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사례 점철된 구례 농사용 전기 사용 단속, 논란 계속

농민들 “모호한 기준과 절차 전부 잘못됐다”

  • 입력 2023.02.12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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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전남 구례군 광의면에서 농사를 지으며 식당을 운영중인 여성농민 허성자씨가 지난달 30일 저온저장고에 보관 중인 버섯 등을 들어보이고 있다. 앞서 허씨는 한전의 저온저장고 단속에 걸려 농사용 전기가 일반용으로 전환될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한승호 기자
전남 구례군 광의면에서 농사를 지으며 식당을 운영중인 여성농민 허성자씨가 지난달 30일 저온저장고에 보관 중인 버섯 등을 들어보이고 있다. 앞서 허씨는 한전의 저온저장고 단속에 걸려 농사용 전기가 일반용으로 전환될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한승호 기자

 

구례군에서 시작돼 전남지역 전체로 확대된 농사용 전기 사용 단속과 그로 인한 농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사장 정승일, 한전)는 현실을 반영해 새로운 농사용 전기 사용 기준을 재정립할 때까지 저온저장고와 건조기에 대한 단속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농민들은 구례군에서 시작된 농사용 전기 단속의 행태가 너무 악질적이고 비상식적이라며 규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전 영업업무처리지침은 △농작물을 단순 보관하기 위해 냉동·저온보관하는 경우 △보관을 목적으로 ‘단순 가공한 농작물’을 보관하는 경우 등에만 농사용 전력을 적용토록 하고 있다. 지침에 의하면 단순 가공한 농작물은 ‘포도·양파·밤·감의 껍질을 벗긴 후 보관하거나 옥수수를 삶아 보관하는 경우’를 의미하며 통조림, 병, 비닐(종이)팩 등 농작물을 상품화된 완제품으로 보관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농민들은 한전 구례지사의 단속으로 밝혀졌듯 단순 가공 농작물의 범위가 모호하고 농민들에게 저온저장고 사용 대상 농작물에 대한 설명이나 안내가 없었던 점, 또 단속 후 곧장 위약금을 부과하고 전기 계약종별을 전환한 점 등을 지적하며 위약금 부과 취소와 관련 제도 개편을 지속적으로 촉구하는 상황이다.

 

상황 따라 깎아주는 ‘위약금’

지사장이 군민 대표 면담에서 이미 인정한 바와 같이 농업과 함께 식당 운영 등을 병행하는 농가를 특정해 진행된 구례지역 농사용 전기 단속의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위약금 부과기준이 명확히 공개되지 않아서다. 특히 한전 측에 강력히 항의한 일부 농민에겐 위약금을 대폭 감해주는 경우가 속속 확인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농민 차형용씨는 우엉과 마, 울금 등을 3만평 정도 농사지으며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 차씨에 따르면 지난 단속에서 건조·분말 형태로 가공한 농작물과 김장에 쓸 절임배추 등을 보관해 위약금을 처분받았다.

차씨는 “직원이 원물 형태의 농작물도 보관하고 있어 다른 곳에 비해 위약금이 적게 나왔다고 얘기했다. 처음에는 86만원이 적힌 고지를 받았는데, 너무 많다고 항의를 하니 18만원 정도로 깎아줬다”라며 “한바탕 위약금 폭풍이 지나간 이후 동네마다 이장님이 방송으로 단속 사실을 일러줘 대부분이 저온저장고를 자물쇠로 잠갔지만, 대체로 고령인 농촌에선 언제 다시 단속이 재개될까 하는 불안감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전했다.

마찬가지로 농사를 지으며 식당을 운영 중인 고병기씨도 “저온저장고에 김치 등의 가공품을 일부 보관해 단속에 걸렸다. 처음엔 360만원 정도를 부과받았는데 단속하고 하루아침에 300만원 넘는 돈을 내라고 하는 게 맞느냐고 계속 항의를 하니 당일 바로 송금하는 조건으로 금액을 대폭 깎아줬다”라면서 “결국 40만원 정도를 냈지만, 농사짓지 않고 구매한 농산물에도 위약금을 부과하는 게 무슨 법인가 싶다. 위약금 기준도 알려주지 않고 이런 건 보관하면 안 된다는 말도 없이 수십 수백만원의 위약금을 농민더러 내라는 건 농민을 그야말로 우습게 아는 처사다”라고 강조했다.

 

직원 재량으로 위약금 생략?

지난 2016년 구례군으로부터 지리산나물 명가로 지정받은 참새미골체험식당을 운영 중인 여성농민 허성자씨는 한창 바쁜 점심시간에 방문한 한전 직원에게 저온저장고를 보여준 후 보관 중이던 건나물과 버섯류, 장아찌 등을 이유로 전기 계약종별이 한순간에 전환 됐다. 다만 허씨에겐 위약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허씨는 “직원이 저온저장고 좀 보여달라길래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어줬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직접 재배해 식당에서 사용하는 건나물이며 버섯 등을 콕 집더니 위약금은 안 내게 해드리겠지만 전기는 일반용으로 전환될 거란 말만 남기고 떠났다”며 “봄에 수확해서 1년 내내 나물과 버섯 등을 사용하려면 건조하거나 장아찌로 담가 보관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무슨 소린가 싶었다. 또 개인이 설치한 저온저장고도 아니고 군에서 식당 운영하라고 지원해줘서 설치한 건데 갑자기 찾아와 김치도 보관하면 안 된다고 하고, 빼내겠다 했더니 바쁜 걸 뻔히 보고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들어내라고 하는 행태에 말문이 막혔다”고 토로했다.

이어 “농민들을 이렇게 잡는 법이 대체 어디 있는지 묻고 싶다. 분한 마음뿐이다”라며 “농민들이 사용료를 안 내는 것도 아니고 매달 요금은 요금대로 받아가면서 제대로 설명도 않고 갑자기 말도 없이 찾아와 단속하고 위약금을 내라는 게 참 황당하다. 왜 구례에서만 이러는지도 이해가 안 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밖에도 약 2년 전 식당 문을 연 농민 이덕재씨는 “한전의 단속이 악질적인 이유 중 하나가 느닷없이 농민을 전기 도둑 취급하며 위약금을 부과했다는 점이다. 또 단속 나온 직원이 ‘주변으로부터 민원이 들어 와 단속을 하게 됐다’는 얘길 하던데 이는 주민들을 이간질시키는 것밖에 되질 않는다. 공기업이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전은 요금업무처리지침에 따라 위약금을 부과 중이다. 지침에 따르면 한전은 고객이 약관을 위반해 전기를 사용함으로써 요금이 정당히 계산되지 않았을 경우, 정당하게 계산되지 않은 금액의 3배 한도로 위약금을 받을 수 있다. 위약금 계산은 실제 위반 기간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확인된 기간을 적용하며, 확인이 불가할 경우엔 고객과 협의해 적용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지침에는 위약 담당자가 고객에게 위약내용 및 위약금 산정 내역을 설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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