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 빼앗길 주민들 찾아오자 숨어버린 공무원들

관지미 삼킬 진천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강제수용 임박
“의견 들어달라”며 도청 찾았지만 철저한 무시만 돌아와

  • 입력 2023.03.24 09:38
  • 수정 2023.03.24 09:4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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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산업단지 개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충북 진천 사당마을 주민들이 지난 21일 청주시 상당구 충청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회의가 예정된 충북토지수용위원회에 강제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수용재결'의 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
산업단지 개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충북 진천 사당마을 주민들이 지난 21일 청주시 상당구 충청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회의가 예정된 충북토지수용위원회에 강제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수용재결'의 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마을 주택마다 산업단지 시행사의 출입 금지를 알리는 푯말에 세워져 있다. 한승호 기자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마을 주택마다 산업단지 시행사의 출입 금지를 알리는 푯말에 세워져 있다. 한승호 기자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당리 일대에 24만평 규모로 조성되는 ‘진천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건설사업의 여파로 오랜 세월 이 지역에서 농촌과 농업을 지킨 자연부락 ‘관지미(사당마을)’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들의 삶의 터전인 집과 농지를 대상으로 한 최종 강제수용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주민의 의견과 의사를 듣기는커녕 설득을 위한 노력조차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독단적 행태를 이어가고 있는 지방정부의 모습을 담는다.

사당마을 주민들은 지난 21일 오후 1시 충북도청 서문으로 향해 수용재결의 기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충북토지수용위원회는 이 산단 조성사업과 관련된 전체토지의 수용재결을 심의할 예정이었다. 수용재결이란 공익사업에 필요한 용지를 강제로 취득할 수 있는 국가의 권한에 따라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토지수용위원회가 수용과 보상에 관한 처분을 판단하는 사법적 결정 행위를 말한다.

김기형 진천테크노폴리스산업단지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주민 삶의 터전이자 우량농지(농업진흥지역)의 개발을 농림축산식품부가 허가해줬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진천군과 충북도 역시 주민들의 한결같은 요구를 묵살하고 있으며 주민들에 대한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라며 “또한 지금껏 시행사와 대책위 간의 별다른 협의가 진행되지 못했고 이제야 협의를 시작하려는 상황에 있다. 그렇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마을 주민들과 해결 방안에 대해 함께 고민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재결의 기각 혹은 연기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산업단지 개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충북 진천 사당마을 주민들이 지난 21일 청주시 상당구 충청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회의가 예정된 충북토지수용위원회에 강제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수용재결'의 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산업단지 개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충북 진천 사당마을 주민들이 지난 21일 청주시 상당구 충청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회의가 예정된 충북토지수용위원회에 강제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수용재결'의 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허공에 메아리 같았던 주민들의 의견

산업단지 개발이 결정된 시점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사업 추진은 주민들의 주장을 철저히 무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지난 2019년 말 농림축산식품부가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농업진흥구역 해제를 불허했고, 그러자 진천군과 시행사(태영건설)는 사업 면적을 축소해가며 사업을 계속 진행해 약 1년 뒤 끝내 농식품부의 동의를 얻어냈다.

최초의 부동의 결정 직후 진천군은 당시 열린 진천군의회 본회의에서 “사업시행자와 주민들 양자 간의 내용을 모두 다 저희가 들어보고 민원이 없도록 잘 추진토록 하겠다”라고 답했으나, 실제 사업계획은 결국 시행사가 바라는 대로 24만평으로 축소된 채 그대로 추진됐다. 주민들이 최초의 부동의 결정을 지지하며 공동체를 유지하고 영농활동을 계속하길 희망한다는 점은 군청 앞에서 진행된 장기간의 시위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다.

공익사업의 시행사는 토지수용 동의를 70% 이상 확보하면 공을 지방토지수용위원회로 넘길 수 있다. 부지 내 사유지 중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두 개 문중의 땅도 넘어가면서 진천군은 전체 토지에 대한 수용을 집행할 수 있도록 지난해 12월 충북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재결을 신청했고,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시행사의 보상추진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의견서 제출과 함께 출석을 통한 의견 진술의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제32조 2항에 따르면 토지수용위원회는 재결의 심리를 할 때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사업시행자, 토지소유자 및 관계인을 출석시켜 그 의견을 진술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같은 법 33조 1항에서는 재결이 있기 전 위원 3명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로 하여금 이들에게 화해를 권고하게 할 수 있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주민들이 수용에 대한 완강한 반대 의지와 함께 각종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으며, 시행사와 원주민 간의 보상 협의 역시 전혀 진척이 없을 정도로 갈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충북토지수용위원회는 직접 중재를 통한 문제해결에 나서거나 주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청취하려는 등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토지보상법은 공익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도모하고, 국민의 재산권을 ‘충실히’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즉 충북도는 비록 지자체의 의무로 명시되지는 않았을지언정, 주민의 이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법에서 마련해둔 장치를 전혀 활용하지 않은 셈이다. 주민들이 토지수용위원회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점을 알고도 개최 소식에 맞춰 기자회견을 열고 도청을 찾아 어떻게든 위원들을 만나고 의견을 전달하려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산업단지 개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충북 진천 사당마을 주민들이 지난 21일 이날 회의가 예정된 충북토지수용위원회에 주민들의 의견을 전달하겠다며 청사로 들어가려하자 도청 직원들이 이를 막고 있다. 한승호 기자
산업단지 개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충북 진천 사당마을 주민들이 지난 21일 이날 회의가 예정된 충북토지수용위원회에 주민들의 의견을 전달하겠다며 청사로 들어가려하자 도청 직원들이 이를 막고 있다. 한승호 기자

충청북도청에 충청북도가 없다

주민들은 기자회견 뒤 충북도의 입장을 듣기 위해 도청 진입을 시도했으나, 도청 출입문은 사방이 잠겨있었고 정문 앞에는 이들을 막기 위해 나온 청원경찰과 공무원들만 가득했다. 주민들은 의견 전달을 위해 출입하겠다는 의사만 표시했을 뿐, 이 시점까지 공무원들에게 위협을 가한 바 없었으며 위험물을 소지한 상태도 아니었다.

민원기 주민대책위 부위원장은 “진천군에서 우리에게 뭐 이건 이렇게 진행된다 한 마디 얘기한 적, 우리가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안내해 준 적이 있나. 공무원은 70% (수용) 됐으니까 빨리 합의하자는 말뿐이고 토지보상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 위원회가 이 사실을 알고 잘못된 점을 정정하라는 것,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을 말할 시간을 좀 벌어달라는 게 무리한 요구냐”라고 호소했으나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주민을 위하는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도적 떼냐”라고 항의하는 할머니들은 ‘청사방호’의 대상이 됐다.

이들을 가로막겠다고 나온 이들 중 정작 부서 내 업무 관련 공무원은 한 명도 없어 주민들은 비공식적인 설명조차 들을 수 없었고, 이 일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경찰관이 주민과 어딘가에 있을 책임공무원 사이를 오가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촌극만 계속됐다. ‘대놓고 무시하는 행태’라며 분노한 주민들은 진입을 시도했고, 출입문 유리창을 깨뜨릴 정도로 저항했으나 결국 도청에 출입할 수 없었으며 책임 있는 답변을 듣지도 못한 채 돌아가야만 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이 사안에 대해 “비록 출석 심리 진행이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나, 사당마을 주민들이 이 사안에 대해 매우 오랜 시간 문제를 제기했고 의견서까지 여러차례 제출한 만큼 관할 지방토지수용위원회가 더 들여다볼 여지가 충분하다”라며 “또한 청사 방호만을 이유로 도청에 출입할 권한이 있는 주민들을 무작정 막은 것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남용이라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주민대책위원회는 “시행사의 토지확보가 상당하더라도, 실제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들의 90% 이상이 합의하지 않았고 구체적 이주대책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을 감안해 수용재결 기각을 강력히 요청한다”라며 “심의연기나 기각을 통해 당사자 간 합의를 촉구하고 이를 통해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결단해주시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의견 수렴이나 중재 없이 강제수용 절차에 돌입할 경우, 사는 곳을 무덤이라 생각하고 그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든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기형 진천테크노폴리스산업단지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지난 21일 이날 회의가 예정된 충북토지수용위원회에 강제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수용재결'의 기각을 촉구한 뒤 도청 측에 주민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김기형 진천테크노폴리스산업단지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지난 21일 이날 회의가 예정된 충북토지수용위원회에 강제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수용재결'의 기각을 촉구한 뒤 도청 측에 주민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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