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감자 심는 날

사진이야기 農·寫

  • 입력 2013.04.05 09:37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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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시린 기운을 밀어젖히며 너른 들판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온기가 닿은 그 곳에 씨감자 심는 손길이 분주하다. 5톤 트럭 한 차에 거름을 싣고 와 밭에 내고 골을 친 것은 진작이다. 물이 차면 감자가 썩고 덩달아 바라보는 농민의 마음도 썩어문드러질 터, 하루 일당 50만원에 포크레인 불러 들여 3천 평 들녘 가장자리에 배수로 길 또한 곧고 넓게 텄다.

 

씨감자 든 노란 포대를 앞으로 끌고 뒤로 당기는 주명희(75), 임광자(67), 김복순(69) 할머니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호미로 구멍을 내는 것과 동시에 씨감자가 흙 속에 파묻힌다. 1분 1초가 아까운 듯, 눈 깜짝할 사이 손 한 두 뼘 만 한 간격 마다 씨감자가 ‘팍팍팍’ 꽂힌다.

“우리 같은 베테랑은 요즘 신나. 오라는 곳 많아서. 하하.” 곱디고운 새색시처럼 수줍은 웃음 날려주는 세 할머니가 고랑과 고랑 사이를 이어주듯 나란히 앉아 씨감자를 밭에 심는 사이, 이계룡(51)씨는 씨감자가 든 포대를 어깨에 들쳐 메고 고랑을 오간다. 봄이 미처 오기도 전에 거름치고 고랑을 낸 장본인이다.

 

▲ 주명희, 임광자, 김복순 할머니와 이계룡씨가 하지감자를 심던 중 잠시 여유를 부린다. 살짝 내비치는 그 미소들이 참 곱다.
이씨는 “오늘에야 감자를 심지만 일은 진작에 시작했다”며 ‘진작’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는다. 세 할머니와 이씨가 고랑 끝에 다다를 무렵, 이씨의 어머니인 임을순(84)씨가 참이 든 검은 봉지를 들고 이들 곁으로 다가온다.

 

불룩 튀어나온 검은 봉지의 모양이 꼭 밭일에 나선 아들과 일손을 돕는 할머니들을 향한 노모의 마음처럼 풍성하다. 감자를 심는 여러 손길과, 봄이 옴을 알리는 따스한 볕과 바람도 모두 쉬어가는 시간, 노모의 정이 담긴 참을 다정스레 나눈다.

하늘과 땅과 바람, 농민이 모두 온기를 품은 지난 3월 말,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1구의 한 들판에서 하지감자를 심었다.

 

▲ 참을 챙겨 고랑 사이를 걷는 임을순씨의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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