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다리’ 선택형직불제, 재설계하자

  • 입력 2022.07.24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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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계단식 논(다랑논)을 유지·보존하며 농사짓는 농민들이 있기에 농촌의 고즈넉한 경관 또한 지금껏 지속가능할 수 있었다. 지난 5월 경남 산청군 차황면 법평리의 계단식 논에서 한 농민이 이앙기로 모를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계단식 논(다랑논)을 유지·보존하며 농사짓는 농민들이 있기에 농촌의 고즈넉한 경관 또한 지금껏 지속가능할 수 있었다. 지난 5월 경남 산청군 차황면 법평리의 계단식 논에서 한 농민이 이앙기로 모를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20년 5월 1일 공익형직불제(공익직불제)가 시행된 뒤 2년이 지났다. 그동안 공익직불제가 농촌에서 ‘공익’을 생산하는 농민에게 얼마나 보탬이 됐는지에 대한 평가가 분분했지만, 공익직불제 논의의 장에서 의외로 깊게 논의되지 않았던 내용이 있다. 바로 공익직불제의 양대 축 중 하나인 선택형직불제 관련 내용이다.

공익직불제는 현재 기본형·선택형 직불제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선택형직불제는 농업·농촌의 공익증진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활동 중 일부를 ‘선택’해 실천하고, 그 실천이 공익증진으로 이어졌음이 입증된다면 직불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선택형직불제를 촘촘히 설계함으로써 기후위기 극복과 식량주권 확보, 생태계 보전 등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입장 아래, 농민단체들은 선택형직불제 보강이 절실하다고 공익직불제 태동 전부터 누차 강조해 왔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공익직불제 시행 뒤 2년이 지났음에도 선택형직불제는 여전히 ‘곁다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공익직불금 지급액 2조3,564억원 중 기본형직불금은 2조2,769억원(96.6%)인 반면, 선택형직불금은 795억원으로 전체 예산 중 3.4%에 그쳤다.

그나마 선택형직불제 속 내용이라도 다양화됐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현행 선택형직불제는 친환경농업직불제·친환경안전축산직불제·경관보전직불제·논활용직불제 등의 4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4가지 직불제는 모두 공익직불제 시행 이전부터 존재하던 제도들이다. 기존의 ‘논이모작직불제’를 논활용직불제로 사실상 이름만 바꾼 뒤, 4가지 직불제를 ‘헤쳐모여’ 시킨 게 현행 선택형직불제다.

‘헤쳐모인’ 선택형직불제는 각 직불제별 한계도 그대로 끌어안았다. 일례로 친환경농업·친환경축산 직불제는 지급기한 제약과 지급 상한기간 설정으로 인해 소득 보전효과 반감 및 제도 지속성 부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으며, 타 직불금과의 중복수혜가 불가능한 데다 ‘개별 친환경 인증농가’를 지급대상으로 삼기에 공동체 단위 활동 유도도 어려웠다. 경관보전직불제의 경우 전국 공통으로 유사한 작물(예컨대 유채)을 식재하도록 해 지역 특성과 여건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선택형직불제가 곁다리 신세를 극복하지 못하면 ‘공익증진을 실현하는 농민에게 보상한다’는 공익직불제 자체의 취지도 퇴색되며, 국가 차원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탄소중립’, ‘지속가능한 농업’ 등의 가치 실현도 어려워진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은 농업계에서 늘 통용되지만, 선택형직불제는 정말로 현장으로부터의 의견 수렴, 나아가 현장 주체들의 제도 설계과정 참여 및 문제 제기 없이는 영원히 곁다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현장 주체엔 농민만이 아니라, 농민과의 연대하에 농지 생태계 보전 및 생물다양성 조사, 토종씨앗 보급, 국산 친환경먹거리 소비 등에 앞장서는 도시민도 속한다. 현장 실태를 잘 아는 농민·도시민이 함께 주체적으로 제도 설계에 나설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선택형직불제는 그 어떤 제도보다도 민주적 설계 여지가 큰 제도다.

지난 5월 들어선 윤석열정부가 ‘농업직불금 5조원으로 기존 대비 2배 이상 확대’ 방침을 내세운 건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윤석열정부는 선택형직불제에 △식량안보 강화 △탄소중립 실현 △청년농 육성 등을 위한 전략작물직불제·탄소중립직불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직불금 확대를 공언한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농민·도시민 간의 연대로, 치열한 토론으로 ‘곁다리’ 선택형직불제를 진정한 농촌 공익증진 수단으로 재설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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