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농촌에 송전탑을 꽂을텐가

  • 입력 2020.07.19 18:00
  • 수정 2020.07.20 09:25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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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태백산맥 줄기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송전선로 건설을 준비 중이다. ‘500㎸ HVDC(초고압 직류송전) 동해안-신가평’이라 불리는 이 송전선로는 경북 봉화군에서 시작해 강원 정선-평창-영월-홍천-횡성을 지나 경기 가평군까지 이른다.

이 사업은 2017년 문재인정부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윤곽을 드러냈다. 환경단체들이 ‘제2의 밀양’을 우려하며 반대했지만 한국전력공사에겐 ‘소 귀에 경읽기’나 다름없었다. 송전선로 사업의 절차상 필요한 입지선정위원회를 임의로 만들어 최적의 송전선로 경과대역을 정하는데만 골몰했다.

이 사업을 가장 늦게 알게된 사람들은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에 사는 마을주민들이었다. 지난해 한전이 주민설명회를 준비할 때에야 비로소 안 것이다. 주민들의 대처는 빨랐다. 각 지역에 대책위가 만들어지더니 지난해 9월 18일, 강원도 차원의 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전국에 설치된 1,040개의 초고압 송전탑(765㎸) 중에서 334개가 강원도에 몰려있다. 송전탑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주민들의 건강권 및 재산권 침해 등의 피해가 집중적으로 누적된 지역이란 뜻이다. 범도민 차원의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는 이유다.

한전의 송전선로 사업은 강원뿐 아니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초고압 송전탑 등 총 500여기의 송전탑이 설치된 ‘송전탑 왕국’ 충남 당진에서도, 송전탑 100여개를 세울 계획이 예고된 충북 보은에서도, 해저송전선로를 만들겠다는 전남 완도에서도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 그리고 기존 송전선로를 이용하겠다는 전제 하에 추진되는 각종 발전소사업들 역시 갈등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전에겐 발전소가 먼저냐 송전선로가 먼저냐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전국 간척지마다 태양광 발전소를 짓고 그 다음에 송전선로 공사를 별개로 해도 된다. 또,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처럼 보낼 전기가 없지만 일단 송전선로부터 짓고 나중에 핵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공급해도 된다. 희대의 악법인 ‘전원개발촉진법’이 살아있는 한, 밀양의 비극은 어느 농촌에서나 똑같이 재현될 수 있다.

힘없는 할머니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송전탑 공사를 시작한 밀양 행정대집행 이후, 벌써 6년이 지났다. 문재인정부는 전국의 농촌마다 들쑤시고 다니는 한전 마피아들의 시대착오적인 행각을 언제까지 두고만 볼건가? 더불어민주당이 절대다수당인 국회는 전원개발촉진법을 언제 폐기할텐가?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 삼은마을 주위로 765kv 송전선로가 지나고 있다. 거대한 송전탑과 가장 가까운 주택은 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았다. 이 마을에 다시 500kV 송전선로를 놓겠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송전탑 결사반대를 외치면서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 삼은마을 주위로 765kv 송전선로가 지나고 있다. 거대한 송전탑과 가장 가까운 주택은 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았다. 이 마을에 다시 500kV 송전선로를 놓겠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송전탑 결사반대를 외치면서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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