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숨은 병폐, ‘가짜조합원’

  • 입력 2022.10.2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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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전남의 한 농협에서 직원조합원(농협 직원이면서 조합원에 등록된 이들) 전답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농협 감사가 직접 전수조사에 나서 논밭 주소와 조합원 이름을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농사를 직접 짓는지 경작이 의심되는 논밭 중 현재까지 소명하지 못한 논밭 사진이 위와 같다. 사실상 서류를 갖춘 가짜조합원일 확률이 크다.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제공
지난달 전남의 한 농협에서 직원조합원(농협 직원이면서 조합원에 등록된 이들) 전답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농협 감사가 직접 전수조사에 나서 논밭 주소와 조합원 이름을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농사를 직접 짓는지 경작이 의심되는 논밭 중 현재까지 소명하지 못한 논밭 사진이 위와 같다. 사실상 서류를 갖춘 가짜조합원일 확률이 크다.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제공

바야흐로 조합장 선거 시즌이다. 해마다 진행하는 조합원 실태조사도 이 즈음이면 한층 엄중한 분위기가 감돌게 마련이다. 농협은 지난 두 번의 전국 동시조합장선거에서 무자격조합원 문제로 말미암은 숱한 당선 무효소송에 골머리를 썩었다. 정리를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고,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상당수의 무자격조합원들이 농협에서 제명됐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진 않다. 농협의 조합원 실태조사는 단순히 서류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농지원부, 농업경영체 등록확인서, 농지 임대차계약서 등 경작 형태에 따라 소정의 서류만 구비하면 누구라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편법으로 서류를 작성했더라도 이를 걸러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서류를 만들어낼 편법은 얼마든지 있다. 타인에게 농지를 임대해주면서 서류상 경작자를 자신으로 해둘 수도 있고, 반대로 서류상 농지를 임차하면서 실경작은 지주에게 맡길 수도 있다. 축산의 경우 최소사육조건(소 2마리, 벌 10군 등)을 이용해 대규모 농장의 소 2마리 혹은 벌 10군에 자기 이름을 올려놓기도 한다. 농사를 짓지 않는 ‘무자격조합원’ 중에서도 이처럼 교묘하게 서류를 갖추고 있는 이들을, 본 기획에선 특별히 구분지어 ‘가짜조합원’이라 칭하기로 한다.

임기응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정책국장은 “구비 서류가 없는 무자격조합원은 언제라도 제명시킬 수 있지만, 서류를 갖춘 가짜조합원은 얼마든지 진짜로 위장이 가능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무자격조합원보다 더욱 심각한 게 가짜조합원”이라고 강조했다.

가짜조합원을 걸러낼 제도적 장치가 없는 건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고시 「조합원의 자격요건인 농업인의 확인 방법 및 기준」에 의하면 조합원의 구비서류가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엔 그 전답을 현지실사해야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을 이행하는 조합은 거의 없다. 농촌에서 누가 농사를 짓고 누가 짓지 않는지야 굳이 서류를 보지 않더라도 빤한 경우가 많지만, 조합원의 수가 곧 출자금의 규모며 조합의 안정성인 만큼, 눈에 안 보이는 무자격조합원까지 적극적으로 적발해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짜조합원은 분명 농협을 갉아먹는 병폐다. 가짜조합원들이 편법을 쓰면서까지 조합원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이유는 농업이나 조합에 대한 애정·사명감이 아닌 이권에 대한 관심, 탐욕, 혹은 조합장 선거에 던질 ‘한 표’를 위해서다. 가짜조합원이 많아질수록 조합은 순수성을 잃고 조합 내 의사결정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조합원 실태조사를 통해 제명된 무자격조합원 중엔 오랜 기간 농민조합원으로서 조합과 삶을 포개온 고령의 은퇴농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조합 발전에 기여해온 원로조합원들은 쫓아내면서 탐욕으로 매달려 있는 가짜조합원들을 품는 현실. ‘무자격조합원 정리’는 마땅하고 옳은 구호지만, 이제는 구호 속의 현실을 좀더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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