연대를 조직하고 그에 바탕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경제적으로나 지역적·전국적으로나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운동은, 국민의 먹거리기본권 보장과 지속가능한 먹거리 선순환체계 구축을 위한 먹거리운동 전선에서 소비자 먹거리운동 진영과 양 수레바퀴 주체”라고 강조했다.

허 상임이사는 이어 “지역과 전국 단위에서 학교급식 등 공공급식의 계약재배·책임수매·현물조달체계 전면화, 우리 먹거리를 통한 국민 먹거리 돌봄체계 구축, 지속가능한 농업 실현, 먹거리 자급력 강화와 이를 위한 국가 책임농정 추진 등은 현 정세 먹거리운동의 집중과제”라며 “이를 위해 생산자 농민운동이 소비자 먹거리운동과 공고한 연대전선을 구축하는 것은 3농(농업·농촌·농민) 문제 해결의 당면 집중과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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