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지역 풀뿌리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들

  • 입력 2024.02.25 18:00
  • 수정 2024.02.25 18:1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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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수도 서울의 기성 언론들은 할 수 없고, 오직 지역 풀뿌리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일부 사례를 통해서나마 풀뿌리언론이 지역의 미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

마을신문 창간호, 쭉정이는 날리고 알곡만 남기다

지난 1일, 전북 순창군 풍산면 주민들은 마을신문 <풍구> 창간호를 발간했다. 풍구는 ‘풍산 친구’의 약자이자, 곡물 쭉정이를 날려 알곡만 남게 하는 농기구 ‘풍구’의 이름을 본딴 것이기도 하다.

풍구는 풍산면 주민자치위원회와 풍산작은도서관 명의로 발행했으며, 제작은 ‘풍구 발간위원회(편집장 차은숙)’에 참여한 10명의 시민기자들이 담당했다. 각자의 본업이 있는 풍산면민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풍구 창간호 지면을 채우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시민기자로서 신문 제작논의에 참여했고, 지난해 하반기 내내 현장 취재를 진행했다.

오직 풍구만이 가진 특징은 무엇일까? 기성 언론이 외면해 온 풍산면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았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와 관련해, 풍구 시민기자 김선영(풍산작은도서관 근무)씨는 신문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풍산면엔 지난해부터 순창군(군수 최영일)의 공설추모공원 설립 추진으로 인한 갈등이 초래됐다. 현재 풍산면에선 화장장 시설이 포함된 공설추모공원의 건립 추진이 이뤄지고 있다. 주민들은 추모공원 건립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순창군이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지 않은 채 일방적 건립을 추진하는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한다. 반대 주민들이 있음에도 순창군은 모든 주민이 사업 추진을 양해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심지어 풍산면민들이 달아놓은 화장장 설치 반대 현수막마저 순창군수의 풍산면 마을 순회를 핑계 삼아 일방적으로 철거하려 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도해야 할 순창의 모 언론은 순창군 보도자료만 나열하며 군청 기관지처럼 처신하고 있다.”

시민기자들은 풍산면 내 다양한 주민의 목소리를 담자는 취지로 풍구 제작에 나섰다. 풍구 창간호 3면엔 추모공원 건설 예정지인 풍산면 금곡리 호성마을 소개 기사가 담겼다. 이 기사엔 호성마을 주민 오영두씨가 추모공원 건립 추진과 관련해 우려를 표한 내용이 담겼다. 다음은 기사 내용의 일부다.

“이미 정해진 부지를 두고 굳이 호성마을로 방향이 틀어진 이유에 대한 군의 설명에 납득이 되지 않기에 하루아침에 호성마을에 화장장과 추모공원이 들어선다는 군의 계획에 마을 주민 모두가 상처받았다고 (오영두) 어르신은 말씀하신다.”

창간호 4~5면엔 순창군 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어린이들이 직접 쓴 글이 담겼다. 풍산초등학교에선 학생들이 직접 그림책과 영화를 만든다. 이러한 사실을 자랑할 창구가 사실상 없던 상황에서, 풍구 시민기자들은 어린이들이 직접 이를 자랑할 수 있도록 풍구 지면 일부 공간을 제공했다.

이어 6면에선 1988년생 청년 이장인 구용 월산마을 이장의 인터뷰가 담겼다. 김선영씨는 “구 이장은 풍산면의 유일한 40세 미만 이장이다. 이런 젊은 사람을 우리는 너무나 귀히 생각하는데, 몇몇 어른들은 그가 젊다고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며 “스스로 지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청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리고자 구 이장을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그밖에도 창간호 지면엔 풍산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한 각종 문화활동, 풍산면 농악을 지키는 ‘풍산농악 한마당패’의 이야기 등이 소개됐다.

다만 풍구 창간호에서 굳이 집중해서 다루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풍구가 아니어도 여타 지역언론에서 알아서 많이 실어줄 ‘남성 어르신’ 기관장 및 지역 유지, 정치인 등의 이야기는 찾기 힘들었다. 풍구 창간호는 여성농민, 마을 할아버지, 어린이, 그리고 2면 하단에 문해학교에서 한글 수업을 받으며 쓴 글을 실은 할머니들에 의해 풍성해졌다. 신문 이름대로 쭉정이는 날리고 알곡만 남긴 셈이다.

대안 모색하는 이들의 ‘연결고리’로서, 때로는 문제 해결 주체로서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이 지난 19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내 월간 옥이네 부스에 비치된 월간 옥이네 최신호들을 살펴보고 있다.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이 지난 19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내 월간 옥이네 부스에 비치된 월간 옥이네 최신호들을 살펴보고 있다.

충북 옥천군의 ‘시시콜콜 마을잡지’ <월간 옥이네>는 2017년 7월 창간 이래 옥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9년부터 옥천군의 풀뿌리언론 기능을 수행해 온 <옥천신문>이 지역 현안을 날카롭게 감시하는 비판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해 왔다면, 월간 옥이네는 옥천군민들의 생활 속 이야기에서 가치를 계속 발굴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역할이 다르다.

그렇다고 월간 옥이네가 오직 옥천군이라는 행정구역 내부의 이야기만 다루는 건 아니다. 월간 옥이네는 취재영역 중 ‘자치·자급·생태’ 분야를 설정해 놓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화두인 자치·자급·생태 영역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역에 상관없이 취재하고 그들의 사례를 월간 옥이네에 실음으로써 옥천 내에서 같은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에게 시사점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려는 취지다.

그 예시로서, 월간 옥이네 2024년 1월호엔 경북 의성군에서 지난해 12월 8일 열린 ‘농촌여성영화제’ 현장 및 경남 거창군의 여성농민들 이야기가 담겼다.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은 해당 호에 의성과 거창에서 토종씨앗을 재배하는 여성농민들의 ‘자급·생태농업’ 실천 사례를 상세히 담았다. 또한, 2024년 2월호에선 옥천군 이원면 여성자율방범대 대원들의 야간순찰에 동행하며 그들을 인터뷰했다. 여성 방범대원들의 ‘자치’ 노력을 소개한 사례다.

박누리 편집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동네가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들의 활동은 우리 동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하고, 지역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우리 동네에 뭔가 부족하거나 없어서 도시로 떠나는 대신 ‘그럼 나도 이 동네에서 저 사람들처럼 뭔가 해볼까?’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희망, 그리고 비슷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 간 연결고리를 만들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자치·자급·생태 지면을 구성하고 있다.”

월간 옥이네는 단순히 지역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는 걸 넘어, 지역 내 현안의 해결을 위해 직접적으로 나서는 주체로서도 기능했다.

단적인 예로, 월간 옥이네는 2020년 ‘길고양이 보호 캠페인’을 진행하며 옥천군의회에 동물보호조례안 제정을 촉구해, 결과적으로 조례 제정 실현에 기여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옥천군 안내면 안내중학교 학생 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청소년 기본소득 지급실험’, 옥천군 여성 화장실 내 공공 생리대 ‘모두의 생리대’ 비치 캠페인 등을 전개했다. 지역언론이 지역 내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직접 나선 사례를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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