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조합원 정리, 임원·조합원 의지에 달렸다

해남 모 농협, 직원들 전답 실사

30명 중 23명 가짜조합원 의혹

  • 입력 2022.10.23 18:00
  • 수정 2022.10.24 19:4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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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의 조합원 실태조사가 가짜조합원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건 기계적으로 서류 구비 여부만을 살펴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전남 해남의 D농협에서 직원조합원(농협 직원이면서 조합원에 등록된 이들) 전답에 대한 대규모 현장실사가 이뤄져 눈길을 끈다.

실사가 결정된 건 이사회에서다. 올해 두 차례의 이사회에서 직원들이 직원조합원 수를 다르게 보고하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일부 이사들이 실사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지난 9월 감사와 직원들이 직접 현장을 돌며 직원조합원들의 경작 여부를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직원조합원 총 30명 중 2명은 조사 시작 시점에서 조합원 자격을 자진포기했고, 나머지 28명 중 경작 사실이 확인된 건 7명뿐이었다. 가짜조합원으로 의심되는 21명에겐 구매계 이용실적, 이웃농가의 경작사실확인서 등 증빙자료를 요구했지만 아직 회신이 없는 상태다. 개중엔 조합장이 자신의 땅을 직원에게 임대해준 경우도 있다.

비록 직원조합원에 한한 실사지만 개별 농협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짜조합원을 걸러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며, 또한 조합 운영에 있어 임원들의 문제의식과 개선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직원조합원 전답 현장실사를 진행한 전남 해남 D농협 전경.
직원조합원 전답 현장실사를 진행한 전남 해남 D농협 전경.
직원조합원 전답 현장실사를 진행한 전남 해남 D농협 전경.
농협 인근에 걸린 원로조합원 제명을 규탄하는 현수막.

다만 과정에 걸맞은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전국의 농협에 파문을 일으킬 만한 가짜조합원 이슈가 등장했음에도 D농협이 이슈 자체보다 조사 절차상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차상의 문제란 자료 외부 반출 논란이다. 조사 과정에서 감사 E씨가 직원 개인정보가 담긴 자료를 외부로 가지고 나간 일이 있었고, 직원 F씨가 이를 크게 문제삼고 나섰다. 그런데 조합장이 이사진을 소집해 조합이 F씨에게 소송비용을 대 주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이는 F씨 개인이 아닌 조합의 입장으로 해석될 여지가 생겼다.

반면 가짜조합원 이슈에 대한 조합의 관심은 미적지근하다. D농협 관계자는 이 건에 대해 “감사님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이후 특별한 얘기가 나온 게 없어 종결된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사회 등에서 추가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까지 조합 내부에 사안의 심각성이 공유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D농협 이사 G씨는 “가짜조합원이 많아지면 출자금 분담을 감안해도 배당금 등 수익이 분산되는 문제가 있고, 곧 있을 조합장 선거 결과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과거 이사 한 명이 실경작을 안해 제명된 일이 있어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정확히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D농협은 지난 4일 일반조합원 중 무자격조합원 85명을 정리했는데, 원로조합원(은퇴농)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조합원 H씨는 “원로조합원들은 서류가 미비해도 조합원으로서 대우를 해드릴 만한 가치가 있는데 오히려 그분들을 제명시키고 문제가 더 큰 가짜조합원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며 “조합원 정리를 조합장 선거에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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