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 손 만지고 허리 안아도 … “우리 조합장님은 무죄”

성범죄 정황 명백한데도 가해조합장 두둔하는 농협 직원들

과잉충성 및 시대착오적 조직문화 … 피해자 고통은 두 배

  • 입력 2023.02.05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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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역농협들의 전근대적 조직문화는 전국에서 후진국형 사건·사고들을 끊임없이 야기하고 있으며, 그 후진성을 드러내는 정점은 성추행 사건이다. 21세기, 특히 201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성인지감수성은 전체 사회 변화의 속도를 뛰어넘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농협 조직의 성인지감수성은 아직 20세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시대에 뒤처진 농협의 모습은 대중의 눈에 기형적으로 비치고 있다.

인천지역 A축협 조합장은 지난해 12월 14일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들의 손을 잡고 팔로 허리를 휘감는 등의 성추행을 저질렀다. 이미 다수 매체에서 실제 범행 현장을 촬영한 영상이 공개돼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태다. 특히 이 조합장은 영상 속 피해자가 결혼할 때 주례를 서기도 했으며 피해자 남편과도 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피해자 측 주장에 따르면 조합장의 성추행 행태는 처음이 아니다. 영상에서 보이는 수준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은 일상적인 수준이며 아예 여직원을 끌어안거나 개인적인 만남을 제안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간의 행태들을 견디다 못한 여직원 2명이 이날 회식자리에서 영상과 사진을 찍어 경찰에 고소함으로써 사건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해 12월 14일 회식 당시 A축협 조합장이 1차 식사 자리에서 여직원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왼쪽)과 2차 노래방에서 다른 여직원의 허리를 휘감아안고 귓속말을 하는 영상 갈무리. 일부 직원들이 탄원서에서 ‘주취로 인한 실수’를 호소하고 있지만, CCTV 확인 결과 1차 식사에서 술을 마시기 전부터 계속 신체접촉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피해자 제공
지난해 12월 14일 회식 당시 A축협 조합장이 1차 식사 자리에서 여직원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왼쪽)과 2차 노래방에서 다른 여직원의 허리를 휘감아안고 귓속말을 하는 영상 갈무리. 일부 직원들이 탄원서에서 ‘주취로 인한 실수’를 호소하고 있지만, CCTV 확인 결과 1차 식사에서 술을 마시기 전부터 계속 신체접촉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피해자 제공

사건 자체도 전근대적이지만, 더 심한 건 A축협 직원들의 모습이다. 범행 영상까지 공개됐음에도 가해자를 질책하긴커녕 일부 직원들은 탄원서를 작성해 조합장을 두둔하고 있다. 제보에 따르면 애초에 A축협엔 회식 때마다 조합장 옆자리에 여직원을 앉히고 술을 따르게 하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조직 전체의 성인지감수성이 낙후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A축협 피해자의 남편인 문모씨는 “조합장이 직원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보니 대다수 직원들이 조합장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부 여직원들은 이런 문화에 순응해 승진의 기회로까지 삼으려 하는 것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A축협의 모습은 비정상적이지만 낯선 모습은 아니다. 2021년 12월 본지가 보도한 보령지역 B축협 성추행 사건 역시 똑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주취한 조합장이 여직원에게 모텔방을 잡아달라 지시한 뒤 방 안에서 추행을 시도한 사건이다.

제보에 따르면 B축협도 젊은 여직원이 조합장의 녹즙을 챙기거나, 술접대를 하거나, 1박 이상 출장에 동행해야 하는 이상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 이 사건 역시 녹음파일 등 범행을 입증할 정황증거가 충분하고 1심에서 유죄 판결까지 나온 상태지만 피해자의 편에 서는 동료직원은 없다. 몇몇 직원들은 조합장을 위해 법정 증언을 하고 탄원서를 작성하면서 피해자를 비방하기도 했다.

직원들의 ‘가해자 두둔’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이 두 축협뿐 아니라 농협 성추행 사건마다 거의 예외없이 발생하는 행태들이다. 조합장의 과도한 권력과 이로 인한 직원들의 과잉충성, 전근대적 조직문화는 이제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배모씨는 “사건도 사건이지만 가해자를 두둔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더욱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기사를 보고 농협에 개혁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협이면 지역에서 상당히 큰 직장인데도 고여 있는 문화를 깨지 못하고 있다. 좋은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위계질서에 순응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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