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땐, 후회해도 소용없다

사진이야기 農·寫 l 영주댐 건설로 수몰 예정인 금강마을

  • 입력 2013.03.15 12:15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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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보이는 풍경은 여느 농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금광교 너머 야트막하게 솟은 들판에 앉아 있던 노부부는 콩을 타작하고 있었다. 도리깨로 콩을 털고, 손으로 골라내고…. 얼어붙은 대지가 녹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기운에 들일 나선 노부부의 손놀림은 성큼 다가온 따사한 봄볕 마냥 부지런했다.

 

▲ 때 늦은 콩타작에 분주한 노부부의 모습 뒤로 수몰 예정 지역의 도로를 높이기 위한 교각 설치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때 늦은 콩타작'도 올 봄이 지나면 기억 속 풍경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풍경은 낯설었다. 거름을 내고 갈아줘야 할 밭엔 마른 흙먼지가 폴폴 날렸다. 나락농사 지어야 할 논은 무성한 잡초로 수풀을 이뤘다. 콩을 골라내던 장모 할아버지(75)는 “수년째 농사를 짓지 못하니까”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제서야 마을 입구 운곡서원유허비(雲谷書院遺墟碑) 옆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경작금지안내’ 붉은 색 경고문구가 적힌 푯말은 마을 곳곳 들판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영주댐 건설을 위해 한국수자원공사가 매입한 땅이므로 농작물 경작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영주댐 완공 후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 수몰될 예정이니 헛힘 쓰지 말라는 경고였다. 영주댐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낙동강유역 용수 확보와 홍수피해 방지를 위해 만드는 다목적댐으로 저수용량은 181백만㎥에 달한다. 댐 건설도 마무리단계다.

 

▲ 마을 입구 운곡서원유허비 옆에 '경작금지'를 안내하는 팻말이 박혀 있다.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강마을. 인동 장씨 집성촌이자 금광리 장씨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3호)등으로 알려진 유서 깊은 마을이다. 400여 년 전 사람이 들어와 터전을 잡고 옛 정취 그대로 간직한 고택에서 약 100여 농가가 이웃사촌하며 살아왔다.

 

굽이굽이 물돌이 만들며 흐르는 내성천을 끼고 살아온 주민들은 안동 하회마을보다 더 좋은 마을로 ‘금강마을’을 손꼽았다. 모래 흐르는 강, 금모래 반짝이며 마을을 휘감고 도는 내성천은 한 폭의 비단을 펼친 듯 곱고 아름답다고 해 ‘금강’으로 불렸다.

하지만 2009년 영주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마을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물이 차오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마을, 100여 농가는 10여 농가로 줄었고 마을의 역사를 고증하던 고택은 폐가가 됐다. 남아있는 주민마저도 곧 대체이주지로 떠날 예정이다. 문화재도 다른 곳으로 이전될 것이다.

 

▲ 마을회관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주민들. '不老亭'이라는 현판이 씁쓸하다.
영주댐은 마을 뿐 아니라 내성천에도 짙은 상흔을 남겼다. 댐으로 물길이 막힌 내성천 하류에는 모래가 쓸려 내려가고 그 자리엔 자갈이 드러났다.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더 이상 모래가 흐르지 못하자 하류 곳곳에는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물길과 모래를 오가며 자박자박 발자국 남길 수 있었던 내성천이 황무지처럼 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일 금광리 마을회관에 좀처럼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주민 예닐곱 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금강마을의 역사와 삶의 궤를 같이 했던 일흔을 훌쩍 넘긴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마을과 운명을 같이 하고픈 바람이 있건만 그저 바람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하여, 담소를 나누며 간간히 웃는 미소 속엔 이미 깊은 시름이 담겨 있다. 마을회관 방 한 구석에 걸린 ‘不老亭(불로정)’이라는 현판이 씁쓸하다. 댐에 물이 차고 나면 400년 된 금강마을도, 금모래 맑은 내성천도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 땐, 후회해도 소용없다.

 

▲ 금강마을 너머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영주댐이 보인다. 댐에 물이 차오르면 4백년 된 마을의 역사도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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