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자급률 1%의 반란 … 제2의 주식을 국내산으로

정부, 2030년까지 밀 자급률 10%로 높이겠다 ‘목표 설정’

  • 입력 2022.08.28 18:00
  • 수정 2022.09.29 12:38
  • 기자명 원재정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국산 밀 정책이 자급률 10%를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2019년 국산 밀 육성법 제정 이후 2020년 밀 산업 육성 5개년 기본계획이 세워지면서 현장도 분주해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 ‘국산 밀 전문 생산단지’ 조성사업을 시작하면서 전국에 27개소를 육성했고, 매년 단지 수를 늘려 2023년 생산단지는 74개소를 선정했다. 소비량의 99%를 수입하던 밀. 1% 자급률에 그친 국산 밀의 현황과 고군분투 현장을 이달부터 1회씩 모두 5회 소개한다.
정부는 국산 밀 전문생산단지를 확충하는 등 오는 2030년까지 국산 밀 자급률 10% 달성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사진은 수확을 앞둔 전북 부안의 밀밭.  한승호 기자
정부는 국산 밀 전문생산단지를 확충하는 등 오는 2030년까지 국산 밀 자급률 10% 달성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사진은 수확을 앞둔 전북 부안의 밀밭. 한승호 기자

포켓몬빵을 국산 밀로 만든다면

최근 진열하기 무섭게 팔려나가는 히트작 ‘포켓몬빵’은 ‘미국산 밀’로 만든다. 동네 프리미엄 빵집도 ‘캐나다산 유기농 밀’ 포대를 쌓아두고 소비자 발길을 이끈다.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지만 대부분 수입산에 자리를 내준 밀, 국산 밀 자급률은 1%에 불과한 실정이다. 100개의 빵을 사 먹으면 그중 1개가 국산 밀 빵이라는 말인데,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밀 자급률을 10%로 끌어올리겠다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

수입 밀에 쫓겨난 국산 밀의 자리

우리나라에서 밀 재배가 급감한 이유를 찾다 보면 ‘수입농산물’과 ‘정부 정책’ 두 가지를 확인하게 된다.

해방 이후 ‘미국산 밀 무상원조’는 수입농산물이 국내 먹거리 원료로 정착한 계기가 됐다. 미국은 잉여농산물이었던 밀가루를 우리나라에 무상원조(PL 480)했고, 무상원조가 끝난 이후에도 30%라는 낮은 관세로 밀이 수입되면서 밥상 위에서 국산 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홈페이지에 따르면 “해방 전후 그리고 경제발전 과정에서는 당장의 끼니 해결을 위해 (밀이) 필요했을 수 있다. 국민들은 허기져 있었지만, 쌀이라도 수출해 외화를 벌어야 했기에, 쌀보다 훨씬 싼 먹을거리가 필요했다. 그 역할을 수입 밀이 톡톡히 수행하는 모양이었다”고 통계자료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밀소비가 기대만큼 확산되지 않자 정부는 특단의 조치로 ‘혼·분식장려운동’을 시작했다. 

1960~1970년대 혼·분식장려운동까지 합세해 밀 수입은 가파른 확산세를 보였고 국민 1인당 밀 소비량도 연간 30kg로 올랐다. 당시의 밀 소비량은 현재까지 31.2kg(2020년 기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산 밀 생산은 1970년대 이후 급감하게 됐다. 특히 1984년 정부가 밀 수매제를 폐지하자 생산중단 위기까지 닥쳤다. 실제 국산 밀은 1984년 6,411ha에서 1만7,237톤이 생산(통계청,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 양정자료)됐으나 1985년 재배면적이 3,070ha로 반토막 이상 크게 줄었고 생산량도 1만517톤으로 감소했다.

우리밀살리기, 운동으로 번져

현장에서는 밀 재배를 놓지 않았고, 1991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발족했다. 이 시기는 수입개방 정책,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 농산물개방 격랑이 시작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농업·농촌의 위기감과 먹거리 안전성 문제로 집중된 때다. 쌀 다음으로 소비량이 많지만 자급률은 0에 가까운 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밀살리기운동은 많은 관심 속에 확산됐으나 생산된 밀을 수매해야 하는 ‘자금’ 문제에 어려움을 겪었고, 1998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발족 8년만에 부도를 맞으면서 밀 사업은 농협이 인수했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자료를 보면 1997년 1,838ha 면적에서 7,433톤이 생산되던 밀은 1998년 1,327ha, 4,781톤으로 줄었고, 수매가는 40kg 한 가마에 3만원(1997년)에서 2만6,000원(1998년)으로 낮아졌다. 밀 생산 농가들이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의 재정난을 극복하고 경영정상화에 동참하자는 취지로 밀 수매가 인하에 동참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밀 수매가는 2000년까지 3만원 이하로 이어졌고, 그 여파로 재배면적은 919ha까지 줄어들었다. 밀 자급률 제고를 위해서는 ‘수매가 인상’이 동반돼야 한다는 현장 목소리가 커지면서 2001년 농협이 3만5,690원으로 수매가를 높였다. 이후 재배면적은 2004년까지 눈에 띄게 늘어난다. 2001년 915ha였던 국산 밀 재배면적은 2002년 1,808ha, 2003년 3,281ha, 2004년 3,729ha로 확대됐다. 밀 수매가는 2018년부터 현재까지 40kg 한 포에 3만9,000원이다.

세계 식량위기 속에 탄생한 국내 밀 정책

2007~2008년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해 전 세계가 식량위기에 휩싸였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당시 이집트·인도네시아 등에서 식량난으로 인한 폭동과 소요사태가 일어났으며, 세계 37개 국가가 식량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밝혔다. 식량안보에 취약한 나라들은 자국 생산기반 확보, 비축 등 비상대책에 눈을 돌렸고, 정부도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2의 녹색혁명’을 주요 정책으로 꺼내들었다.

정부는 ‘제2의 녹색혁명’을 발표하며 2012년까지 1조7,000억원의 예산 투입계획을 발표했다. 제2의 녹색혁명을 통해 2015년까지 주요 곡물·사료작물 등의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당시 정부가 밝힌 2015년의 밀 자급률 목표는 10%였다. 

그러나 세계적인 식량위기를 배경으로 탄생한 국내 밀 자급률 목표 달성은 실패했다. 밀 자급률은 2010년 1.7%, 2011년 1.9%, 2012년 1.7%로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국내 밀 산업 관계자들이 진단한 밀 정책의 한계는 소비 대책은 없고 생산 정책만 세웠다는 데 있다. 가격과 품질 문제도 개선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 6월 6일 경남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 밀밭에서 한 여성농민이 도시민들의 국산 밀 체험활동에 사용할 밀을 낫으로 베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6월 6일 경남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 밀밭에서 한 여성농민이 도시민들의 국산 밀 체험활동에 사용할 밀을 낫으로 베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산 밀 육성법 제정, 밀 산업 재도약 ‘기대’

붕괴 직전의 국산 밀 산업이 다시 재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지난 2019년 「국산 밀 산업 육성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정부의 밀 수매제가 부활하고 전국에 ‘밀 전문 생산단지’가 2022년까지 51개소가 조성됐다. 생산단지는 내년에 더 늘어날 전망이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는 지난 3일 “2023년도 국산 밀 전문 생산단지 74개소를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농식품부는 올해 선정한 생산단지를 대상으로 밀 생산관리 교육, 보급종 종자 50% 할인 공급, 정부비축 우선 매입, 생산·보관 시설·장비 등을 지원한다.

국산 밀 육성법 제정 이후 가시적 성과로 꼽히는 ‘생산단지 조성사업'은, 지난 2020년 27개소가 처음 선정되면서 출발선에 섰다. 밀 생산단지 수가 매년 늘어나면서 밀 재배면적도 2022년 5,322ha에서 7,248ha로 36.2% 확대됐다. 정부가 수매한 2022년산 밀은 1만7,000톤이다. 

김보람 농식품부 식량산업과장은 “법이 만들어지고 지난 2020년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5개년)을 발표했다. 밀 관련 정책과 제도를 새로 다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전에는 가공·소비 정책이 없었는데 생산을 늘리면 필연적으로 필요한 분야”라고 설명하면서 “현장에서 밀 재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특히 이전에는 부족했던 가공·소비 정책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농식품부는 생산분야에 전문생산단지 조성과 시설장비 지원사업을, 유통분야에 건조·저장시설 지원사업을, 소비분야에 제분비용 일부 지원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2022년 밀 재배면적은 전문생산단지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8,259ha로 집계됐다.
 

※이 기사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취재·작성했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