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인근 주민 “송전탑 싫죠”

건강권·재산권 피해 및 마을 공동체 가치 훼손
수도권 발전력 공급 위한 지역착취 구조도 문제

  • 입력 2020.07.19 18:00
  • 수정 2020.07.20 09:19
  • 기자명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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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13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로 향하는 지방도로에 500kV 초고압 송전탑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13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로 향하는 지방도로에 500kV 초고압 송전탑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김현주 기자]

 

강원도 홍천군 신대리는 최근 동해안(신한울)과 신가평을 잇는 송전선로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국에 설치된 초고압 송전탑은 총 1,040개로 그중 32%가 강원도에 집중돼 있다. 홍천군에도 20년 전 건설된 21개의 초고압 송전탑이 있다. 그런데 한국전력공사(한전)는 새로운 송전탑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추진 중이다.

한전은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입지선정위원회를 꾸렸지만 구성원 대표성에 문제 제기가 계속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송전탑 설치로 가장 피해를 많이 입게 될 주민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강원도 홍천군 신대2리 주민 원덕상씨(63)의 말투에는 체념이 묻어있었다. 그는 20년 전 마을에 송전탑이 처음 들어오던 때, 삶의 터전을 떠나기 싫어 마을 사람들과 반대했다. 하지만 국가의 힘은 강력했다. 송전탑은 마을 인근에 자리 잡았고, 별수 없이 송전탑과 마주한 채 살아가고 있다. “(20년 전 송전탑이 들어오고) 한 10년 동안은 일어나면 보이지, 거실에서도 보이지, 밤만 되면 번쩍번쩍하지. 그런데 인자 하도 보니까 아주 만성이 되았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송전탑을 받아들인 것은 원씨만이 아니다. 홍천군 신대리에 있는 140여 가구 중 송전탑 1km 범위에 사는 가구는 약 110개다. 신대2리 삼은마을 주민들은 송전탑으로 인한 피해를 묻는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답했다. “소리가 엄청나지. 전기 흐르는 소리가. 이 마을에서 제일 가까운 송전탑은 집에서 불과 50m 정도밖에 안 돼. 비가 오거나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윙- 하고 소리가 나.”

문제는 일상 속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주민들은 송전탑 설치 이후, 주변 마을을 포함해 암 발생이 늘었다고 증언했다. “한전에서는 50m, 100m 떨어지면 전파가 자연 소멸하니 괜찮다고 말하는데, 송전탑 들어오고 여기저기서 암에 걸렸어. 지금 게이트볼 치고 있는 주민 한 명도 암 때문에 수술을 6번 정도 했어.”

재산권 침해 문제도 있다. 한 주민은 “나는 저 골짜기에 땅이 있거든요. 비진흥구역인데 한 800평 돼요. 애들 공부 가르치려고 저걸 팔려고 해도 팔리질 않아요. 안 사요. 평당 3만원, 2만원해도 안 사는 것을 어떻게 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고, 송전탑 인근 땅은 잘 팔리지 않기에 담보 대출도 사실상 불가하다.

주민들은 실질적 피해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 파괴 또한 우려하고 있다. 주민들은 “(20년 전) 송전탑 들어올 때, 한전에서 보상금을 마을별로 다르게 측정하더라고.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들인데도 싸움이 붙을 수밖에 없는 거지. 주민들이 연대해서 (송전탑 설치 반대) 하다가도 그런 식으로 분열시켜 버리니까 안심을 할 수가 없는 거야”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전기 소비는 수도권에서 하는데, 소비를 위한 희생은 지역에 강요하는 지역 착취 구조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민들은 반쯤 단념한 듯했다. “송전탑을 막다가, 막다가, 못 막아본 경험이 있잖아요. 정부에서 국책사업이라고 내밀면 주민들이 여기서 장기간 반대를 할 수가 없어요. 먹고 사는 문제도 있으니 매일 같이 반대 시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굳이 여기에 송전탑을 들이겠다고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테지만, 보상해준다고 해도 내가 평생을 살아간 마을인데 떠나기 힘들죠.”

신대리를 포함한 강원도 내 피해 주민 의견 표현을 위해, 지난해 11월 강원도 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김정래·남궁석)가 꾸려졌다. 강원도 내 영월군·정선군·평창군·홍천군·횡성군 주민대책위원회가 모여, 한전에서 강행하고 있는 입지선정위원회 백지화와 수도권 전력수급에 대한 공론화 논의 추진을 목적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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