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협을 바꾸는 방법

  • 입력 2022.01.09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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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농협은 관제조직으로 발족한 탓에 협동조합적 정체성이 취약하다. 전국에 실뿌리 같이 촘촘한 조직력을 갖추게 된 건 관제농협의 장점이지만, 그 힘으로 농민을 떠받치지 않고 관리·통제·계도하려 하는 건 골치 아픈 부작용이다.

농촌은 특히나 관성이 강한 곳이다. 시대가 바뀌고 농협에도 수차례의 개혁이 이뤄졌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아직도 농협을 어려워하고 미흡 혹은 부당한 모습들에 눈을 감는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삶을 옥죄는 요인이라 해도 말이다.

반대급부로 농협중앙회장·조합장과 임직원들은 계속해서 농민들의 위에 군림한다. 조합원을 대하는 조합 직원이 아니라 고객을 대하는 기업인,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 정도로 자신의 신분을 착각한다. 이래선 농민 중심적 사업은 절대 이뤄질 수 없다. 농민들의 삶이야 어떻게 되든 내 업무, 회사의 이익, 정부가 시키는 일이 우선이 된다.

당진시농민회가 최근 읍·면지회별 동시다발 투쟁으로 차례차례 지역 12개 농협들의 벼 수매가 인상을 이끌어내고 있다. kg당 50원이나마 농협이 쥐고 있던 돈을 농민들의 주머니로 옮겨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관성에 빠져있는 농협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게 누구인지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고 조직체계를 바꾼들 60년을 기업·관료처럼 살아온 농협이 한순간에 협동조합이 되진 않는다. 농협의 체질을 협동조합답게 고치는 법은 오로지 농협의 주인인 농민들이 주인의식을 자각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 농협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조직 내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핵심이지만, 당진시농민회의 사례처럼 내 삶과 직결되는 농협의 사업에 대해 외부에서부터 문제제기를 하는 방법도 있다. 당진 농민들은 이번 투쟁을 통해 눈에 보이는 쌀값보다 훨씬 더 소중한 자산을 쌓았을 것이다.

농협은 농민들이 우러러보는 조직이 아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조종하고 이용해야 하는 조직이다. 건강한 농협이란 끊임없이 농민들의 눈치를 보는 농협이며, 다른 누구도 아닌 농민들이 그렇게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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