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쏟아지는 방역지침에 오리농민이 매몰되고 있다

문재인정부 농정 4년 - 축산

  • 입력 2021.07.04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오리업계는 문재인정부 내내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정부는 ‘과도한 방역’을 앞세운 실적을 내세우지만 방역의 궁극적인 목적인 축산업 보호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든 셈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올해 3월 특별방역대책기간이 종료되며 일단락됐다. 그러나 오리사육농민 중에선 7월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오리사육을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종오리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 입식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형편이다.

전영옥 한국오리협회 광주전남도지회장은 “입식 전 14일 사육 휴지기와 올인올아웃제 시행으로 1년 최대 6회전이 가능한데 전남지역을 조사해보니 지난해엔 평균 4.5회전으로 5회전도 채우지 못했다”라며 “올해 아직도 입식을 못한 농가는 방역철인 겨울 전까지 1회전밖에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지난해부터 7개월을 사육을 못했다는 건 그동안 소득이 없다는 뜻이다. 올해 겨울엔 겨울철 사육 휴지기에 동참한 농가가 드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동제한조치에 묶인 농장들의 입식지연에 따른 소득안정자금마저 평소보다 집행이 늦어지며 오리농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 지회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선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침이 늦게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이제야 예산내역이 농식품부로 올라간 걸로 아는데 언제 지급될지 기약이 없다”면서 “농가들 사이에 동요가 심하다. 업종을 변경하거나 아예 축산을 포기하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사정을 전했다.

문재인정부는 2017년 겨울철 사육 휴지기를 시작한 걸 기점으로 방역규제를 전방위적으로 옥죄어 왔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 일선 현장을 닦달해 당장의 실적을 만드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지난달 29일 찾은 전북 정읍지역 오리농민들의 현실은 밀어붙이기식 방역의 폐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오리를 사육하는 박하담 오리협회 전북지회장은 “겨울철 휴지기에 신청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12월에 철새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방역대에 포함돼 사육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동제한 조치는 내려놓고 철새에 의한 이동제한에 대해선 보상규정이 없다며 보상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기막혀 했다.

박하담 한국오리협회 전북지회장이 지난달 29일 자신의 농장에 설치한 차량소독기를 작동시키고 있다.
박하담 한국오리협회 전북지회장이 지난달 29일 자신의 농장에 설치한 차량소독기를 작동시키고 있다.

박 지회장의 농장은 농식품부의 방역 규제에 따라 지난 4년 동안 방역시설을 점차 보강해왔다. 전체 농장을 둘러 울타리를 새로 설치했고 농장입구엔 차량소독기를 설치했으며 사육동마다 전실과 조류유입방지망을 설치했다. 농장 곳곳에 CCTV도 설치했다.

뿐만이 아니다. 박 지회장은 “지난해 겨울 내내 방역지침이 쏟아졌다. 농장 전체를 둘러싼 생석회 벨트를 만들라더니 나중엔 사육동마다 생석회 벨트를 만들라는 식이다”라며 “또 수시로 사람을 파견해 방역상황을 관리감독한다고 농장을 방문한다. 처음엔 20여쪽 정도였던 SOP(긴급방역지침)는 백과사전만한 두께가 돼 아무도 내용을 다 모른다”고 탄식했다.

초점이 어긋난 방역지침은 현장에서 괴물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박 지회장은 “이제 사육동에 들어갈 때엔 흰 방역복과 흰 장화를 입으라고 색깔까지 정해준다. 그래야 CCTV로 볼때 확인이 쉽다는 게 이유다”라며 “한번은 우리농장 방역상황을 점검하더니 전실에 장화 밑창을 털어낼 솔이 없다는 지적사항이 나왔다. ‘전실에 칸막이를 두고 오염구역과 비오염구역을 나눴지만 솔로 밑창을 털면 먼지가 비산해 비오염구역도 오염되는 게 아니냐. 햇볕에 말리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기준이 털라고 돼 있다는 답만 들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각종 방역지침들은 고병원성 AI 발생농장의 살처분보상금을 깎는 기준으로 돌아온다. 발생농장은 살처분보상금의 80%만 지급받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역학조사에서 방역지침에 어긋난 사항이 발견되면 또 그만큼 차감되고 있다. 박 지회장은 “정읍지역의 한 발생농장은 계속 패널티를 받더니 살처분보상금의 45%만 지급됐다. 소식을 듣고 해당농가를 찾아가 눈물만 흘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 지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인근지역 내 50여 오리농민 중 10명은 육계로 넘어가려 계사를 다시 짓고 있다. 그는 “현재 축사현대화사업은 융자 80%, 자부담 20%로 사실상 농민이 다 부담해야 한다. 계사 공사에 평당 100만원 이상 부담해야 하는데도 차라리 그게 낫다고 여기는 것”이라며 “오리산업 전체가 매몰되고 있다”고 말했다. 희뿌연 소독액 샤워 속에 오리농민들이 침잠해 들어가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