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언론이 할 일, ‘유착’ 아닌 주민과의 ‘밀착’

  • 입력 2024.02.25 18:00
  • 수정 2024.02.25 18:1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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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역 풀뿌리언론은 지역사회에서 권력을 감시·견제하는 역할과 함께, 기성언론에선 소외되기 쉬운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 지역 풀뿌리언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충북 옥천군의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해 9월 25일, 지역 거주 장애인을 포함한 다수의 시민이 충북 옥천군청 앞에 모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주최 ‘옥천군 한가위 맞이 장애인권리 쟁취 직접행동’에 참가하고자 모인 시민들은 옥천역에서 출발해 옥천군청까지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옥천군청에 진입하려다가 군청 직원들에 의해 저지당하자, 군청 앞에 농성장을 차리고 투쟁을 이어갔다.

언론은 지난해 9월 25일 전장연의 옥천군청 앞 투쟁을 어떻게 다뤘을까? 우선 방송사·통신사들의 보도를 보자. 9월 26일, KBS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60여 명, 충북 옥천군청사 점거> 보도 서두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60여 명이 어제(25일) 저녁 한때 충북 옥천군청사를 점거해 민원인과 군 소속 공무원들이 이동에 차질을 겪었다”고 언급했다.

같은 날 뉴시스는 기사 제목을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옥천군청서 농성 … “이게 뭐하는 짓인지”>라고 달며, 마찬가지로 ‘민원인 불편’에 기사 초점을 맞췄다. 옥천 지역언론인 옥천향수신문도 10월 5일 <장애인단체 옥천군청 점거 시위> 기사에서 민원인과 지역 상인, 군청 관계자의 ‘원성’ 및 교통혼잡 문제를 강조했다.

단 한 곳, 옥천에서 35년째 풀뿌리언론 기능을 수행해 온 옥천신문(대표 황민호)만이 이날의 장애당사자 투쟁을 밀착 취재하며, 이들이 왜 군청에 들어가고자 했는지 상세히 이야기했다. 옥천신문은 투쟁이 있던 9월 25일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옥천군청에서 밀착 취재를 진행하며 3건의 속보를 냈다.

옥천군의 약속 이행을 촉구하며 군청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를 군청 직원들이 저지하던 상황, 전장연 측과 황규철 옥천군수가 26일 새벽까지 12시간 동안 장애인 권리보장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인 상황 등이 옥천신문 기자들에 의해 빠짐없이, 발 빠르게 기록됐다. 결과적으로 9월 26일 새벽 2시 30분, 전장연과 옥천군은 △2024년 특별교통수단 운전원 2인 이상 충원 △2025년 저상버스 도입 등 이동권 문제를 포함한 장애인 권리보장 관련 합의를 이뤘다.

장장 12시간 동안 현장 상황을 취재·기록할 풀뿌리언론의 존재 유무는 지역 문제 공론화 및 농촌 주민 목소리의 공론장 진입, 그리고 지역사회 민주주의 확보 측면에서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는 옆 동네 영동군 주민들이 겪었던 상황을 소개했다.

“영동 주민들은 과거 영동군청 앞에서 특정 현안의 해결을 촉구하며 삭발시위를 해도 기사 한 줄 안 나왔던 경험, 영동군수를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려다 군내 현수막 제작업체가 현수막 제작을 거절했던 경험 등을 이야기했다. 주민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는 언론이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처음에 기자가 현장 취재 오는 걸 보고 놀랐다고 했다. 보도자료를 영동군 측이 기자에게 써서 주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옥천읍이 위치한 옥천군 서부 대비 상대적으로 옥천신문의 상시 취재가 어려웠던 동부 면 지역(청산면·청성면)의 소식을 내실 있게 다뤄야 한다는 고민 아래, 2022년 8월 12일 마을신문 <청산별곡>을 창간한 바 있다. 황 대표는 지난해 10월 청산별곡의 제호를 <주간영동>으로 변경해, 인근 영동·보은군의 소식을 함께 담기 시작했다.

황 대표가 이사장으로 몸담은 (사)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에선 매년 3~4회씩 3개월 과정의 ‘옥천 저널리(里, 마을을 뜻함)즘 스쿨’을 진행하며 지역에서 활동할 청년 기자들을 육성 중이다. 현재 주간영동에서도 옥천 저널리즘 스쿨을 거친 기자들이 영동·보은과 옥천 동부 곳곳을 밀착취재하고 있다.

주간영동 2월 2일자 신문엔 <버스 정보 안내 앱 개발에 소극적인 영동군, 버스 정류장에는 4년 전 시간표 부착>, <영동군 간부공무원, 성추행 혐의로 3개월 중징계> 등 타 언론에선 이야기하지 않는, 기자들이 직접 지역 상황을 상세히 살펴봐야 쓸 수 있는 기사들이 담겼다.

황 대표는 “지역언론이 할 일은 ‘유착’이 아니라 (주민과의) ‘밀착’이다. 얼마나 주민의 삶과 밀착해서 지역 현안을 이야기하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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