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어 올해 사과 농사도 단 며칠 새 다 끝났다”

[ 르포 ] 경남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 사과 낙과 피해 현장

  • 입력 2021.06.13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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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8일 이상열 밀양얼음골사과발전협의회장이 열매 하나 없이 가지가 텅 빈 과원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8일 이상열 밀양얼음골사과발전협의회장이 열매 하나 없이 가지가 텅 빈 과원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8일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을 찾았다. 6월 초, 품목을 막론하고 농가에겐 틀림없이 바쁜 시기건만 마을에서는 농번기의 활력 넘치는 풍경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따금 2~3명 정도 모인 농민들이 희고 긴 담배 연기를 뿜으며 한숨 섞인 목소리를 주고받는 모습만 포착될 뿐이었다.

산내면 얼음골을 찾은 건 지난해 9월 이후 두 번째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해엔 연이은 태풍과 강풍·폭우로 인한 피해 현황을 살피기 위해, 이번엔 1차 적과 작업 직후 들이닥친 낙과 현상 때문에 산내면 얼음골을 찾았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듯이 사과 주산단지인 산내면 얼음골에서는 저온피해(냉해)로 사과의 90% 이상이 낙과된 상태다.

농민 손성민(49)씨는 “어째 안 좋은 일 있을 때만 만나는 것 같다”며 겸연쩍게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만난 손씨의 과수원은 태풍으로 인한 낙과 피해율이 70~80%에 달했었다. 당시 도복 피해도 적지 않았다. 손씨는 “지금 홍로는 95% 이상 떨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2차, 3차 적과니 뭐니 할 필요도 딱히 없는 상황이다”라며 씁쓸함을 토해냈다.

자리에 함께한 이상만(63)씨는 “지난해 태풍 때문에 제대로 수확 한 번 못 한 게 억울해서 올해는 진짜 제대로 농사 한 번 지어보겠다고 전부 엄청 열심히들 했다. 새까맣게 탄 얼굴들 좀 한 번 보라”면서 “아무리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지만, 뭐 하나 남기질 않고 적과를 다 해내 버려서 이제 농민들은 할 일이 없다. 농약 치고 도장지 올라오는 거 잘라 수세 조절해주는 수준인 거지 수확이고 뭐고 그냥 끝나버렸다”고 털어놨다.

또 농민 김병연(50)씨는 “6월에 열매 떨어지는 현상을 ‘준드롭’이라고 하던데, 2018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다. 그때는 홍로 보다 후지 피해가 더 컸는데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라며 “올해 개화가 열흘 정도 빨랐던 탓도 있겠지만, 산내면만 하더라도 꽃이 핀 당일을 포함해 이후로도 서리가 4~5번 내렸고 저온도 꽤 오래 지속됐다. 따뜻한 날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5월에 우박도 두 차례 쏟아졌고 비까지 잦아 지금의 이런 피해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밀양시와 산내면사무소에 따르면 4~5월 이상저온이 계속됐고, 5월 5일과 10일엔 우박이 내렸다. 4~5월 잦았던 강우도 낙과의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되는데, 산내면사무소 직원에 따르면 5월엔 14일 동안이나 비가 내렸다.

지난해 수확기를 앞두고 불어닥친 태풍에 텅 빈 창고 한 켠을 상자로 채웠다던 손씨는 “올해도 창고에는 쓰지도 못할 상자만 가득하다. 저쪽 창고에도 있다. 작년에도 사과 상자를 사 놓기만 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로 출하에 쓰진 못할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덧붙여 “이렇게 재해가 발생하면 정부에선 뭐 농약대 얼마 지급해준다고 하지만, 실상 들어가는 농약값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지금 농자재 회사에서 낙과에 좋은 약이니 비료니 하는 것들을 팔겠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듯 평소보다 관리에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라며 “지난해처럼 올해도 내년 농사 바라보며 또 그렇게 농사짓는 거지 별 다른 수가 없다”고 덤덤히 심경을 밝혔다.

이씨 역시 말을 보태 “SS기 기름값이나 인건비 다 빼고 순수히 농약값만 1년에 1,000만원 이상 들어간다. 맺힌 열매가 없어도 더 들어가면 더 들어가지 덜 들어가진 않는다”라며 “정부에서 주는 농약대는 3,000평당 249만원밖에 안 된다. 진짜 새 발의 피인데, 지난해엔 그마저도 연말 다 돼서 입금됐다. 매년 이렇게 재해가 반복되다 보니 진짜 농사 계속 지을 수 있겠나 싶다”고 호소했다.

또 김씨는 “농민들은 사과 판 돈이 연봉이고 과수원이 곧 직장인데, 진짜 당장 먹고 사는 것부터가 큰 걱정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는데 고용보험조차 없다”라며 “직장인들 다 있다는 그 흔한 실업급여조차 없단 얘기다. 이런 상황이 상상이나 가겠나”라고 반문했다.

한편 이상열 밀양얼음골사과발전협의회장은 “3,000평 과수원 적과하는데, 3일간 10명씩이 동원됐다. 지금 인건비가 15만원 정도인데 대략 450만원 주고 적과 다 마친 상태에서 낙과가 시작된 거다”라면서 안타까운 농가들의 상황을 전했다. 덧붙여 “지난해 수확량이 너무 안 나와서 다들 올해만 바라보고 나무를 가꿨는데 또 대책 없이 냉해가 닥쳤고, 농가에선 1차 적과 작업으로 약 5개 중 가장 우세한 열매 하나 남겨 놓은 거였는데 지금 그 하나 남겨 놓은 게 싹 떨어진 거다. 피해가 너무 막심하다. 농약대 지원만으론 안 된다. 재난지원금 지급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회장은 “농작물재해보험도 가입률이 낮을 때는 농민들 인식 개선, 가입 독려에 열을 올렸지만 지금은 농민들 인식이 바뀌어 보험 가입을 하려 해도 정작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보니 보험 가입을 망설이는 정도에 이르렀다. 괴리가 다시 생긴 만큼 넣으나 마나 한 보험 말고 진짜 제대로 된 보험으로 제 역할 할 수 있게 정부가 제도 자체를 바꿔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내면사무소에 따르면 1일 기준 산내면 전체 1,300여 농가 중 1,190농가가 피해를 신고했으며, 피해면적은 약 186ha 정도다. 전체 중 보험 가입 농가는 1,170농가로 약 90%며 130농가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지난해 태풍 때와 마찬가지로 농민들은 반복되는 기상재해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다수 농민들은 “하늘이 하는 일인데 어찌할 도리가 있겠나”라면서 근본적인 예방책과 실질적인 피해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지난 8일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의 사과 과원. 적과 후 단 한 개씩 남겨 둔 열매가 바닥에 잔뜩 떨어져 있다.
지난 8일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의 사과 과원. 적과 후 단 한 개씩 남겨 둔 열매가 바닥에 잔뜩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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