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빗장 또 열리면, 화훼산업 다신 일어설 수 없다”

폭등한 생산비·지속되는 소비침체·수입산 꽃까지 거듭되는 ‘악재’
SECA까지 발효되면 농민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폐농’뿐

  • 입력 2024.02.04 18:00
  • 수정 2024.02.04 18:18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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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한국-에콰도르 전략적경제협력협정 타결 소식을 뒤늦게 접한 국내 화훼농가들이 피해 대책 마련을 정부에 호소하는 한편 국회 비준 반대를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화훼농가 시설하우스에서 외국인노동자가 유황 약제를 살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에콰도르 전략적경제협력협정 타결 소식을 뒤늦게 접한 국내 화훼농가들이 피해 대책 마련을 정부에 호소하는 한편 국회 비준 반대를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화훼농가 시설하우스에서 외국인노동자가 유황 약제를 살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12월 17일부터 1월 17일까지 한 달 전기요금만 1,411만원이 나왔다. 인건비는 말할 것도 없고, 평균적으로 일주일마다 주는 양액비료도 한 번에 150만원씩 들어간다. 그런데 경기 침체와 소비 부진 등의 영향으로 지난 1월 중순엔 장미 한 속(10송이) 경매가가 3,000원 정도로 떨어져 생산비는 감히 거들떠도 볼 수 없는 지경이 돼 버렸다. 일부 농가는 SECA 대책으로 생산비 지원 같은 걸 요구하던데, 지금 상황에서 농가가 요구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대책은 ‘폐원 지원’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경에 처한 화훼농사를 누구에게 물려주기도 미안할 뿐이고, 개인적으론 SECA가 정식 발효되면 우리 화훼산업은 끝이 날 것이라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타결된 한국-에콰도르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소식이 뒤늦게 화훼농가에 전해지자, 농민들은 어느덧 화훼산업의 끝을 내다보는 실정이다. 국회와 정부세종청사를 찾아 나날이 투쟁의 수위를 높여 가고 있지만, “결국엔 국회 비준이 될 것”이라는 무력감과 “대책이랄 게 없다”는 좌절감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국회 토론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에콰도르는 값싼 노동력과 기후조건을 강점으로 근거리 최대 수요시장인 미국 수출을 통해 성장한 2020년 기준 세계 3위(7억2,000만유로) 화훼수출국이다. 특히 장미의 경우 2020년 기준 에콰도르 전체 화훼산업에서 생산면적과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만큼 그 비중이 높고, 에콰도르의 주요 수출품목 역시 절화 장미다. 에콰도르 절화 장미 수출은 전체 수출액 비중의 약 70% 수준으로 매년 5억만유로의 규모를 유지 중이며,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주요 화훼품목 역시 장미다. 여러 품목 중에서도 장미 농가의 근심이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장미를 재배 중인 화훼농민 탁석오씨는 “1980년부터 지금까지 장미 농사를 지으며, 가정도 꾸리고 아이들 학비도 내고 빚도 지면서 평생 살아 왔다. 그동안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이 맺어졌고 화훼농가들이 똘똘 뭉쳐 반대도 해 봤지만 결국엔 전부 국회 비준을 얻어 발효됐다”라며 “경제 논리로 봤을 때 우린 자동차와 전자제품, 중장비 등을 수출하는 게 이득이다 보니, 농·축·수산물이야 수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간 중국, 베트남, 콜롬비아 등과 FTA를 체결하며 출렁출렁 흔들리는 시장 상황에 맞춰 농가들은 어찌 보면 먹이사슬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번 SECA 여파로 또 그럴 것이 분명한데, 지금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은 물론 최근 시장 역시 폭등한 생산비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침체돼 있는 것이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탁씨는 “1년 평균 장미 1속(10송이) 가격이 1만원은 나와야 한다. 1만원을 받는다고 해도 그중 90%가 생산비기 때문이다. 배지에 모종에 양액비료, 냉·난방비 그리고 인건비까지 농가 인건비는 감안할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라며 “연초가 되면 기업 등에선 ‘올해가 지난해보단 낫겠지’ 하면서 신년 계획도 세우는데, 우리 화훼농가는 ‘언제 망할 것인가’, ‘언제쯤 포기하는 게 맞나’를 고민하는 상황이다. 소비시장과 경기를 직접 일으킬 수도 없고 수입꽃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답답하고 절박하고 또 그저 원통할 뿐이다”라고 토로했다.

인근 파주시에서 장미를 재배 중인 농민 배강산씨 또한 “이미 국화와 카네이션은 FTA 이후 완전히 스러졌고 농가는 거의 전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장미 농가 역시 SECA가 발효된다면 작목을 전환하거나 폐업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데 막대한 시설비가 아까워 작목을 전환한다고 해도, 해당 작목이 또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결국 도미노 현상처럼 모두가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며 “시설을 짓거나 보수하면서 정부 지원도 받고 빚도 잔뜩 진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농가가 많다. 국익을 생각해 SECA 비준은 당연한 수순으로 통과가 될 거고, 에콰도르산 장미와 경쟁 자체가 안 될 것이 뻔하므로 개인적으론 많은 농가가 농사를 접게 될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배씨는 “1991년 장미 농사를 시작한 뒤로 IMF(국제통화기금)에, FTA에, 코로나19에, 비료 파동에, 유류비 폭등까지 안 겪어 본 일이 없는데 이번엔 위기를 넘어가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다. 코로나19도 금방 지나갈 거란 희망이 있어 그나마 버텼는데 SECA는 한 번 빗장이 열리면 그냥 계속 들어오는 것 아닌가. 젊었을 때라면 살아날 방법을 궁리하겠는데, 70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세계적인 화훼수출국 장미가 들어온다니 심리적으로 위축도 많이 되고 아마 대부분 농가가 이렇다 할 대책 없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일 것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식물검역온라인민원시스템 검역통계에 따르면 2016년 7월 15일 한-콜롬비아 FTA가 발효되기 전인 2015년 콜롬비아 장미 수입 수량은 22만4,701개에 불과했지만, 발효 이후 7년째인 지난해 장미 수입 수량은 961만5,138개에 달했다. 약 42배 증가한 수치다.

화훼산업의 ‘절멸’을 예견하며 평생 가꾼 장미농사를 본인 의지가 아닌 외부 상황에 의해 접게 됐다는 먹먹한 심경을 전한 농민의 상황이, 화훼농가 전체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농민들은 올 한 해 동안 SECA 반대 투쟁을 지속·강화하겠단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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