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를 밴 어미소가 우사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힘줄이 툭툭 불거진 머리를 우사의 철골 구조물에 비비는가 싶더니 이내 주저앉아 숨을 헐떡거린다. 앞발과 뒷발을 좌우로 쭉 내뻗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못 참겠다는 듯 다시 일어나 우사를 돌아다닌다. 송아지를 낫기 위해 3시간째 진통중이라는 함용상(52,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장원리)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소는 사람과 비슷하다. 새끼를 배고 열 달을 품어 세상에 내놓는다. 통증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 출산에 익숙(?)한 소는 진통 한 두 시간 여 만에 송아지를 낫기도 하지만 그러하지 못한 소는 격한 울음소리 하나 없이 반나절 동안 진통만 하기도 한다.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는 어미소만큼 애가 타는 것은 농민이다. 송아지를 낫기까지 몇 시간이고 지켜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불볕더위에 하우스는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하우스 양쪽 문을 열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더운 공기를 품은 바람은 초여름 햇볕에 달궈진 몸을 식혀주지 못했다. 지난 3일 올해로 21년째 수박농사를 일구고 있는 이태희(60, 경남 의령군 의령읍)씨네 수박 출하 작업이 한창이었다. 의령의 농특산물 브랜드인 ‘토요애’로 전량 출하될 수박이었다.6명으로 구성된 작업팀은 손발이 척척 들어맞았다. 작업반장인 박순자(51)씨가 길이 80m 하우스를 오가며 사방으로 뻗은 줄기에서 수박을 걷어내자 건장한 일꾼들이 수박을 손수레로 옮겨 담았다. 개당 7~8kg 정도에 이르는 수박 10여개가 손수레에 담겨 하우스 밖으로 옮겨졌다. 하우스 1동당 평균 350여개의 수박이 출하됐다.
평평하게 다진 논에 가지런히 모판을 정렬했다. 미리 상토를 깔아 놓은 모판은 ‘붉은 띠’를 이루며 길게 늘어서 있었고 못자리에서 나선 농민들은 ‘붉은 띠’ 사이로 점점이 섰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황오복(70), 전영자(75), 손옥화(51), 최인숙(65), 정정숙(42), 박미화(37)씨는 볍씨를 뿌렸다. 침종과 소독을 거쳐 미리 싹을 틔운 볍씨였다. 바구니 한가득 볍씨를 담은 농민들은 허리 옆에 형형색색의 바구니를 끼고 모판과 모판 사이를 오고 가며 연신 씨를 뿌렸다. 농민들의 세심한 손길에 골고루 볍씨가 뿌려진 모판은 아침햇살을 머금어 누렇게 빛났다. 여성농민들이 씨를 뿌리고 지나가자 김영석(46), 김용덕(43), 김명성(46)씨는 볍
사연 하나. 이갑상(79)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7마지기의 논을 물려받았다. 어릴 적부터 배운 것이 소로 쟁기 끌고 못 줄 잡고 씨 뿌리는 일이라 농사는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 한 달에 두세 번씩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밀려 왔다. 협심증. 그 때마다 진주 시내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왔다. B, J, H 병원 등 참 많은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지만 이씨는 “겁이 나서 있지를” 못했다. 한 달에 최소 7~8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가 문제였다. 농사 지어 번 돈을 고스란히 자신의 몸에 쓸 수밖에 없었다. 진주의료원을 찾게 된 건 그때였다. 무엇보다 저렴한 병원비, 한 달에 10만원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고질병인 심장질환으로 병원 신세를 지은 지 어느덧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시린 기운을 밀어젖히며 너른 들판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온기가 닿은 그 곳에 씨감자 심는 손길이 분주하다. 5톤 트럭 한 차에 거름을 싣고 와 밭에 내고 골을 친 것은 진작이다. 물이 차면 감자가 썩고 덩달아 바라보는 농민의 마음도 썩어문드러질 터, 하루 일당 50만원에 포크레인 불러 들여 3천 평 들녘 가장자리에 배수로 길 또한 곧고 넓게 텄다. 씨감자 든 노란 포대를 앞으로 끌고 뒤로 당기는 주명희(75), 임광자(67), 김복순(69) 할머니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호미로 구멍을 내는 것과 동시에 씨감자가 흙 속에 파묻힌다. 1분 1초가 아까운 듯, 눈 깜짝할 사이 손 한 두 뼘 만 한 간격 마다 씨감자가 ‘팍팍팍’ 꽂힌다. “우리 같은 베테랑은
어렴풋이 보이는 풍경은 여느 농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금광교 너머 야트막하게 솟은 들판에 앉아 있던 노부부는 콩을 타작하고 있었다. 도리깨로 콩을 털고, 손으로 골라내고…. 얼어붙은 대지가 녹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기운에 들일 나선 노부부의 손놀림은 성큼 다가온 따사한 봄볕 마냥 부지런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풍경은 낯설었다. 거름을 내고 갈아줘야 할 밭엔 마른 흙먼지가 폴폴 날렸다. 나락농사 지어야 할 논은 무성한 잡초로 수풀을 이뤘다. 콩을 골라내던 장모 할아버지(75)는 “수년째 농사를 짓지 못하니까”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제서야 마을 입구 운곡서원유허비(雲谷書院遺墟碑) 옆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경작금지안내’ 붉은 색 경고문구가 적힌 푯말은 마을 곳곳 들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