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민·전문가들이 그토록 CPTPP 가입반대 이유를 이야기했음에도, 13일 토론회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이 CPTPP에 가입해야 하는 ‘당위성’부터 거론했다.
제조업 분야의 수출 증가를 위해 CPTPP 가입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게 정부측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예의 “농업계와 충분히 소통하겠다”, “피해대책 마련하겠다” 등 원론적 발언만 반복하면서, 정작 구체적인 농가 피해대책 방안 마련 및 농민 우려 해소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청중들은 분노가 폭발했다. 이빈파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공동대표는 “CPTPP 협정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협상에 발부터 걸며 가입 추진 당위성만 이야기하는 산자부 태도에 화가 난다”며 “농산물 수입 개방률이 96%를 넘는 CPTPP 앞에서 우리 국민, 특히 아이들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CPTPP 가입으로 SPS 장벽이 해제되고 GMO 수입이 늘어나리라는 우려가 제기되는데, 산자부에선 GMO에 대해 우려하는 시민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더라”라고 성토했다.
이 대표가 말한 ‘GMO에 대한 산자부의 다른 관점’은 최근 산자부가「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발의하며 유전자가위 기술 등 신규 GMO 기술에 대한 규제완화 방침을 내민 것을 뜻한다.
비(非)시장권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규제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으로 인해 캐나다 등이 가입을 반대함에 따라 가입국들의 만장일치 찬성이 불가능해, 중국의 CPTPP 가입 가능성이 낮다는 안창용 산자부 자유무역협정상품과장의 분석에 대해,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은 “캐나다와 중국은 통화스와프 협정과 투자보호 협정을 체결했기에 USMCA의 규제는 중국의 CPTPP 가입이 어렵다는 전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산자부 측에서 중국이 가입하지 않으리라고 안이한 판단을 하는 데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배형택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정책위원장은 “그동안 농민들은 ‘경제성장’ 명분으로 추진되는 FTA에 의한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해왔다. 그래도 한편으론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이득이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살펴보니 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이 나지 않건만 왜 CPTPP를 밀어붙이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향후 CPTPP 주제로 토론회를 할 땐 국가 경제적으로 과연 몇 %의 이익이 발생하는지를 갖고 치열하게 따져볼 수 있는 토론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혁정 전국사과생산자협회 정책실장은 임영조 농식품부 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과장에게 CPTPP 가입 시 사과농가들의 예상 피해규모 관련 통계를 요구했으나 임 과장은 “공개하기 어렵다. 기회가 되면 그 부분에 대해 별도로 설명드리겠다”고만 답했다. 권 정책실장은 다시금 “피해금액을 공개해 달라”고 했지만 임 과장은 “특정 품목 (피해)금액을 이야기하는 건 좀 곤란하다. 올해 초 농식품부가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한다는 정부방침에 따라 (생산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CPTPP에 대한) 논의 자체를 반대하는 분위기라 좌절됐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사과 생산자들과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고 회피했다.
기본적 피해 예상액 공개마저 거부하는 농식품부의 태도에 농민들은 “당장 정보 공개해라”, “왜 공개 안 하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권 정책실장은 “사과나무를 심고 수확하는 데 5년이 걸린다. 농업기반이 무너지면 재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정말로, CPTPP 가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