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위 작물도 ‘유기농화’?

서방세계 ‘유전자가위 규제 완화’ 정책, 국내에 끼칠 영향은?

  • 입력 2021.05.14 14:4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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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해 유전자가위 기술로 개발한, 엽록소가 합성되지 않는 백색증 포플러 나뭇잎(오른쪽).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해 유전자가위 기술로 개발한, 엽록소가 합성되지 않는 백색증 포플러 나뭇잎(오른쪽).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대한민국에서 유전자가위 기술로 만들어진 농산물은 유전자조작농산물(GMO)이다. 적어도 현재는 그렇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유전자가위 기술 규제 완화 및 해당 기술의 Non-GMO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기업도 이 추세를 따르며 유전자가위 기술 규제 완화에 동조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기존 GMO가 특정 작물에 새 유전자를 결합시켜 새 품종을 개발하는 방식이라면, 유전자가위는 유전체에서 원하는 부위의 DNA를 정교하게 잘라내 기존 작물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기술이다.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유전자가위는 GMO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유전체 속의 가닥 수십억개 중 한 개만 잘라내는 걸 ‘조작’이라 하는 건 과도하다는 뜻이다.

과학자 및 유전자가위 작물로 이익을 보려는 기업들의 입장이 반영된 걸까. 일부 선진국에서 최근 유전자가위 관련 규제의 완화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전통적 육종 방식으로 개발된 유전자가위 식물엔 기존 GMO 대상 규제를 면제하는 ‘안심규정(SECURE rule)’을 지난해 채택했다.

2016년 한 해에 미국에선 유전자가위 기술로 가뭄에 내성이 강한 옥수수, 갈변 현상을 방지한 버섯과 감자, 곰팡이에 내성이 강한 밀이 개발됐다. 코르테바 농업과학·다우 듀폰 등의 ‘농생명공학’ 대기업들이 유전자가위 농작물 개발을 주도하며, 이 기업들은 J.R. 심플롯(2018년 우리나라에 독성 GM 감자를 수출하려 했던 기업) 등의 농식품기업과 지적재산권을 공유한다.

2018년 미국과 아르헨티나·호주·브라질·캐나다 등 12개국은 “유전자가위 방식으로 생산된 농산물과 전통 육종 방식으로 생산된 농산물 간의 자의적이고 부당한 구별을 피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나라들이 유전자가위 규제 완화를 앞장서서 부추기는 나라들이라 볼 수 있다.

그 대척점에 있는 집단이 유럽연합(EU)이다. 미국이 유전자가위 기술로 만들어진 ‘결과물’에 대한 규제 방침이라면, EU는 유전자가위 기술 개발 ‘과정’에 대한 규제 방침이므로 더 규제 수준이 엄격하다.

그러나 EU 일각에서도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들의 목소리는 EU가 지난해 기후위기 대응방안인 ‘EU그린딜’의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Fork(F2F))’ 계획을 발표한 뒤 더욱 거세졌다.

유럽 각국 연구자들은 지난달 20일 학술지 <식물과학동향(Trends in Plant Science)>에 발표한 글 ‘유럽의 F2F 계획과 생명공학·유기농업에 대한 약속’에서 “유기농업에서 새로운 육종기술 사용을 동시에 허용하지 않은 채 유기농 생산 증가를 약속하는 F2F 전략은 (EU그린딜의)‘지속가능한 개발목표’ 실현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F2F 계획엔 2030년까지 EU 농지의 최소 25%를 유기농지로 만들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위 연구자들은 유기농 생산량이 일반농업에 비해 떨어져 F2F의 계획 실현이 불가능하니까,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해 이 기술을 유기농업에 접목시키고, 유기농업 생산량을 늘리자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유전자가위 작물의 유기농화’를 주장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입장은 어떨까?「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GMO법)」제2조 2호에선 ‘유전자변형생물체란 현대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새롭게 조합된 유전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생물체’라고 규정한다.

GMO법엔 유전자가위에 대한 직접적 입장표명은 없으나, 법 해석적 관점에서 볼 때 외래유전자 도입 없이 유전자가위 기술만 적용한 산물도 현대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새롭게 조합한 유전물질을 포함하므로 GMO법상의 GMO로 보는 게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 측 입장이다.

그러나 국내의 대표적 유전자가위 기술 개발회사인 툴젠은 지난해 유전자가위 기술로 페튜니아와 콩을 만들어, 미국 농무부(USDA)로부터 GMO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인정’받았다. 미국의 유전자가위에 대한 규제완화 움직임이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기업, 심지어는 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최근 정부 일각에서도 심상치 않은 동향이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는 지난달 22일 ‘2021년 그린바이오 벤처육성 지원사업’ 대상으로 총 10개 기업을 선정했음을 밝혔다. 선정된 기업 중 ㈜지플러스생명과학이란 곳은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한 비타민D, 비(非)단백질성 아미노산(GABA) 등이 함유된 기능성 강화 토마토를 개발하는 곳이다. 농식품부는 이곳을 종자 분야 대표 벤처기업으로 선정해, 기술·제품의 기능 향상 및 공정개선을 위한 사업고도화자금 2억8,0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의 유전자가위 규제 완화 시도, EU 일각의 유전자가위-유기농업 연계 시도, 그리고 우리나라 농식품부의 유전자가위 기술 개발업체 지원. 이 모든 현상은 ‘유전자가위의 Non-GMO화’라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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