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상생 공공급식에 제동 거는 오세훈 서울시장

특정감사·예산 삭감 등으로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 ‘딴지’

  • 입력 2021.12.19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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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2019년 10월 30일 서울 은평평화공원에서 은평구 공공급식센터, 전북 군산먹거리통합지원센터 공동주관으로 열린 ‘도농상생 공공급식과 함께하는 도심 속 농경문화체험 타작한마당’ 중 은평구 어린이들이 군산 농민들의 도움으로 떡메치기를 하고 있다. 은평구 공공급식센터 제공
2019년 10월 30일 서울 은평평화공원에서 은평구 공공급식센터, 전북 군산먹거리통합지원센터 공동주관으로 열린 ‘도농상생 공공급식과 함께하는 도심 속 농경문화체험 타작한마당’ 중 은평구 어린이들이 군산 농민들의 도움으로 떡메치기를 하고 있다. 은평구 공공급식센터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이 특정감사, 예산 삭감 등을 통해 서울 13개 자치구-지방 13개 기초지자체 간에 이뤄진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에 제동을 걸고 있다.

오 시장은 소위 ‘서울시 바로세우기’ 명목으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진행한 사업을 축소 또는 폐기하려는 입장을 밝히면서, “서울시 곳간(예산)이 시민단체 전용 ATM(현금지급기)으로 전락했다”는 식의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오 시장의 ‘서울시 바로세우기’ 표적 중엔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도 있었다. 서울시는 올해 11월부터 도농상생 공공급식에 참여한 관내 13개 자치구 10개 공공급식센터를 대상으로 ‘특정감사’를 진행했다. 일반 감사와 달리, 특정감사는 특정 업무·사업에 대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 뒤 개선대책을 마련하려는 취지로 진행되는 감사인데, 2017년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 시작 이래 센터 대상으로 특정감사가 이뤄진 건 처음이라는 게 센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특정감사 대상이 오 시장의 ‘서울시 바로세우기’ 사업 대상으로 공언했던 곳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10월엔 사회적기업·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 대한 특정감사를 시작하더니, 지난달엔 자치구 공공급식센터를 대상으로 특정감사를 진행했다. 오 시장은 해당 센터들의 사업을 민간위탁함에 따라 서울시 예산이 시민사회에 과도하게 흘러갔다는 입장이다.

서울 A자치구 공공급식센터(A센터) 관계자가 특정감사 당시 분위기를 증언한 사례를 보자. 지난달 어느 날 A센터에 8명의 감사관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3일 내내 방문해 거의 하루종일 공공급식센터의 온갖 서류를 뒤졌다. 감사관이 ‘도농상생 공공급식 지침’을 펼친 뒤 지침의 거의 모든 내용에 대해 관련 서류를 달라 하고, 사소한 사항에도 일일이 확인서를 쓰게 했다.

A센터 관계자는 극도로 위축된 센터 내 분위기를 전했다. 해당 관계자는 “사업 시 보완·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 지도·점검하는 건 당연하지만, 시장이 ‘서울시 바로세우기’ 입장을 표명한 뒤 몇몇 표적을 대상으로 특정감사를 진행하는 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이런 분위기에선 도농상생 공공급식 관련 사업을 추가로 더 벌여도 괜찮을지 직원들 입장에서도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이와 함께 각 자치구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에 지원되던 어린이집·보호시설 대상 급식지원금(차액지원금)도 전액 삭감할 예정이다. 이 차액지원금은 각 어린이집에서 한 달 급식비의 60% 이상을 자치구 공공급식센터로 배송된 지역산 먹거리 구입에 이용할 시 지원된 금액이다. 자치구마다 참여하는 어린이집·아동복지센터 수가 다르긴 하나, 전체 삭감액은 약 43억원에 달한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오 시장은 도농상생 공공급식 차액지원금을 전액 삭감하는 대신, ‘어린이집 급·간식비 지원사업’ 명목으로 약 71억4,0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2022년도 서울시 예산안에 담았다. 예산안을 놓고 서울시·서울시의회 간에 합의점을 못 찾던 중 서울시청 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등의 요인으로 예산안 협의는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일견 오 시장이 어린이집 급식 관련 예산을 늘린 것이기에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서울 B자치구 공공급식센터(B센터) 관계자는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의 주요 원칙은 ‘도농상생’이다. 농촌에서 농민들이 생산한 친환경 지역먹거리를 어린이집 등 복지시설에 공급함으로써 시민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농민도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게 도농상생 공공급식의 주 목적”이라며 “오 시장의 어린이집 급·간식비 지원계획은 그동안 발전해 온 도농상생 공공급식 체계를 사실상 배제한 채 이뤄진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현재 오 시장이 내세우는 형평성 문제, 즉 ‘도농상생 공공급식이 이뤄지던 13개 구 뿐 아니라 나머지 12개 구 어린이들도 좋은 먹거리를 이용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또 다른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 참가자는 “도농상생 공공급식은 원래 25개 전체 구로 확대될 예정이었으나, 지난해 박원순 전 시장의 사망에 따른 시장 공백기, 올해 오 시장의 당선 등으로 사실상 확대가 중단된 상황이었다”며 “정치적 의도가 담긴 조치를 취할 게 아니라, 도농상생에 기반한 서울시 먹거리 공적조달체계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의 가치를 폄훼하는 ‘여론전’도 진행되고 있다.

김소양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3일 서울시의회 행정감사 당시 도농상생 공공급식 체계가 학교급식 대비 “산지 생산비율, 잔류농약, 식자재의 질 등에서 현격한 격차가 있다”며 서울시가 영·유아 급식을 무책임하게 방치했다고 발언했다. 김 의원은 또한 서울시 자료를 인용해 “올해 도농상생 공공급식 식재료 중 산지 생산 비중은 47.6%에 그쳤다”며 도농상생 공공급식 사업이 당초 의도와 달리 지역산 농산물 공급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지역산 농산물 공급량을 하루아침에 늘리는 건 지역 생산자 조직화 등의 과제와 연동되기에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산지 지자체들은 차근차근 공급품목 중 지역산 비중을 늘려왔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도농상생 공공급식 3년, 평가와 과제’에 따르면, 사업 원년인 2017년부터 참여한 산지 지자체들의 지역산 공급 비중이 어떻게 올랐는지 알 수 있다.

2017년 충남 홍성군은 노원구에 공급한 품목 중 14%가 지역산 농산물이었으나, 그 비중은 급격히 상승해 지난해 92%로 올랐다. 전남 나주시에서 금천구에 공급한 품목은 2017년 88%에서 지난해 95%로, 충남 부여군에서 강북구에 공급한 품목은 2017년 57%에서 지난해 64%로 지역산 비중이 늘었다. 산지 특성 또는 친환경식재료 공급비중 등의 차이에 의해 편차가 나지만, 대체로 지역산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게 윤 교수의 평가였다.

한편 서울시민들의 도농상생 공공급식에 대한 평가도, 지역에 따라 다르나 대체로 호의적이다. 경남 김해시와 교류하는 영등포구 공공급식센터의 경우 지역 내 어린이집 영·유아 중 65%인 6,100여명이 김해시 친환경농산물로 만든 급식을 제공 받는데, 지난해 11월 영등포구 공공급식센터가 실시한 만족도 조사 결과 98.8%의 영등포구 학부모가 도농상생 공공급식에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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