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산에 완패했던 밀, 기사회생의 역사를 쓰다

30년 전 가까스로 구한 밀 한 가마, 전남북·경남서 심어 늘려나가

최성호 구례우리밀 대표 “제2의 주식인데 최다 수입 곡물로 둘 수 없어”

구례에 국내 최초 ‘우리밀가공공장’ 설립, 생산부터 가공까지 농민 손으로

  • 입력 2022.10.01 13:46
  • 수정 2022.10.01 13:53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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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전남 구례군 광의면에 위치한 ‘광의면특품사업단우리밀가공공장 영농법인’은 1990년에 시작된 우리밀살리기운동의 역사와 함께하며 지역의 밀농가 소득, 국내 밀 자급률 제고에 이바지 하고 있다. 사진은 밀 저장고.
전남 구례군 광의면에 위치한 ‘광의면특품사업단우리밀가공공장 영농법인’은 1990년에 시작된 우리밀살리기운동의 역사와 함께하며 지역의 밀농가 소득, 국내 밀 자급률 제고에 이바지 하고 있다. 사진은 밀 저장고.

 

국내 밀 생산 기반은 수입밀에 떠밀리기 시작해 1984년 정부가 수매까지 중단하자 고사 위기에 처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양정자료에 따르면 수매중단이 예고된 1984년 밀 생산면적은 전년 2만6,446ha에서 6,411ha로 76%나 급감하고, 생산량은 전년 11만1,637톤에서 1만7,237톤으로 85% 줄어들었다. 1990년 국내 밀 재배면적은 294ha, 생산량 889톤, 자급률로 따져보면 0.05%. 겨우 숨만 붙어 있었다.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제2의 주식 밀은 수입산에 ‘완패’한 것이다.

수소문해 얻은 종자용 밀 한 가마

1990년 밀을 다시 살리기 위한 운동이 민간차원에서 시작됐다. 30여년 한 길을 밀 살리기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전남 구례군 광의면특품사업단우리밀가공공장 영농법인(대표 최성호, 구례우리밀영농법인)이다. 지난달 19일 최성호 구례우리밀영농법인 대표는 우리밀살리기운동, 기사회생의 시간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최성호 광의면특품사업단우리밀가공공장 영농법인 대표가 자체 생산한 밀가루 완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최성호 광의면특품사업단우리밀가공공장 영농법인 대표가 자체 생산한 밀가루 완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에서 들어온 무상 원조 밀 때문에 밀 농사 하는 곳이 거의 사라졌다. 일하고 나면 수입밀가루를 5포대씩 주니 누가 밀을 생산하겠나. 1984년 밀 수매제가 끝나고 딱 7년 만에 기반이 모조리 사라지게 된 거다. 그러다 1990년에 농민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전국농민회총연맹’ 하나로 뭉치면서 농민운동의 전환점이 생기고, 나이 든 농민운동 선배들은 일선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 속에 우리 밀을 심자고 의기투합했다.”

문제는 밀 심는 농가가 거의 없어진 터라 종자용 밀조차 구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수소문 끝에 농촌진흥청에서 밀 한 가마(40kg)를 구했다.

최 대표는 “어렵게 구한 밀 종자를 세 지역에서 심기로 했다. 전북 김제는 강기종, 경남 합천에는 김석호, 그리고 전남 구례는 내가 나눠 갖고 왔다. 이 지역들이 구심점이 됐고, 본격적인 우리밀살리기운동이 시작된 셈이다”고 말했다.

농민운동과 종교, 시민들이 키운 ‘우리밀’

1991년에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설립됐다. 왜 밀이었을까. 최성호 대표는 “밀은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주식인데 수입에 잠식당했다. 수입농산물 반대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밀을 외면할 수 없었고 가장 많이 수입하는 것으로 싸우자는 마음이 컸다”면서 “당시 수입밀과 가격 차가 6배나 됐다. 사실 엄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시민단체와 건강한 먹거리를 지켜가는 사람들, 이런 국민들이 우리밀살리기운동의 불씨를 지펴 나갔다”고 전했다.

당시 우리밀살리기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하는 운동, 농약 없는 생명운동,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식량마련 차원으로 확산됐다. 밀 살리기 운동이 이후 생협으로, 무농약유기농으로 보폭을 넓힌 것이다.

최소한 30만 가마니의 밀 종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러나 밀을 심기만 해서는 문제를 풀 수 없었고 생산한 밀을 가공해 유통, 판매하는 체계가 필요했다. 우리밀살리기운동엔 천주교단까지 나서주면서 전국에서 출자가 이뤄졌는데 그 규모가 16만명, 36억원(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자료)에 이르렀다. 출자금은 요긴하게 쓰였다.

구례, 전국 최초 우리밀가공공장 가동

구례군도 밀 농사를 짓겠다는 농민들을 반겼다. 1992년에 1읍면 1특품(밀가루) 육성사업지구로 지정되고 최성호 대표가 주축이 돼 우리밀가공공장 법인도 설립했다. 그해 말 구례에 전국 최초로 우리밀가공공장이 세워졌다.

최성호 대표는 “각지에서 모인 출자금은 농민들이 심은 밀을 수매하는 데 쓰이고, 가공해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데도 요긴하게 쓰였다. 한참 잘 될 때는 전국에 5개의 공장이 가동됐다. 우리(전남 구례)가 제1공장, 경남 합천에 제2공장, 전남 무안에 제3공장, 전북 정읍과 충남 아산에 4·5공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도 IMF를 피하진 못했다. 36억원의 출자금에 12% 이자로 농협에서 자금을 빌려 운영하던 밀 공장들이 자금압박에 시달렸다.

고심 끝에 최성호 대표는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갔다. 100억원 부채로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망하게 됐다고 토로하니, 김 추기경이 깜짝 놀라면서 ‘방법을 찾아 보자’고 달랬다.

이후 김수환 추기경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다고 한다. ‘아이엠에프로 수많은 기업이 부도가 나 예산 지원을 하는데, 농민들이 밀 살리기 운동을 하다가 100억원 부도가 났다니 정부가 나서주시라’ 간청을 했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주무부처인 김성훈 농림부 장관을 만나 ‘60억원을 줄 테니 100억원 부도를 해결해 보시라’ 지시를 하게 됐고, 김 장관은 농협중앙회장을 만나 60억원을 기반으로 밀을 수매해서 처분하라고 제시하면서 농협이 밀 수매를 담당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밀을 되살리는 데 민간·종교·정부까지 나선 셈이다.

구례우리밀영농조합은 IMF를 지나며 더 기반을 닦았다. 어려운 가운데 영농조합이 건재하고 생산부터 가공 판매, 전 과정을 자체 해결하는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최성호 대표는 “굉장히 어려운 시기인 것은 분명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운영비를 절감하면서 한두 달 빚을 얻어 밀을 수매하러 다녔다. 구례뿐 아니라 함평, 광주, 강진, 보성… 다 수매해도 물량이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농민운동을 했던 옛 지인들, 농민회원들을 찾아다니면서 밀을 심자고 독려했다. 의미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재배면적을 늘려가는 건 순조로웠다”고 말했다.

밀 수매가는 40kg 한 가마에 4만2,000원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3만9,000원이다. 여전히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농민들이 재배한 밀을 수매한 뒤 가루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농민들이 재배한 밀을 수매한 뒤 가루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밀 정책의 감시자이자 동반자로

구례우리밀영농법인 회원은 50여명에서 출발해 현재 42명이다. 고무적인 건 출자금이 몇 갑절 늘어 10억원에 이른다는 점이다. 5,000만원을 가지고 시작한 밀 가공공장이 튼실하게 성장해 온 결과다. 지역 밀 농가들의 소득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지난 2019년 「밀산업 육성법」이 탄생하는 산파 역할도 맡았던 최 대표는 “이전보다 밀 농사를 짓기 아주 좋은 조건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 전에는 일절 없던 지원들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콩과 보리, 게다가 사료용 풀도 지원하면서 밀 지원은 하나 없냐는 개탄이 나왔던 터였다. 밀산업 육성법이 생긴 이후엔 군납도 가능해지고, 정부의 밀 수매도 재개됐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많아졌는데, 퇴비 지원, 농기계 지원, 생산장려금 지원 등이 현재 전국 각지의 밀 재배면적을 늘려가는 훌륭한 거름이 되고 있다.

최 대표는 건강한 밀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 당국에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전국에 밀 생산단지를 지정해 육성하는 정부 사업이 4년 차에 접어든다. 현재의 컨설팅 방식을 바꿔 각 도와 군에서 관리하게 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효율과 비용면에서 밀 생산단지 조성사업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식량안보’를 앞세워 내년에 전략작물직불금을 신설하는 문제도 꼬집었다. 최 대표는 “정부가 현재의 쌀값 대 폭락 문제를 수입쌀에서 원인을 찾지 않고 소비량이 줄었다는 진단만 하고 있다. 그래서 쌀 생산을 줄이겠다고 전략작물직불금을 ha당 250만원 새로 지급한다는데, 밀과 가루용 쌀을 심거나 밀과 콩을 심어야만 온전히 지원된다. 밀만 심으면 전과 같은 ha당 50만원이다. 국산 밀이야말로 진정한 전략작물이라는 점에서 ha당 250만원의 직불금 지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취재·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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