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주제발표 - 농업적폐 청산하고 ‘공공농업’ 실현 나서야

  • 입력 2021.12.12 18:00
  • 수정 2021.12.12 20:53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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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설상가상’의 시대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라는 양대 위기는 인간들을 봐주지 않고 있다. 이런 ‘위기의 중첩’ 속에서, 한국 농업정책의 ‘전환’에 대한 농민들의 갈망도 더더욱 쌓이고 있다. 이 갈망에 발맞춰,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산림비전센터 대회의실에선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이원택 국회의원 주최, <한국농정> 주관으로 ‘전환의 시대, 농업정책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비록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로 토론장에 많은 인원을 모시지는 못했으나, 인근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쌀 시장격리’ 등 쌀값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농성 중이던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들이 토론장을 방문해 농정방향 전환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작지만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됐을 이날 토론회를 지상중계한다.

농업적폐 청산하고 ‘공공농업’ 실현 나서야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문재인정부의 농정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현장과 소통하지 않는 농정’이었다. 농민과의 소통을 전혀 안 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소통 방식은 너무나 형식적이었다. 결론적으로는 관료 중심의 농정이었고, 농민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농정이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 계획을 봐도 그렇다. 그린뉴딜엔 산업구조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만 담기고,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확보 관련 내용이 빠졌기에 농민단체들이 강력히 반발했던 바 있다. 이 또한 현장과 소통하지 않았기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농업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현재 세계는 코로나19와 기후위기라는 위기 속에서 전환 과정을 거치면서, 자국 농업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 중이다. 특히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국경 폐쇄 등의 이동제한 조치가 실시되면서 새로운 식량난이 발생함에 따라, 세계 각국에선 다시금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식량을 국가가 적기 공급(just in time)하는 방식에서 공급 부족 등의 혼란에 대비하는 생산체제 구축(just in case) 방식으로 옮겨가는 게 가속화됐다.

실제로 각국은 생산설비 확충, 비축량 증대, 수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을 펼치는 중인데, 일례로 중국은 옥수수와 콩 등 곡물 비축량을 빠르게 확충했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가인 러시아도 지난해 4월 기존의 수출확대 정책 대신 곡물수출쿼터제를 도입했고, 12월에는 주요곡물에 대한 수출관세할당제를 도입했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발표한 ‘농업정책 점검 및 평가 2021’ 자료에 따르면, OECD 회원국 전체의 농업지원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총 농업지원 추정치(TSE)’는 2018~2020년 연간 7,200억달러(한화 약 847억원) 규모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0~2002년 TSE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OECD는 이에 대해 “생산자 중심의 지원구조가 크게 개선되지 않고, 농업 ‘혁신’을 유도하는 정책이 소극적”이란 평가를 내렸지만, 이처럼 농업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이 대세임을 알 수 있다.

세계화의 신화는 식량위기 뿐 아니라 최근의 요소수 사태를 통해서도 무너져내리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기업들은 굳이 자국 내에서 재료와 부품, 노동력을 조달할 필요 없이 더 싸게, 효율적으로 공급해 줄 곳이 있다면 지구 반대편에서라도 필요한 걸 갖다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세계화와 함께 형성됐던 공급망 자체가 단절됐다.

요소수의 경우, 원래 국내에선 남해화학이 요소수를 만들었으나 기업들이 저렴한 중국산을 갖다 써서 경쟁력이 떨어짐에 따라 생산을 중단하게 됐다. 반면 일본은 경쟁력과 상관없이 전략물자로서 요소수 생산을 계속해 왔다. 상상해 보자. 밀 자급률이 0.7%인 우리나라에서 요소수가 아니라 밀이 같은 사태를 겪었다면 우린 어찌됐을까?

지금의 위기는 우리가 전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어떻게 전환해야 할까?

우선, 2018년 제73차 국제연합(유엔) 총회에서 채택된「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농민권리선언)」의 이행에 나서야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의해 수탈당해 온 농민과 토지, 인간과 자연, 국가와 생활의 문제를 농민이 주체가 돼 해결하자고 제시하는 게 농민권리선언의 내용이다. 농민권리선언은 한국농업의 불평등 문제 해소를 위한 해결점을 제시한다.

또한 ‘농업적폐 청산’이 분명히 제시돼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적폐란 생산 증대를 위한 경쟁력 강화를 명목으로 농민 간 경쟁을 부추기는 규모화 정책을 의미한다. 이 정책으로 농업·농촌·농민 본연의 역할과 가치가 훼손됐기에, 그동안의 ‘생산성과 효율성 중심 농정’을 농민에 대한 기본적 권리 보장과 안전한 먹거리 공급, 농촌환경 보전 등이 이뤄지는 ‘국가 책임 강화 농정’으로 변모시켜야 한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전농은 ‘공공농업’, 즉 ‘국민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1. 지속가능한 농업·농촌 구현: 농민기본법(가칭) 제정, 경자유전 원칙이 실현되는 ‘농지공개념’ 도입, 식량자급비율 목표치 및 농민수당 지급 내용 법제화.

2. 국민과 함께하는 공공을 위한 농업: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 실현 통한 식량주권 실현, 안전한 먹거리 공급체계 구축, 불공정 농업협정 폐기, 수입농산물 대응.

3. 미래세대를 위한 농업: 남북 농업평화지대 설치와 남북 공동 식량생산계획 수립 통한 통일농업 실현, 농업재해보상법 제정, 탄소중립 실천제도 마련, 농어촌 거주수당 지급 등을 통한 지역균형 발전, 청년농 기본자산지원제도 및 청년농 선택형직불제 도입.

4. 농민이 직접 만들어가는 현장 중심 농정: 농민의 준(準)공무원화를 통한 공공농정 실현, 자치행정 실현 통한 주민의견 반영과 농업예산 확대, ‘농민’ 규정 재정립, 여성농민 권리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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