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없는 농협 … 도시농협의 민낯

조합원 90%가 ‘농’자도 몰라

인천 모 축협, 내부고발에도

가짜조합원 유지 행태 여전

  • 입력 2022.10.2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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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가짜조합원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12월 13일자 본지가 보도한 인천지역 A축협이다(조합원 650명 중 농민이 50명? 기막힌 도시축협). 무자격조합원 정리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불거지면서 조합원 실태에 대한 전 조합원들의 폭로가 터졌는데, 전체 조합원 650명 중 약 600명이 농업의 ‘농’자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A축협 전직 임원·조합원들의 일관된 증언에 따르면 이 조합의 조합원들은 대규모 축사나 양봉장에서 소 2마리씩, 벌 10군씩을 임차 혹은 자기 소유로 계약함으로써 조합원 자격을 획득하고 있다. 직업은 대부분 가정주부 혹은 무직. 축산에 대한 소양이 전무하기 때문에 계약금과 관리비를 내며 100% 위탁관리하고 있다. 영세소농들을 배려한 조합원 최소 사육조건이 도시민들의 조합원 자격 취득에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합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A축협은 도시민들의 소를 위탁사육하기 위한 대규모 ‘공동사육장’을 버젓이 운영할 뿐만 아니라, 도시민들을 수십명씩 대형 양봉장으로 실어 나르며 계약을 주선하고 있다. 계약서는 물론 같은 곳에서 계약한 도시민들의 명단까지 남아있을 정도로 제보의 내용은 구체적이다. 보도 이후에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어서, 최근엔 공동사육장을 내부 공사로 폐쇄한 탓에 멀게는 충남까지 조합원들을 실어 나르며 새로 계약을 주선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가짜조합원을 제대로 정리하면 조합원 수가 당장 조합 설립인가 기준(광역시의 경우 300명)에 크게 미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조합은 물론 농협중앙회도 이를 부담스러워 하는 낌새다. 중앙회(인천지역본부) 측은 “보도 이후 조사를 해봤으나 서류상 가짜조합원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며 최근의 ‘충남 원정’에 대해선 “인지하지 못했다. 신속히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
 

강화도에 위치한 인천 A축협의 한우 공동사육장. 수십명의 도시민들이 이곳의 소를 2~3마리씩 나눠 명의를 올림으로써 조합원 자격을 획득했다. 지금은 공사로 인해 비어 있으며 “조합원 실태조사 시 벌 등으로 대체하라”는 조합 측의 안내가 전달되기도 했다. 한승호 기자
강화도에 위치한 인천 A축협의 한우 공동사육장. 수십명의 도시민들이 이곳의 소를 2~3마리씩 나눠 명의를 올림으로써 조합원 자격을 획득했다. 지금은 공사로 인해 비어 있으며 “조합원 실태조사 시 벌 등으로 대체하라”는 조합 측의 안내가 전달되기도 했다. 한승호 기자

편법을 써서라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면 어떤 혜택을 받게 될까. A축협 전 조합원 B씨의 경험에 의하면, 출자배당·이용고배당은 물론이고 대출금리 우대, 자녀 학자금 지원, 건강검진, 명절 고기선물 및 TV·김치냉장고 등 할인혜택, 제주도 또는 해외 선진지견학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이사나 대의원이 되면 회의마다 50만원씩의 참가비를 받고, 조합장이나 상임이사가 되면 1억~2억대의 연봉을 누린다.

도시민들이 혜택을 빼먹는 동안 농민들은 손해를 입는다. 농민을 위한 농협법의 취지가 짓밟히고 그릇된 조합 문화가 확산된다. 농협중앙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농민조합원들의 의사를 왜곡하기도 한다. 좀더 현실적으로는 농민에게 가야 할 농업보조금이 도시민에게로 새 나가며, 축사의 소는 도시민의 것으로 보든(서류상) 농협의 것으로 보든(실질적) 농민들이 기르는 소와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게 된다.

A축협에서 구체적인 내부 폭로가 터졌을 뿐, 가짜조합원은 도시농협 전체를 관통하는 골치아픈 문제다. A축협 전 임원 C씨는 “축협뿐 아니라 농협들도 편법 임대차 등을 통한 가짜조합원이 대부분이다. 인천지역에 있는 농협들은 임원들까지 거의 가짜조합원이라 보면 된다”며 “임원들부터 무보수로 전환하고 이권을 없애버리면 가짜조합원은 저절로 흩어져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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