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농사 지어놨는데 팔 수가 없다”

가락시장 수박 팰릿출하 의무화
갑작스런 통보에 산지선 발 동동

  • 입력 2016.05.08 10:36
  • 수정 2016.05.08 10:3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사장 박현출, 공사)가 이달부터 가락시장 수박 팰릿출하를 사실상 의무화하자 산지가 큰 혼란에 빠졌다. 지금의 산지 여건으로는 팰릿출하 시스템을 맞출 수가 없어 갑자기 유통경로 자체가 막혀버린 상황이다.

팰릿출하는 기존의 산물출하보다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 박스비, 팰릿 대여비는 물론이고 장시간 인력을 고용할 인건비와 지게차 대여료까지 소요된다. 포장품은 산물보다 적재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운송에 필요한 차량 수도 늘어나게 된다. 수박 산지수집상 이상태씨는 “5톤 트럭 한 대 기준으로 산지에서 가락시장 하차까지 100만원 안쪽이면 끝나던 게 이젠 200만원 이상이 들고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박스가 아닌 우든칼라를 사용할 경우엔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든칼라는 물량 자체가 달리고 대여업체가 지역농협이나 영농조합법인 위주로 거래를 하고 있어 산지수집상들이 사용하기는 어렵다. 수박은 대부분 밭떼기로 거래돼 왔기 때문에 산지수집상이 비용부담을 이유로 손을 뗀다면 개별로 팰릿출하를 할 수 없는 농가는 출하할 방법이 없다.

▲ 경북 고령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조응규씨가 지난 3일 수박 선별출하장에서 포장을 마치고 남은 상자를 매만지며 수박 팰릿출하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가락시장은 이달부터 수박 팰릿출하를 사실상 의무화했다. 한승호 기자
비용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락시장 내에서 행하던 작업을 산지에서 하는 꼴인데, 산지엔 가락시장 같은 작업공간이나 전문인력이 없다. 산지APC를 갖춘 지역도 있지만 그 동안 물류개선이 지지부진했던 탓에 대개 유휴시설이 돼 있다. 노지에서 선별·포장작업을 하는데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비가 오면 작업을 아예 할 수가 없다.

별도의 작업공간이 있다 해도 수월치는 않다. 한 출하트럭 운전기사는 “산지에서 수확해 트럭에 싣고, 작업장에 하차해 포장·팰릿적재를 한 뒤 다시 지게차로 상차해 시장으로 간다. 산물로 상차하면 밥 먹고 쉬어가면서도 4시간밖에 안 걸렸는데 팰릿으로 하려니 내리 일해도 12시간이 걸린다. 하루 몇 대씩 올라가던 게 한 대씩밖에 못가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사 측은 출하자들과 지속적으로 논의해 온 사안이라 설명했지만 산지수집상이나 농민들은 대부분 지난달에야 팰릿출하 의무화 소식을 처음 들었다는 반응이다. 그나마 연로한 농민들은 이같은 상황조차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경북 고령의 수박농가 조응규씨는 “수박을 출하할 때가 다 됐는데 갑자기 죽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며 “농사짓는 것만도 힘든데 판매에 관해선 안심할 수 있게 해 줘야지, 농민들한테 이렇게 부담을 떠넘기는 건 정말 아니지 않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관련기사 6면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