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어디까지 썩었나 … 조합장 성추행 또 터져

조합장·전무 여직원 성추행 및 상시적 성희롱 혐의

피해자 남동생 명의 대포통장으로 자금세탁 의혹도

잊혀질세라 터져나오는 농·축협의 엽기적 조직문화

  • 입력 2021.12.12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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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충남 보령 소재 A축협은 최근 상식을 벗어난 기형적 비리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직원들이 실수로 미환전 농협상품권 3억4,000만원어치를 폐기하자, 사고를 은폐코자 담당부서 직원들 개개인에게 인당 5,000만원씩을 대출받아 메우도록 지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상품권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강압적 조직문화를 견디지 못해 퇴사한 여직원 B씨가 성추행과 부적절한 자금처리 등 그간 본인이 겪었던 비리들을 폭로하며 고발·고소에 나선 것이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건 A축협의 조합장 C씨와 전무 D씨다. C씨는 2014년 5월 16일 15시경 술을 마셔서 쉬고 싶다며 B씨에게 모텔방을 잡아달라고 지시한 뒤, 방 안으로 들어온 B씨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자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D씨는 2018년 4월 20일 23시경 직원들과 주취 후 본인의 자택으로 일행을 초대했다가 B씨와 단둘이 있게 된 상황이 되자 손목을 잡고 침실로 잡아끌려 한 혐의다. 사건 이후 C씨가 B씨에게 “딸 같이 예뻐하는 바람에, 술 한 잔 먹는 바람에”, “보통 망신이 아니다”라며 사과하는 녹취록과 B씨가 동료직원들에게 D씨로부터 느낀 공포를 호소한 문자기록이 남아있다.

단지 1회성 사건이 아니다. 2012년 A축협에 입사한 B씨는 3선 조합장인 C씨의 임기 시작과 함께 줄곧 본점에서 근무했다. B씨는 2014년 무렵부터 최근까지 C씨로부터 당했다는 수많은 언어적·신체적 성희롱 사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B씨의 얼굴이 보고싶다고 강조하며 개인 SNS 프로필 사진을 인물 사진으로 바꿔둘 것을 지시하고 외모를 품평했으며, B씨 여동생과의 동반 식사자리를 요구해 한 차례 성사된 적도 있다.

피해자 B씨와 조합장 C씨가 나눈 메신저 내용 캡쳐. C씨가 B씨를 보고싶다고 말하며 프로필사진을 인물사진으로 바꿔놓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피해자 제공
피해자 B씨와 조합장 C씨가 나눈 메신저 내용 캡쳐. C씨가 B씨를 보고싶다고 말하며 프로필사진을 인물사진으로 바꿔놓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피해자 제공

B씨는 조합장뿐 아니라 A축협의 조직문화 전반이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보이고 있다고 호소한다. 외부손님 접대 자리마다 호출돼 술을 따라야 했던 일, 1박 이상의 출장에 ‘여자가 없다’는 이유로 소관업무가 아닌데도 동행해야 했던 일, 조합장의 아침 녹즙을 챙기는 총무과 여직원이 휴가일 때 대타로 불려올라갔던 일 등을 직장에 드물었던 ‘젊은 미혼 여성’ B씨가 감당해야 했으며, 모 상사로부터는 “커피나 타와, XX아” 라는 모욕적 언사를 감내하기도 했다. 애초에 남자 조합장이 여직원에게 모텔방을 잡아 안내하도록 요구한 것부터가 사회통념상 귀를 의심할 일이다.

자금 건은 성추행과는 또 다른 문제다. B씨는 2015년 3월경 상사 E씨로부터 ‘남동생 명의로 통장을 하나 개설해 가져올 것’을 지시받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E씨의 고압적인 성격에 못이겨 지시를 따랐는데, 최근 동생 계좌의 입출금 내역을 확인해 보니 당시 1년 반동안 A축협 위장취업의 형식으로 동생에게 약 3,000만원의 임금이 지급됐으며 이것이 100만원씩 수차례에 걸쳐 전액 현금 인출로 빠져나갔다. 비리 정황이 매우 뚜렷하며 그 주체가 개인이라면 횡령, 조직이라면 부당 자금세탁일 가능성이 높다.

돈 문제에 대한 A축협의 인식수준도 낙후돼 있다. B씨에 따르면 조합의 각종 경비를 직원 개인의 마이너스통장으로 선처리하는 경우가 많으며 최근 논란이 된 상품권 사고도 주먹구구식 관리시스템이 초래한 측면이 있다. B씨 본인도 입사 초기 자기계발비 명목으로 조합으로부터 225만원을 지급받아 다시 조합에 반납함으로써 자금세탁에 일조한 적이 있다.

지난 10일 A축협 앞에서 보령시성통합센터 주관으로 성추행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피해자 동료나 노조 등의 손길은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시민사회의 분노는 조금씩 거세지고 있다. 피해자 가족 제공
지난 10일 A축협 앞에서 보령시성통합센터 주관으로 성추행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피해자 동료나 노조 등의 손길은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시민사회의 분노는 조금씩 거세지고 있다. 피해자 가족 제공

B씨는 A축협을 퇴직한 뒤 상품권 사고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이같은 피해사실들을 털어놨고 마침내 고발·고소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검·경의 수사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피해자의 진술이 대단히 구체적이며 이 진술을 기반으로 상품권 사고의 비상식적 처리과정을 되짚어보면 A축협의 일그러진 조직문화가 일관되게 부각된다.

B씨는 “죽고싶었다. 그동안 직장에서 억눌리고 주눅들어왔고, 폐쇄적 조직이라 신고하면 나만 찍히고 불이익을 당할 걸로 여겼다”며 “언론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올라왔던 기사가 금방 내려간다. 딱히 연대할 사람도 조직도 없이 가족들과 싸워나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조합장 C씨는 성추행 혐의에 대해 “모텔을 잡아달라 해 같이 들어간 건 사실이지만 성추행도, 성희롱도 모두 사실무근이다. B씨가 3억4,000만원(상품권 사고) 문제 때문에 (악감정에) 그러는 것 같다”고 답했다. 차명계좌 건에 대해선 “몰랐다”는 입장이며 수사결과를 기다릴 뿐, 기이하게도 조합 자체적인 조사나 내용 파악엔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전무 D씨는 성추행 혐의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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