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농업 생산비 … 턱없는 정부·지자체 지원

현장 체감 대비 소극적인 정부 대책, 농가 한숨 날로 짙어져
일부 지자체 비료값·유류비 등 추가 지원 나섰지만 ‘역부족’

  • 입력 2023.06.04 18:00
  • 수정 2023.06.05 07:05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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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2023년 광역 지방자치단체 농업 생산비 지원 사업 현황.
2023년 광역 지방자치단체 농업 생산비 지원 사업 현황.

 

농업 생산비 폭등의 파고가 농민들을 덮쳤지만 정부의 대책은 품목별 인상분을 일부 상쇄하기에도 턱없이 미흡하고, 정부를 대신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 사업 역시 규모 측면에서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요소비료 등의 원자재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고, 이는 곧장 비료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비료값 폭등은 농업 생산비 폭등의 신호탄과 다름없었고, 지난해 대선을 앞둔 시점의 윤석열 당시 후보는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선언적 발표와 함께 후보 중 유일하게 비료값 인상차액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당선 이후 직접 꾸린 예산안에서 비료 인상분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한편 농협에 그 부담을 전가했고, 이는 사실상 농업계를 무시하고 농업을 홀대하는 첫 농정행보로 발자취를 남겨 농민들의 공분을 샀다. 결과적으로는 예산을 복구해 비료값 인상분 지원을 실시했지만 현장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상 품목과 규모를 한정해 다시금 논란을 불렀으며, 농민 요구와 반발에 못 이겨 당초 제외했던 원예용 비료를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다소 미덥지 못한 모습까지 남기고 말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생산비 전 품목에 걸친 상승세가 지속돼 현장 농민들의 실정은 날이 갈수록 악화일로 그 자체이건만, 정부의 관련 대책은 비료값 인상분 지원 연장 이후 좀처럼 크게 한 발을 떼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시행한 유가보조금 한시 지원 사업이 농림축산식품부의 근근한 생산비 지원 대책의 명맥을 잇는 정도다.

반면 비료값에 이어 지난해 초부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나가기 시작한 기름값은 결국 농가의 발목을 붙잡았다. 입춘 한파로 시설원예 농가의 난방비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난해 2월, 일부 지역의 면세등유 판매가격이 1,000원선을 돌파했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오피넷에 따르면 2022년 2월 첫째주 면세등유 전국 평균 판매가는 리터당 약 951.54원으로 전년 동기 판매가인 685.56원 대비 39% 인상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급등한 기름값에 정부는 ‘유류세 인하’라는 조치를 지난해 4월 확정 지었지만, 농번기를 앞둔 시점에도 농업용 면세유에 대한 대책은 전무했다. 결국 유류세 인하 조치 밖의 면세유는 지난해 4월 기준 전년대비 최대 80%(경유)라는 인상률을 기록했고, 이후로도 일반 유류와 면세유의 가격 간극은 점차 좁아졌으며 이는 고스란히 농가 몫이 됐다.

농가 부담이 확산되자 농식품부는 지난해 말 4/4분기 중 난방용 면세유류를 공급받은 시설원예 농가와 법인을 대상으로 한 유가연동보조금 지원을 시행했다. 일반예비비 151억원을 확보한 농식품부는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간 시설원예 농가(법인)가 난방용으로 구입·사용한 면세유류 총량에 리터당 최대 130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면세유 평균가격과 기준가격(지난해 5월 유종별 평균가격의 88.5%) 차이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밖에도 직접 지원은 아니지만, 주요 농업정책자금의 금리 인하 및 원금 상환유예 연장 등의 조치도 추진 중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2023년 한 해 동안 원금 상환이 도래하는 농업종합자금(시설자금)과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후계농육성자금), 귀농 창업 및 주택구입 지원자금(귀농창업자금)의 상환을 1년간 유예할 방침이다.

2023년 광역 지방자치단체 농업 생산비 지원 사업 현황.
2023년 광역 지방자치단체 농업 생산비 지원 사업 현황.

 

대신 발 벗고 나선 지방자치단체

정부 차원의 대책에도 생산비 폭등 발 농가 경영 어려움이 지속되자 광역·기초 단위 지자체에서도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농식품부의 비료값 인상분 80% 지원 및 유가연동보조금 지원에 추가 보조를 결정한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반값 농자재 지원사업과 전기요금 지원사업 등을 실시한 광역 단위 지자체도 적지 않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강원도에서는 올해부터 ‘반값 농자재 지원사업’을 시행 중인데, 농가가 희망 업체에서 농자재 구입 시 면적별 기준에 따라 비용의 50%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다른 광역 지자체와 차별되게 비료·농약·종자·시설자재 등 전 품목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지만, 논·밭에 따라 각각 최대 30·50만원이라는 한도가 정해져 있어 실효성 논란과 함께 기존 시·군 단위 반값 농자재 사업의 위축 우려 등으로 농민단체 반발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강원도는 충남도, 전북도, 전남도,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유류비 지원사업’도 추진 중이다. 지자체마다 지원 규모와 한도, 지급 대상 기간 등에 차이가 있지만, 정부의 유가연동보조금 지원(시설원예 난방용 한정)에 자체 예산을 더해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는 방식 또는 면세유 사용대상 농업기계 등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실시된다.

지역별로 △강원도 리터당 150원(농가당 247만5,000원 한도) △전북도 리터당 91~303원(지난해 1~9월 평균 상승분의 55% 유종별 차등 지원, 농식품부 시설원예 유가보조금 지급 농가는 별도 단가 적용) △전남도 기간별 유류 인상분의 50%(휘발유·경유, 난방용 등유 대상) △제주도 리터당 38~130원(지난해 하반기 사용한 면세유 평균가격의 인상분 중 20% 유종별 차등 지원, 농식품부 시설원예 유가보조금 지급 농가는 제외) 등을 지원한다.

특히 전남도는 지난해 3월부터 트랙터 등 농업기계 42종 대상의 면세 경유·휘발유 인상분 50% 지원을 실시했고, 당초 계획보다 기간을 연장해 보조금 지급을 지속하는 한편 올해부터는 난방용 등유를 포함해 보조금을 지급한다. 또 충남도는 농기계용과 난방용을 구분해 △농기계의 경우 리터당 100원(농가 100만원·법인 300만원 한도) △난방용은 리터당 38~163원(지난해 1월 대비 올해 1월 인상액의 50%, 전기요금 지원과 합쳐 농가당 300만원·법인 500만원 한도)를 지원한다. 한편 경기도와 경남도에서도 농업용 면세유 구입비 추가 지원사업을 지난해 각각 142억원과 165억원 규모로 실시한 바 있다.

또한 충남도와 경남도, 전남도에서는 지난해 2분기 이후 매 분기마다 인상에 인상을 거듭 중인 농사용 전기요금 대책으로 인상분 지원에 나서고 있다. 충남도는 농업용 난방기를 사용하는 시설원예 농가·법인(축산농가 제외) 대상으로 킬로와트시(kWh)당 8원을 농사용 전력 사용량(을)에 곱해 지급하며, 경남도는 난방 등의 용도 및 농사용 갑·을 전기 구분을 따지지 않고 올해 1분기 전기요금 인상액의 50%를 지원한다. 경남도 전기요금 지원단가는 kWh당 12원이며, 여기에 전기사용량을 곱해 농가당 1,500만원 한도 내로 지급할 예정이다. 전남도는 농사용(을) 전력을 사용하는 관내 농업경영체를 대상으로 지난해 4분기 전기요금 인상분의 50%를 지원하고 있다.

비료값 인상분에 추가 지원을 실시하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광역 단위에선 제주도가 유일한데, 정부와 지자체·농협의 무기질비료 가격 인상분 80% 지원에 도가 10%를 추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관내 영농 여건 등을 고려해 원예용비료에 대해서도 가격 인상분의 20%를 추가로 지원한다.

아울러 시·군 및 지역농협 등에서 자체 예산으로 생산비를 추가 지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농민들은 “사용량에 비해 면세유 지원 한도가 너무 적다 보니 오죽하면 ‘차 끌고 면세유 보조금 신청하러 가는 게 오히려 적자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돌 정도다.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단 의미다”라며 “물가 따라 오르는 생산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농산물 값은 물가 따라가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수입해 끌어내리느라 안달이다. 농민더러 농사 그만 지으란 얘기밖에 더 되나 싶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강원도 춘천시청 앞에서 열린 ‘CPTPP 가입 저지! 폭등하는 영농자재비 인상분 전액 지원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 농민이 비료값 인상분 전액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4월 강원도 춘천시청 앞에서 열린 ‘CPTPP 가입 저지! 폭등하는 영농자재비 인상분 전액 지원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 농민이 비료값 인상분 전액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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