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마늘·양파 의무자조금이 마침내 닻을 올렸다. 노지채소 품목 중에선 최초며 홍보·마케팅에 집중해온 지금까지의 의무자조금과 달리 수급정책을 농민 스스로 주도할 창구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마늘·양파 의무자조금은 지난해 대폭락 사태 이후 농식품부가 ‘근본적 수급대책’으로서 추진한 사업이다. 때마침 탄생한 품목 농민단체 전국마늘·양파생산자협회가 주체가 되고 농협조직인 한국마늘·양파산업연합회가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단기간에 그 뼈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원래는 지난 8월 출범이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19로 대의원회 소집이 연기돼 뒤늦게 지난 13일 마늘, 14일 양파 의무자조금을 출범하게 됐다.
의무자조금은 해당 품목의 전국 생산농가 과반이 참여하는 만큼 법이 부여하는 강력한 권한을 갖는다. 경작 및 출하 신고제를 운영할 수 있고 시장 출하규격을 설정할 수 있으며 수출 등에 단일 유통조직을 지정할 수도 있다.
가령 경작신고제를 운영해 적정면적과 실재배면적의 정확한 오차를 확인하면, 부족하거나 남는 면적에 대해 수급정책을 좀 더 세밀하게 펼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폭락 사태에도 출하규격 설정 후 위반 패널티를 부과하거나, 유통명령을 매우 기민하게 발동함으로써 공격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더욱이 정부기구가 아닌 생산자 자조조직이기 때문에 수입종자 사용 등 농민 스스로의 도덕적 일탈이나 수입업자들의 과도한 수입에 직접 압박을 가하는 활동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우려도 있다. 겉보기엔 농민·농협·농식품부의 협력이 빚어낸 걸작 같지만 출범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세 주체 간의 팽팽한 신경전으로 점철돼 있다. 우선 의무자조금이라는 틀 안에서 강제로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농민과 농협이 마늘·양파산업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얼마나 단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자칫 농협의 과도한 개입이 ‘농민 직접 수급조절’이라는 의무자조금의 목적을 뒤엎어버릴 우려가 있다. 일단 마늘·양파 모두 농협이 농민들에게 주도권(대의원·자조금관리위원 의석)을 양보한 모양새지만, 마늘보다 농협 참여가 더 많은 양파자조금에서 특히 긴밀한 협력관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와의 협력은 단위가 더 큰 문제다. 의무자조금이 면적축소 등 농민 스스로의 숨통을 옥죄는 장치가 되고, 농식품부는 슬쩍 수급정책에서 발을 빼려는 게 아니냐는 농민들의 우려가 이번 대의원회에서도 쏟아졌다. 김형식 농식품부 원예산업과장은 이에 “‘자율적 수급조절’이라 하니 그런 걱정을 하시는 것 같은데 ‘파트너쉽’이라고 생각해 달라. 정부는 정부가 할 일을 하며 모든 것을 잘 도와드릴 테니 여러분도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달라”고 답했다.
대의원들은 최상은 전국마늘생산자협회 부회장을 마늘의무자조금관리위원장으로, 남종우 전국양파생산자협회 회장을 양파의무자조금관리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대의원회 회장엔 각각 이창철 대정농협 조합장과 노은준 무안농협 조합장이 뽑혔다. 대의원회는 농협이, 자조금 운영은 농민이 수장을 맡은 것이다.
당초 계획상 8월 의무자조금 출범 이후 경작신고제 등을 구축하며 내년산 수급관리에 나섰어야 했지만 코로나19 변수로 파종기를 지나 많이 늦어진 상황이다. 두 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는 빠른 시일 내에 사무국을 구성해 늦게나마 수급관리를 시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