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농업결산] 2022년에도 갈 길 멀었던 ‘농산물 제값 받기’

  • 입력 2022.12.25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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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7월 1일 경남 창녕군 대지면 창녕농협 농산물공판장에서 햇마늘 첫 경매가 시작된 가운데 농민들이 전광판에 뜬 경매가를 확인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같은 달 21일엔 정부의 마늘 1만톤 수입 발표 일정이 알려지면서 창녕농협 농산물공판장에선 마늘경매가 중단되기도 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 7월 1일 경남 창녕군 대지면 창녕농협 농산물공판장에서 햇마늘 첫 경매가 시작된 가운데 농민들이 전광판에 뜬 경매가를 확인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같은 달 21일엔 정부의 마늘 1만톤 수입 발표 일정이 알려지면서 창녕농협 농산물공판장에선 마늘경매가 중단되기도 했다. 한승호 기자

비료·농약·기름값·인건비·농지임차료 등 모든 농업생산비가 유례없이 폭등했다. 정부나 농협의 생산비 보전 대책이 단단하지 못한 가운데, 농민들이 소득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는 농산물 가격이다.

올 한 해, 주요 채소류 가격은 우려에 비해선 선방한 편이지만 치솟은 생산비를 보전받기엔 빠듯하며, 그나마 농산물이 ‘물가 인상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끊임없이 하향 압박을 받아왔다. 주요 품목들이 요행히 폭락을 면했을 뿐, 농민들은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


배춧값, ‘한 달’ 폭등 뒤 기약 없는 내리막길

농업을 멸시하는 정부일수록 물가 상승의 원인을 농산물로 돌린다. 편차야 있겠지만 가계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중에서도 1~2개 개별 품목의 가격상승이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은 물가 상승 국면에서 정부가 가장 만만하게 손댈 수 있는 대상이고, 실질적 효과와는 별개로 국민들에게 ‘일하고 있다’는 겉모습을 보여주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된다.

정부 물가안정 정책의 단골 희생양인 배추가 올해도 어김없이 누명을 썼다. 여름철 강원도 고랭지배추는 가뜩이나 일반 배추보다 가격이 높은데, 잦은 강우로 인한 작황 붕괴에 9월부터 도매가격 2만원대(10kg망)의 고공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물가 상승이야 모든 산업 분야를 막론한 사회적 현상이었지만, 여론과 정책의 화살이 배추에 꽂히기 시작했다. 언론은 물가 상승 현상을 ‘금배추’라는 단어로 함축했고 정책 역시 언론에 휘둘려 농산물 가격으로 시선을 모았다. 범부처 민생안정 회의의 최대 주제는 언제나 ‘밥상물가’가 차지했다.

기실 배춧값 폭등은 정부 부처들이 비상 회의 주제로 삼아야 할 만큼 중요한 게 아니다. 생육 주기와 작기 전환이 빠른 품목이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작황이 무너져도 금방 다른 지역의 배추가 쏟아져 나온다. 아니나다를까, 한 달 동안 반짝 치솟았던 배춧값은 10월 초부터 급격한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이런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농식품부조차 다른 정부 부처들의 ‘금배추 몰이’에 동조했다. 윗선의 눈치를 봤을 수도 있고, 비상 국면에서 자신의 역할을 과시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농식품부는 배춧값 하향안정의 선봉장을 맡았고, 가격 하락이 본격화돼 한두 달 후 폭락이 우려되던 시점에도 ‘부족물량 공급’, ‘소비자 부담 경감’ 구호만을 되풀이했다.

현재 전남 겨울배추 10kg 도매가격은 4,000~5,000원, 때때로 4,000원선을 뚫고 내려가기도 한다. 꾸준히 내려온 가격이 마침내 폭락 시세를 형성했고 산지에선 수확을 포기하는 포전도 속출하고 있다. ‘금배추’에 들끓던 언론과 정책은 폭락한 배추에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는다. 꼭 배추만의 문제는 아니다. 무·양배추·대파·상추·애호박·토마토 등 올해 ‘밥상물가 비상’ 이슈에 이름을 걸쳤던 품목들 모두 잠깐의 호들갑이 지나간 뒤 예정된 가격하락을 겪었다.


꾸준히 수입되는 중국 마늘, 정체는 ‘괴물 마늘’

마늘·양파는 1년 내내 정부 수입을 막느라 고달픈 싸움을 벌이고 있다. 농식품부는 노지채소 수급을 국내에서 해결해 보자는 정책목표 아래 지난 4년 동안 저율관세할당(TRQ) 미운영 원칙을 고수해왔다. 그런데 올해 돌연 이 원칙을 깨고 마늘·양파 TRQ를 운용하기 시작했으며 양파엔 TRQ보다 관세가 더 낮은 ‘할당관세’를 적용했다. 역시 물가 상승 상황에서 평년보다 높은 마늘·양파 가격을 낮추려는 의도를 띠고 있다. 지난 21일 기준, 올해 마늘 TRQ 총 수입량은 8,989톤(지난해 말 운용분 4,000톤 제외)이고 양파 할당관세 수입량은 6만1,007톤이다.

평년 이상의 시세라지만, 평년가격 자체가 정상적인 농가소득을 보장하지 않는 데다 최근엔 농자재값 폭등으로 투입비용마저 급격히 늘어난 실정이다. 특히 양파보다 시세가 좀더 빠듯한 마늘 농가들의 사정이 절박하다.

농식품부가 입찰예정가격을 비교적 높게 설정해 한 번에 다량의 입찰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연중 찔끔찔끔 들어온 중국산 TRQ 마늘이 어느덧 1만톤에 육박하고 있다. 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정부·민간 수입물량이 늘어나자 전년대비 국내 생산량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재고량이 늘어나 있다. 소량씩이라 해도 더 이상의 수입은 내년산 햇마늘 시세에 악영향을 끼칠 소지가 다분하다.

마늘 수입은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본지는 상온에 1년 동안 방치해도 변질되거나 싹이 트지 않는 중국산 ‘괴물 마늘’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상온에서 1년째 싹조차 안 터 … 수입 마늘이 수상하다). 방사선 조사처리를 했거나 독성 훈증제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통관의 허점상 어떤 처리를 거쳐 들어오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마늘은 심지어 민간 물량이 아닌 정부 TRQ 물량이며, 1년째 꾸준히 탈피 유통돼 국민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괴물 마늘’은 농민들의 제보를 받은 마늘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가 무작위로 중국산 TRQ 마늘을 입수해 실증(상온 방치)으로 증명한 것이다. 마늘자조금은 최근 다시 상온에서 국산마늘과 TRQ 마늘의 변질 과정을 비교관찰하고 있다.


도매시장 개혁은 일시 소강 국면으로

농산물 도매시장 개혁은 ‘농산물 제값받기’에 있어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의제다. 농민에게 불리한 가격결정 구조,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 경제적·물류적 비효율, 독과점 구조와 투기화 등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하며 시대적 과제에 직면한 도매시장이지만, 개혁은 여전히 쉽지 않다.

우리나라 도매시장 개혁의 구심점은 서울 가락시장이다. 강경 개혁 노선을 택했던 김경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락시장 관리공사) 사장이 물러난 뒤, 올 초 취임한 신임 문영표 사장은 조용하고 온건한 방식으로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도매인제 도입 등 거국적인 개혁의 바람은 많이 잦아들었고, 대신 현재의 시장 시스템하에서 세심하게 내실을 다지려 하는 모습이다. 지금은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공사와 배추 팰릿출하 의무화 정도가 가장 뜨거운 이슈다.

공사와 도매법인 간의 치열했던 갈등도 자연스레 잦아들었다. 다만 지난해부터 이어온 몇 가지 갈등이 올해를 지나며 하나 둘 마무리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블라인드 경매’. 종전까지 경매사는 어느 중도매인이 얼마를 불렀는지 훤히 들여다보며 경매를 진행했다. 공사는 이로 인해 경매의 공정성이 흔들린다고 판단, 경매사의 컴퓨터 화면에서 중도매인의 이름(고유번호)을 지우기로 결정했다.

도매법인들이 경매사의 역할론을 내세우며 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모두 패소, 이후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지난 7월부터 가락시장에선 ‘블라인드 경매’가 전격 시행 중이다.

하나 남아있는 갈등 요인은 ‘위탁수수료 제한’이다. 그동안 도매법인들이 하역비를 위탁수수료에 묶어 출하자에게 전가함에 따라 주기적으로 하역비 인상분이 위탁수수료에 반영되는 부조리가 있었다. 공사는 서울시 조례 개정을 통해 위탁수수료가 현 수준에서 추가 인상되지 못하도록 묶어버렸고, 역시 도매법인들의 행정소송이 이어졌다.

이 소송은 1·2심에서 도매법인 승소 판결이 나온 것을 대법원이 파기환송하는 반전을 양산했다. 그렇게 공사의 승리로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도매법인 측이 파기환송심에서 조례의 일부 불명확성을 문제삼는 바람에 별개의 쟁점이 발생, 다시 대법 상고심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공사 측은 조례의 내용 자체엔 문제 없음이 확인된 만큼 패소하더라도 일부 문구 수정을 통해 위탁수수료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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