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수해 원인 명백한데, 1년 다 되도록 바뀐 것 하나 없어”

문재인정부 농정 4년 - 자연재해

  • 입력 2021.07.04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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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달 28일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일원에서 농민 임병준(57)씨가 수해를 입은 곳에 다시 짓는 하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중고로 구매한 자재가 임씨 뒤쪽으로 가득 놓여져 있다.
지난달 28일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일원에서 농민 임병준(57)씨가 수해를 입은 곳에 다시 짓는 하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중고로 구매한 자재가 임씨 뒤쪽으로 가득 놓여져 있다.

 

지난달 28일 아침 일찍 향한 전라남도 구례는 주민과 상인, 농민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지난해 8월 8일과 마찬가지로 5일에 한 번 있는 장날이었다. 일찍부터 기차를 타고 내려왔지만, 최근 하늘에 별따는 것보다 어렵다는 인력을 불러 농작업에 열중인 농민들을 방해할 순 없어 시가지부터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폐허와도 같던, 불과 며칠 전까지 사람이 살았거나 가축 또는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고 믿기 힘들 만큼 처참했던 그때의 상황과 굳이 비교하자면 겉으론 다소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어쩐지 휑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 김봉용 섬진강 수해참사 피해자 구례군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임시 주택에 입주한 분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50가구 중 단 두 가구만이 새로 집을 짓고 있다. 집이 전파됐을 경우 정부 지원금이 약 1,600만원 정도인데 그마저도 집을 다시 지을 때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집 짓는데 최소 평당 400만원 이상인데, 키우던 소까지 다 떠내려가고 없는 판국에 집 지을 돈이 다들 어디 있겠나”라고 탄식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안타까운 사연이 참 많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무허가 주택 등에 살고 있던 경우 집이 전파됐음에도 지원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을뿐더러 임시 주택에도 입주하지 못한 걸로 안다”라며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원인 조사와 배상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후 김 위원장의 소개로 하우스 두 동이 전파되는 큰 피해를 입은 농민을 찾아 나섰다. 한창 감자를 수확하던 농민 임병준(57)씨는 갑자기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지는 비 때문에 작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마산면 사도리 일원에 위치한 임씨의 하우스 두 동은 지난해 8월 섬진강댐 방류 이후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물에 잠겨 모두 무너졌다. 경제적인 이유로 농작물재해보험도 가입하지 못했던 임씨는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빌려 자재를 재활용해 시설 두 동 중 한 동을 지난해 간신히 복구했다.

임씨는 “농민들은 그야말로 재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코로나19 지원금을 제외하고 정부에서는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덧붙여 “당시엔 지금 서 있는 지면으로부터 6m 정도까지 물이 들어찼다. 하우스 지붕을 훌쩍 넘어선 높이다.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전부 호우로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고 위쪽 지방에서 수문을 열어 수위 상승이 예견됐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수위를 낮추지 않고 한꺼번에 방류한 탓이 크다”며 “구례가 다 잠길 만큼 비가 많이 온 것도 아니고 수해 원인이 명백한 만큼 환경부와 수자원공사는 더이상 시간 끌지 말고 발 벗고 나서 수해민들에게 합당한 배상을 해줘야 한다. 직접 겪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 트라우마라는 것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고 모든 것에 의욕을 잃어 살기 싫은 생각까지 들었고 이런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고 심경을 밝혔다.

새로 지은 하우스의 작기를 한 달 반 정도 놓친 데다 나머지 한 동을 복구하지 못한 임씨의 경우 수해 이후 1억5,000만원가량 손해가 추가됐다. 최근 임씨는 복구하지 못한 하우스 한 동을 틈틈이 복구 중이다. 코로나19 등 여러 요인으로 시설 자재 값이 많이 올라 중고를 구했고, 여건상 농작업을 마친 후 저녁 시간을 할애해 시설을 직접 짓고 있었다.

한편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상황은 임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험료는 새 하우스 지을 때 기준으로 산정하고 △보험금 지급 시엔 감가상각을 적용하며 △임대차 계약 등 농촌 실상 등을 반영 않고 있던 곳에 다시 지어야 보험금을 지급하는 등의 불합리한 약관 때문이다.

산정된 보험금에 이의를 제기했던 농민 A씨는 2월이 다 돼서야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었고, 업체가 시설을 복구하고 난 3월쯤 애호박을 정식했다. A씨는 “보통 10월에 정식해 6월까지 수확한다. 12월부터 3월까지 가격이 좋아 수익도 많이 나는데 그걸 모두 놓친 거다”라면서 “정부 잘못으로 수해가 발생했는데 합당한 배상을 받지도 못한 데다 농민은 재난지원금과 보험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보험금도 가입할 당시와 다르게 보험사 마음대로 지급한다”고 한탄했다.

이밖에도 구례군에선 당장 눈앞에 닥친 생계를 위해 잠시 농업을 포기하고 근처 공장 등으로 일을 다니는 농민도 많았고, 귀농 전 하던 일을 다시 하기 위해 서울로 떠난 이도 있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원 등 얼굴 비추러 내려온 이들의 약속은 공수표가 돼 버렸고 주민과 농민들은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있는 형국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참 많은데 먹고 사느라 바빠서 지금 시간을 도통 낼 수가 없어요. 다음에 다시 찾아 줘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난 주민과의 통화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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