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보이는 풍경은 여느 농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금광교 너머 야트막하게 솟은 들판에 앉아 있던 노부부는 콩을 타작하고 있었다. 도리깨로 콩을 털고, 손으로 골라내고…. 얼어붙은 대지가 녹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기운에 들일 나선 노부부의 손놀림은 성큼 다가온 따사한 봄볕 마냥 부지런했다.
그제서야 마을 입구 운곡서원유허비(雲谷書院遺墟碑) 옆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경작금지안내’ 붉은 색 경고문구가 적힌 푯말은 마을 곳곳 들판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영주댐 건설을 위해 한국수자원공사가 매입한 땅이므로 농작물 경작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영주댐 완공 후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 수몰될 예정이니 헛힘 쓰지 말라는 경고였다. 영주댐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낙동강유역 용수 확보와 홍수피해 방지를 위해 만드는 다목적댐으로 저수용량은 181백만㎥에 달한다. 댐 건설도 마무리단계다.
굽이굽이 물돌이 만들며 흐르는 내성천을 끼고 살아온 주민들은 안동 하회마을보다 더 좋은 마을로 ‘금강마을’을 손꼽았다. 모래 흐르는 강, 금모래 반짝이며 마을을 휘감고 도는 내성천은 한 폭의 비단을 펼친 듯 곱고 아름답다고 해 ‘금강’으로 불렸다.
하지만 2009년 영주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마을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물이 차오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마을, 100여 농가는 10여 농가로 줄었고 마을의 역사를 고증하던 고택은 폐가가 됐다. 남아있는 주민마저도 곧 대체이주지로 떠날 예정이다. 문화재도 다른 곳으로 이전될 것이다.
지난 11일 금광리 마을회관에 좀처럼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주민 예닐곱 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금강마을의 역사와 삶의 궤를 같이 했던 일흔을 훌쩍 넘긴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마을과 운명을 같이 하고픈 바람이 있건만 그저 바람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하여, 담소를 나누며 간간히 웃는 미소 속엔 이미 깊은 시름이 담겨 있다. 마을회관 방 한 구석에 걸린 ‘不老亭(불로정)’이라는 현판이 씁쓸하다. 댐에 물이 차고 나면 400년 된 금강마을도, 금모래 맑은 내성천도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 땐, 후회해도 소용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