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하라, 당진시농민회 쌀값 투쟁

각 읍·면지회 동시 투쟁으로

관내 농협들 쌀값 인상 성과

‘깨어있는 농민’의 힘 재확인

  • 입력 2022.01.06 19:23
  • 수정 2022.01.06 21:4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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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당진시농민회(회장 김희봉)가 읍·면지회 단위로 대농협 쌀값 투쟁에 나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역의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나서 지역농협을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사례다.

충남 당진은 전국 시·군 가운데 쌀 생산량 1·2위를 다투는 지역이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쌀값이 매해 논란이다. 지역적 요인 이외에, 농협이 판매역량 제고에 소홀하며 수익을 적극적으로 환원하려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농민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지난 2020년 당진지역 농협들의 벼 수매가는 kg당 1,750원 수준. 당시 당진지역 민간RPC 수매가가 1,900원까지 형성됐을 정도로 쌀이 귀했던 걸 생각하면 많이 아쉬운 가격이다.

2021년산 쌀값은 어떨까. 당진은 최근 2개 농협통합RPC 체제를 구축 중이다. 관내 12개 농협 중 3개 농협이 제1RPC에, 8개 농협이 제2RPC에 참여하며 1개 농협(순성농협)만이 단독사업을 하는 구조다. 지난해 12월 8일 조합 간 회의에서 결정된 2021년산 벼 수매가는 제1RPC 3개 농협이 kg당 1,700원, 제2RPC 8개 농협이 1,650원이다.
 

당진시농민회가 지난 4일 새해 첫 상임위원회를 열고 대농협 쌀투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아직 벼 수매가 상향이 이뤄지지 않은 석문·고대·대호지·정미농협에 순차적으로 집중투쟁을 전개할 방침이다.
당진시농민회가 지난 4일 새해 첫 상임위원회를 열고 대농협 쌀투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아직 벼 수매가 상향이 이뤄지지 않은 석문·고대·대호지·정미농협에 순차적으로 집중투쟁을 전개할 방침이다.

당진시농민회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투쟁을 준비했다. 1,700원도 성에 차지 않지만 1,650원은 전년보다 100원이나 떨어진 가격이다. 쌀 생산량이 늘었다 해도 2020년산 쌀로 농협들이 큰 이익을 본 걸 생각하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진시농민회가 택한 투쟁 방법은 지역별 주체적 투쟁이다. 지난 13일 당진시농민회 합덕면지회를 시작으로 각 읍·면지회들이 일제히 관할 농협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투쟁에 돌입했다(1,700원 제시 농협 제외). 농협 쌀 수매가에 대한 시·군 단위 농민단체 투쟁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지만, 읍·면 단위에서 이토록 세밀한 투쟁을 전개한 건 당진이 유일하다.

합덕읍·신평면·우강면 등 RPC가 통합되기 전 상대적으로 쌀값이 높았던 지역은 특히 반발이 뜨거워 다른 농민단체들이 대거 결합하기도 했다. 반대로 농민회 조직력조차 미흡한 일부 읍·면엔 시농민회가 나서 힘을 실었다.

결과는 괄목할 만하다. 신평·우강농협은 투쟁이 시작되자마자 수매가를 1,700원으로 올렸고 연말까지 면천·합덕·순성농협이 차례차례 뒤를 밟았다. 수매물량 부족이 논란이었던 합덕농협은 물량까지 2,000톤 추가수매하기로 했고, 한때 농민들과 물리적 마찰을 빚었던 순성농협은 “타 농협보다 10원이든 20원이든 얹어 관내 최고가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선제적으로 1,700원을 결정한 제1RPC의 당진·송악·송산농협 역시 그동안 농민회의 꾸준한 압박을 받아온 걸 생각하면, 사실상 농민회가 8개 농협의 수매가를 올려 놓은 셈이다.

관내 12개 농협 중 아직 1,650원을 고수하고 있는 건 4개뿐이다. 석문·고대농협은 2020년산 쌀 판매수익 환원금(50원)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농민회 조직기반이 약한 지역이라 시농민회가 순차적 집중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대호지·정미농협은 농민회 읍·면조직이 아예 없는 지역이다. 시농민회가 공문발송 및 현수막 투쟁을 전개 중이며 석문·고대농협 협상타결 이후 방문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경영적 측면에서 농협의 문제는 1차적으로 대의원회·이사회 등 농협 내부에서 개선해야 하지만, 사업적 측면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농협의 사업은 지역 농민들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따라서 지역 농민이라면 누구나 앞장서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kg당 50원 인상은 언뜻 크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자의적으로 쌀값을 결정해오던 지역 농협들에게 농민들이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농민회 조직이 미비한 읍·면에서 개선이 늦어지고 있다는 대목은, 농민들의 주체적 의지가 얼마나 큰 가치를 갖는지를 다시 한번 입증한다.

김희봉 당진시농민회장은 “단지 수매가를 높여 달라는 투쟁이 아니다. 당진에서 생산되는 쌀의 가격이 얼마인지를 정하는 것이고 이를 농민들이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kg당 2,000원 보장을 요구했다가 1,700원으로 양보한 것도 농민들이 합심해 단 50원이라도 일제히 올려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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