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민은 가락시장을 위한 볼모가 아니다

  • 입력 2016.05.08 10:3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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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도 갑작스런 일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수박 팰릿출하를 지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물류효율화를 위한 인센티브 정책을 펴는구나 하고 대수롭잖게 여겼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니 그것은 인센티브가 아니라 극단적인 패널티 정책이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강수를 둘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락시장은 이달부터 사실상 팰릿출하가 아니면 수박을 받지 않는다. 팰릿출하를 위한 인프라가 부실한 상태에서 비용부담을 느낀 산지수집상들은 하나둘 수박에서 손을 뗄 것이고, 농민들은 출하할 방법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수박 집중출하가 시작되는 6월이 온다.

청과직판상인 가락몰 이전 문제, 가락몰 진입로 공사 문제 등 공사는 특히 최근 들어 시장 내 여러 주체들과 잡음을 양산하고 있다. 가락시장을 뜯어고치는 중대한 사업을 앞두고 추진력을 발휘한다 볼 수도 있지만, 어쩐지 시설현대화라는 괴물에 쫓겨 스스로를 지나치게 다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적어도 이번 수박 물류개선 사업만은 명백히 그렇다. 출하자 몇 명과 사전 논의를 했다지만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모든 출하자들은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지금의 행태는 최소 몇 달간의 유예기간도 없이, 갑작스레 농민들을 볼모로 잡고 정부더러 예산을 내 놓으라 협박하고 있는 것밖에 안 된다.

물론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사업은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정부가 가락시장 현대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에 필요한 비용은 최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을 요구하는 공사의 행동은 순서가 뒤집혀도 한참 뒤집혔다.

가락시장 현대화가 시급하다 해도, 농민들의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이 확실하지 않다면 공기업으로서 강행해선 안 될 일이었다. 설사 의도대로 정부의 충분한 지원을 받아내고 수박 물류효율화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있었던 공사의 독단적 태도는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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