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합하려 통합했나

  • 입력 2017.09.15 10:49
  • 수정 2017.09.15 10:53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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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농민들의 성난 목소리가 농협중앙회 앞에서 울려 퍼졌다.지난 12일 서울시 중구 농협중앙회 앞에서 열린 ‘농협 적폐청산 요구 릴레이 집회’에서 전국한우협회 전북도지회 소속 농민들이 ‘농협 적폐 청산’ 등이 적힌 선전물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시작부터 잘못됐다.”

농협과 축협이 통합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통합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17년 동안 축협은 농협 조직에서 소외감만 쌓아왔다. 지난해 11월 전국 축산인들이 축산특례의 존치를 요구하기 위해 상경했던 것도, 지난 12일부터 전국한우협회 회원들이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앞에서 ‘농협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는 것도 그 소외감이 뿌리다.

축산농가를 위해 경제사업을 활성화해야 하는 지역축협과 품목축협은 농협경제지주의 안심축산, 자회사 목우촌 그리고 지역농협과도 사업영역을 두고 경쟁에 여념이 없고 도시형축협은 신용사업에 집중하며 축산을 영위하지 않는 도시 조합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사이에서 축산농가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전달되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고 있다.

최근 농협중앙회는 ‘회원조합지도·지원규정’을 개정했다. 읍·면지역의 조합이 동일지역 내에서 본점을 이전하는 것은 예외로 둬 조합 간 본점과 지사무소의 거리제한을 없애겠다는 내용이다. 규정이 개정되자 7년 전부터 본점이전을 두고 익산군산축협과 갈등해왔던 북익산농협이 청사이전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역에서는 중앙회가 노골적으로 지역농협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X지역축협 조합장은 “모든 게 농협 위주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푸념했다. Y지역축협 조합장은 “농협중앙회 이사 중 축협 조합장은 2명뿐인데 2명이 전국 축협을 어떻게 돌보나. 세가 약하니 지역축협의 입지가 지역농협에 밀리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지역축협이 축산경제대표이사 선출에 참여하는 것도 중앙회장에겐 눈엣가시일 수 있다. 농협경제대표이사 선출에 농협이 직접 참여하도록 조합장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야하는데 축협들을 나무라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으니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지역에서는 2000년 농·축협 통합과 2012년 농협 신경분리, 2017년 경제지주체제로 전환 등의 사업구조 개편을 너무 성급하게 진행한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회원조합 간 중복되고 경합이 우려되는 문제들에 대한 사전조율이나 지역조합장들과의 논의도 전혀 없었던 ‘밀실행정’의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결국 잘못 끼웠던 첫 단추부터 바로 채워야 한다. 협동조합으로서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지역조합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축산농가의 권익을 우선하는 경제사업의 기초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소외감을 넘어 불신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역축협의 불안감을 농협중앙회는 해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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