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650명 중 농민이 50명? 기막힌 도시축협

조합원 자격 편법 유지 와중 ‘선별적 제명’ 의혹

농민 없는 농·축협에서 도시민들 이권싸움만 치열

  • 입력 2021.12.12 18:00
  • 수정 2021.12.14 16:0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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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인천 소재 A축협에서 무자격조합원 정리를 둘러싸고 극심한 잡음이 양산되고 있다. “똑같은 무자격인데 누구는 제명되고 누구는 남아있다”는 불만이 핵심인데, 논란의 과정에서 폭로된 조합원 실태가 충격적이다. 650명 조합원 중 600명 가까이가 편법적으로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A축협은 조합원 실태조사를 거쳐 지난달 16일자로 82명의 조합원(대의원 5명 포함)을 제명시켰다. 1년에 1회 이상 조합원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무자격조합원을 정리해야 한다는 정관 규정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제명된 사람들이 대부분 조합장의 성향에 반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찍힌’ 사람들이라는 의견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조합장이 조합 내 자기 입지를 강화하고 차기 조합장선거에 대비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현 조합원인 B씨는 “최근 3년 동안 조합원 280명이 제명됐는데 대부분이 ‘야권’ 성향이다. 똑같은 입장인데도 ‘여권’은 살려주고 ‘야권’만 정리한다. 이전 조합장 때도 정리는 이뤄졌지만 이렇게 편가르기가 심한 건 처음”이라고 미간을 찌푸렸다.

실태조사 자체를 선별적으로 진행했다는 의혹도 있다. 제명된 조합원 C씨는 “조합장과 가까이 지내는 조합원을 만나 잘렸다고 호소하니 ‘나는 벌통만 있고 벌은 하나도 없는데 실태조사를 아예 안 나왔다’고 하더라. 자르고 싶은 사람만 집중적으로 조사를 하는 것 같다”고 분개했다.

시각을 한 발 뒤로 물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제명된 조합원들은 평등·불평등을 떠나 어차피 제명됨이 마땅한 이들이다. 문제는 아직 조합에 남아있는 소위 ‘모나지 않은’ 편법조합원들이다. 실은 이들 모두가 제명돼야 정상이다.

이들이 모두 제명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A축협 650명의 조합원 중 실제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40~50명, 많이 잡아도 100명 미만이라는 게 조합 내의 통념이다. 객관적 근거를 확인할 순 없지만 복수의 전현직 이사·대의원들이 똑같이 전하는 말이다.

광역시 소재 지역조합의 유지를 위한 최소 조합원 수는 300명. 증언들이 사실이라면 A축협은 존재해선 안되는 조합인 것이다. 다시말해, A축협은 농민 없이 껍데기만 남은 조합이며 도시민들의 이권다툼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A축협은 이같은 실태를 알고도 묵인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축협 조합원 자격을 위한 최소 사육두수는 소 2마리(착유우 1마리), 돼지 10마리, 산란계 500마리, 벌 10군 등이다. 이 가운데 조합원 자격 편법취득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게 공간효율이 높은 소와 벌이다. 한 공간에서 소수의 관리자가 소나 벌을 대규모로 키우면서 개별 가축의 소유권을 도시민들이 나눠 갖는 방법이다.

소의 경우 도시민들이 사룟값·약값 등 소요비용만 지불하면 사육은 위탁관리자가 도맡아 하며, 벌의 경우 1년에 20만원, 5년에 150만원 식으로 10군당 관리비 ‘시세’까지 정해져 있다. 농업의 농자도 모르는 도시민이라도 돈만 있으면 누구나 조합원 자격을 획득·유지할 수 있다. 축협 관계자라면 모를 리 없을 정도로 만연한 편법이다.

단순히 묵인하는 것을 넘어 A축협이 주도적으로 편법조합원을 양산했다는 제보도 있다. 제명된 조합원 D씨는 “공동양봉을 하는 현장에 조합 임원이 도시민들을 30명씩 차로 데려가 조합원 실태조사를 (정상처리) 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이번에 제명된 사람 중엔 예전에 그런 식으로 같이 갔던 사람도 있다”고 말했으며, 인천 강화군엔 대놓고 ‘A축협 공동사육장’ 간판이 붙은 축사도 있다.

조합원 정리 직후인 지난달 25일 A축협 대의원회에선 △조합장·상임이사 급여 8% 인상 △충남 금산 소재 42억원짜리 땅(조합원 공동사육장 조성용) 구매 안건이 통과됐다. ‘농민 없는 축협에서의 이권놀음’과 ‘편법조합원 육성’이라는 지금의 불편한 그림이 이 두 안건에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무자격·편법 조합원은 농협의 존재가치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악성 종양이며 특히 도시농·축협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 지 오래다. A축협처럼 내분이 일어난 경우 그 실체를 엿볼 수 있지만 비농민들이 조합을 점령하고 그들끼리의 결속력이 단단한 조합이라면 가짜 조합원들은 얼마든지 농협이란 이름 뒤에 숨어 개인의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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