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기본법 속 ‘기본’, 식량주권과 시민 먹거리보장권

  • 입력 2023.06.18 18:00
  • 수정 2023.06.19 06:3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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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2019년 11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건강한 먹거리 정책을 수립, 시행하며 지속가능한 농업·농촌·농민을 실현하기 위한 전국먹거리연대 출범식이 열렸다. 한승호 기자
2019년 11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건강한 먹거리 정책을 수립, 시행하며 지속가능한 농업·농촌·농민을 실현하기 위한 전국먹거리연대 출범식이 열렸다. 한승호 기자

전국먹거리연대(상임대표 권옥자)가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만들었던 먹거리기본법안을 토대로, 지난 4월 2개의 먹거리기본법안(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 강은미 정의당 의원 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두 먹거리기본법안의 의미와 공통점, 각각의 특징, 향후 법제화 시 보강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먹거리기본법의 의의

지난 24일 전국먹거리연대·환경농업단체연합회·한국친환경농업협회와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먹거리기본법 제정을 위해 여야와 국회, 정부가 협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기자회견 중 조완석 환경농업단체연합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24일 전국먹거리연대·환경농업단체연합회·한국친환경농업협회와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먹거리기본법 제정을 위해 여야와 국회, 정부가 협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기자회견 중 조완석 환경농업단체연합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먹거리기본법 제정 시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인류 공통의 과제인 ‘먹거리기본권 실현’을 한국 사회에서도 법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2004년 국제연합(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세계 각국에 권고한 ‘먹거리기본권 보장지침’엔 △먹거리정책 협치체계(거버넌스) 구축 △먹거리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적 체계 구축 △먹거리 취약계층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 바 있는데, 먹거리기본법이 제정된다면 이 지침을 이행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둘째, 심화되는 먹거리기본권 위기 해결의 초석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 허헌중 전국먹거리연대 공동대표는 지난달 15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민형배 의원 및 먹거리운동단체 공동주최로 열린 ‘먹거리기본법 제정 국회 토론회’에서 국내외 먹거리기본권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을 지적했다.

위기를 심화시키는 사례로서 먹거리지원예산(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 관련 예산) 229억8,000만원 전액 삭감, 서울시의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 전면 개편 추진, 식량자급률 저하, GMO 수입 급증, 국민 영양섭취 부족자 수 증가, 심각한 아침 결식률 문제 등이 언급됐다.

영양섭취 부족자(에너지섭취 기준량의 75% 미만 섭취 인구)의 경우 2021년 기준 전 국민의 16.6%에 달했으며, 아침 결식률은 2021년 기준 전 국민의 31.7%였는데, 특히 19~29세 청년층의 아침 결식률은 53%로 절반 이상이었다는 게 허 대표의 설명이다. 이상과 같은 위기 상황을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문제 해결에 나설 장치로서 먹거리기본법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셋째, 정부 내 각 부처별로 분산·고립된 먹거리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토록 만들 매개체라는 의미가 있다. 허 대표에 따르면, 현재 국가 먹거리정책 관련 법률체계는 11개 부처 51개 법률로 분산돼 있다. 개별 중앙행정기관에 산재돼 있는 현행 법률체계로는 먹거리기본권 실현을 위한 국가정책을 체계 있게 실행할 수 없기에, 먹거리문제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법과 계획·조직(국가먹거리종합계획, 국가먹거리위원회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시민사회의 오랜 주장이었다.

먹거리기본권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

지난 5월 15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전국먹거리연대·환경농업단체연합회·한국친환경농업협회·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먹거리기본법 제정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5월 15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전국먹거리연대·환경농업단체연합회·한국친환경농업협회·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먹거리기본법 제정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그렇다면 강은미 의원과 민형배 의원이 발의한 먹거리기본법안이 공통으로 담은 내용은 무엇일까.

첫째, 먹거리기본권을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 보장한다. 강은미 의원 안 제5조에선 모든 국민이 먹거리기본권 보장정책으로부터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권리를 규정했으며, 제8조에서도 모든 국민이 먹거리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먹거리를 보장받을 권리(먹거리보장권)을 가진다고 명시했다.

특히 강 의원 안 제11조에선 ‘먹거리보장권의 양도금지’를 명시한 점이 눈에 띈다. 개별 국민이 갖는 먹거리보장권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으며, 타인의 먹거리보장권을 압류할 수도 없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먹거리보장권을 시민의 ‘천부인권’, 즉 하늘이 주신 권리로 보장하는 셈이다.

민형배 의원 안 제5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성별·신념·종교·인종·세대·지역·학력·사회적 신분·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먹거리기본권 보장을 위한 정책에서 차별받지 않고, 다양한 정책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는다”고 언급했다.

국가·지자체의 역할

양대 법안 모두 국가·지자체의 먹거리기본권 실현 의무를 규정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달리 말해 먹거리기본권 보장은 개인이나 기업의 힘, 또는 뜻 있는 사람들의 자선만으론 불가능하며, 궁극적으로 국가와 지자체가 국민 먹거리 보장을 위해 공적인 힘을 발휘해야만 가능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가가 먹거리기본권 보장을 위해 첫 번째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선 관련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일 테다. 이와 관련해 강은미·민형배 의원 안 모두 ‘국가먹거리기본계획’ 수립을 통한 체계적 먹거리정책 수립·실행을 명시한다.

강 의원 안 제12·13조에선 먹거리기본권 보장 수준 개선을 위해 10년 단위로 국가먹거리종합전략을 수립하고, 5년 단위로 국가먹거리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했으며, 민 의원 안 제7조에서도 국가먹거리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두 법안 모두 국가먹거리기본계획의 수립 주체는 국무총리로 정해놨다.

국가 차원의 기본계획 수립과 함께 병행해야 할 것은, 이 기본계획의 심의·조정·의결 및 시민과의 협력을 촉진하는 ‘실질적 역할이 가능한 기구’를 설치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두 법안 모두 국가먹거리위원회 설치를 규정한다.

강 의원 안 제20조에선 국가먹거리위원회의 역할을 “먹거리기본권 보장 수준의 개선을 위한 정책과 관련 계획 및 그 이행에 관한 사항을 심의·조정·의결하고 민·관 협력을 촉진하며, 관계 중앙행정기관·지자체 간 조화로운 정책 추진을 총괄·조정해 종합전략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민 의원 안 제14조 역시 국가 먹거리기본권 보장정책 관련 주요사항의 심의·조정 역할을 담당할 기구로서 국가먹거리위원회를 언급한다.

국가 먹거리기본권 보장정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기구로서 국가먹거리통합지원센터 설치를 명시하는 것도 두 법안의 공통점이다. 민 의원 안 제18조에 따르면, 국가먹거리통합지원센터는 △국민 먹거리기본권 보장을 위한 정책 수립 지원 △먹거리 통합정보망의 구축·관리 △먹거리정책 집행과 관련된 민간조직의 활성화 지원 및 민·관 협력체계 구축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지자체의 역할과 관련해, 두 법안은 각 지자체별 ‘시·도 먹거리위원회’ 구성을 명시한다. 시·도 먹거리위원회는 국가먹거리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각 지역별 먹거리정책의 심의·조정 역할을 맡는다. 시·도 먹거리위원으론 해당 지역의 먹거리 관련 분야를 대표하는 여러 시민을 포함시켜야 한다.

시·도 먹거리지원센터 설치를 규정하는 것도 두 법안의 공통점이다. 민 의원 안 제19조에 따르면, 시·도 먹거리지원센터는 △지역 실정에 맞는 먹거리정책 수립 지원 △국가먹거리통합지원센터와의 협력체계 구축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두 법안엔 공통으로 중앙행정기관 및 지자체에 ‘먹거리정책책임관’ 직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허헌중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먹거리정책책임관은 해당 기관의 먹거리종합전략을 효율적으로 수립·시행하기 위해 소속 공무원 중에서 지정해야 하는 직책이며, 필요한 경우 먹거리정책 관련 전문 인력을 둘 수 있다. 각 부처·기관에서마다 먹거리 관련 정책이 소홀히 취급되지 않게 하고, 국가 차원의 먹거리정책과 각 부처의 업무 간 조율을 맡는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식량주권 강조

두 법안 모두 먹거리기본권 실현의 전제조건으로 ‘식량주권’을 강조한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강 의원 안 제9·10조에선 국가·지자체가 국민 먹거리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공급기준을 정하고, 지역 농어업의 유지·발전과 식량주권 달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민 의원 안 제2조 또한 먹거리기본법의 기본이념으로서 식량주권 확보와 먹거리 자급능력 향상을 강조했다.

먹거리기본법, 보완해야 할 점은?

한편 강 의원 안 제27조에는 먹거리정책 추진 과정에서 시민의 먹거리정책 관련 의견수렴을 위한 ‘상설 숙의기구’를 설치·운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먹거리기본법이 시민의 먹거리정책 과정 참여 및 먹거리결정권 강화를 담보하려면 이 내용만으론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보희 희망먹거리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지난 4월 24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먹거리기본법 제정 국회 토론회’에서 강 의원 안의 위 ‘상설 숙의기구’ 설치 내용에 대해, 전국먹거리연대가 당초 제안한 취지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국먹거리연대의 먹거리기본법안 초안에선 브라질의 사례를 참고해 ‘전국위원회(가칭)’란 이름으로 다수의 시민이 먹거리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고민했었다. 물론 당장 그러한 구조를 현실화하긴 쉽지 않다는 고민으로 법안에선 ‘상설 숙의기구 설치’로 정리됐으나, 그럼에도 다양한 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은 보강돼야 한다는 게 이 상임대표의 주장이었다.

브라질의 경우, 4년에 한 번씩 전국에서 2,000여명(시민사회 3분의 2, 정부 관계자 3분의 1)이 모여 ‘먹거리 시민 전국회의’를 개최한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먹거리 만민공동회’라 할 수 있는데, 이 회의에선 국가 단위 먹거리·영양보장 정책을 협의한다. 이곳에서 논의되는 의제는 각 기초지자체 및 주(州) 회의를 거쳐 올라온 의제로, 전국회의에서 결정된 의제는 브라질 정부에서도 최대한 반영할 수 있게끔 체계가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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