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고 또 오르는’ 농사용 전기요금, 도입 취지 잊었나?

한전은 ‘적자’ 핑계로 요금 인상 … 농가 부담은 갈수록 ‘뚜렷’

  • 입력 2024.03.10 18:00
  • 수정 2024.03.10 18:3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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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월 29일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화훼농가 시설하우스에서 한 농민이 채화를 앞둔 장미를 살피고 있다. 장미를 키우기 위해 겨우내 하우스 온도를 20도 이상 유지해온 이 농가의 최근 전기요금은 1,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한승호 기자
지난 1월 29일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화훼농가 시설하우스에서 한 농민이 채화를 앞둔 장미를 살피고 있다. 장미를 키우기 위해 겨우내 하우스 온도를 20도 이상 유지해온 이 농가의 최근 전기요금은 1,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한승호 기자

 

농사용 전기는 지난 1962년 ‘국내 농수산물 생산 장려 및 농어업인 소득 보호’를 위해 도입됐다. 한국전력공사(한전)는 전기요금을 계약종별·계약전력·전압에 따라 부과하는데 △주택용 △일반용 △산업용 △교육용 △농사용 △가로등용 등 6개 계약종별 중 농사용 전기는 그 도입 취지에 걸맞게 제일 낮은 수준의 요금 단가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적자’ 누적이 지속되자 한전은 경영 안정 대책 중 하나로 전기요금 인상을 지속 주장 중이며,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하는 등의 체계 개편과 함께 꾸준히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이에 농사용 전기 역시 여타 계약종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요금 인상이 계속되는 추세인데, 이는 농가 생산비 부담으로 곧장 이어지는 반면 농산물 가격은 물가에 가로막혀 내내 제자리걸음인 까닭에 농민들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가는 실정이다.

 

원가연계형 요금제 도입 후 더해진 각종 요금 항목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지난 2021년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제를 도입했다. 당시 요금 체계가 유가 등 전기 원가 변동분을 적시에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에 전력량요금과 기후환경요금을 더한 뒤 연료비조정요금을 가감하는 방식으로 정해지게 됐다. 전기 기본요금은 전용전력을 기준으로 하며, 전력량요금은 단가에 사용전력량을 곱한 값이다. 기후환경요금과 연료비조정요금 또한 각각의 단가에 사용전력량을 곱해 계산한다. 이 중 연료비조정요금 단가의 경우 분기마다 5원/kWh 상한 범위 내에서 조정되며, 기후환경요금 단가는 신재생에너지의무공급제도 이행비용 및 배출권거래제도 이행비용 등 단가 구성 항목의 비용 변동에 따라 매년 산정·적용된다.

관련해 한전은 지난 2022년 2분기에 기후환경요금을 kWh당 2원 올렸고, 지난해 1분기에도 1.7원을 인상했다. 연료비조정요금은 2022년 1·2분기 동결된 이후 2022년 3분기부터 현재까지 kWh당 5원이 적용되고 있다. 이에 원가연계형 요금제 도입 전과 비교해 현재 기후환경요금과 연료비조정요금은 kWh당 8.7원 인상된 실정이다.

기후환경요금·연료비조정요금 인상은 모든 계약종별에 동등히 적용되지만, 상대적으로 요금 단가가 낮은 농사용 전기의 인상 폭은 여타 계약종별보다 클 수밖에 없다. 농민들은 “2023년 1분기 기준 농사용(을) 전력량요금이 50.3원/kWh인데, 연료비조정요금과 기후환경요금은 합산하면 14원/kWh이다. 전력량요금의 30% 수준이다”라며 “전력량요금에 비해 큰 금액은 아닐 수 있지만, 절대 작은 비중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인상 거듭 중인 요금, 전무한 ‘대책’

이밖에 농사용 전기 전력량요금은 2022년 2분기에 kWh당 4.9원 인상됐고 4분기에 또다시 kWh당 7.4원 올랐다. 아울러 지난해 1분기에는 kWh당 11.4원, 2분기에는 8원이 추가 인상됐다. 정부는 농가 부담 완화를 위해 지난해 1·2분기 인상분을 각각 3년에 걸쳐 분할 적용할 방침이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2022년 2분기 이후 인상된 전력량요금만 2024년 1분기 현재 총 22.6원/kWh에 달하는 상황이다. 농가에서 한 달 동안 약 3만kWh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2년 사이 인상된 전력량요금만 67만8,000원 수준인 셈이다.

아울러 지난해 1·2분기 인상분이 모두 반영될 경우 2025년 2분기 농사용 전기 전력량요금은 2021년 대비 31.7원 차이 난다. 무려 86%p 인상된 값이다.

농가 경영 부담 가중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대책 마련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지난해 충청남도와 전라남도, 경상남도 등 일부 지자체에서 농사용 전기요금 지원 대책을 추진했으나, 올해는 이마저도 전무하다.

지난해 말 전라북도의회는 “한전이 농사용 전기를 따로 분류해 그 요금을 일반용·산업용보다 낮게 책정해온 이유는 국가의 기간산업인 농업을 유지·발전시키는 한편 시장 개방 등으로 열악해진 농업 경제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라며 “농업 경영안정화를 위한 보호장치인 농사용 전기요금의 인상계획을 철회하고 농어업용 에너지 비용의 국비 지원 추진 등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의결해 농식품부에 송부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농식품부에 관련 예산은 단 1원도 마련되지 않았다.

한편 올해 해양수산부(해수부)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양식어업인의 민생 안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전기요금 지원사업을 시행한다고 지난달 밝혔다. 양식어업인이 사용하는 농사용 전기(을) 요금이 급격히 인상돼 24시간 취·배수펌프를 가동해야 하는 어가 경영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해수부는 양식어업인의 생산비 증가가 수산물 소비자 가격으로 이어질 수 있어 어가 지원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고도 덧붙였다.

양식어가가 사용하는 농사용(을) 전력량요금은 저압 기준 2022년 1월(34.2원/kWh) 대비 2023년 12월(53원/kWh) 약 55% 올랐다. 이에 45억원을 투입해 인당 최대 44만원의 전기요금 감면을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기 난방을 사용하는 시설농가 비중이 많지 않고, 농사용 전기요금이 오르긴 했어도 여전히 타 계약종별에 비해 저렴한 수준이다. 지난해 기획재정부와 예산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련 예산을 마련하지 못해 사실상 농가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나 지난해 1·2분기 전력량요금 인상분을 농가 부담 완화 목적으로 분할 적용하기로 한 만큼 농가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농민들과 상반된 입장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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