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주노동자 인권은 어디에?

  • 입력 2024.01.28 18:00
  • 수정 2024.01.28 21:20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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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대표적 월동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에서 계절이주노동자들이 ‘노동력 착취’ 등의 이유로 인력업체를 운영하는 한국인을 고소한 사건이 벌어진 가운데 국내 농촌인력 수급의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한 배추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수확을 앞둔 배추 결구를 하얀 끈으로 묶고 있다. 한승호 기자
대표적 월동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에서 계절이주노동자들이 ‘노동력 착취’ 등의 이유로 인력업체를 운영하는 한국인을 고소한 사건이 벌어진 가운데 국내 농촌인력 수급의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한 배추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수확을 앞둔 배추 결구를 하얀 끈으로 묶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8월 계절근로제로 입국해 전남 해남군 배추밭에서 5개월간 일한 필리핀 노동자 두 명이 지난 9일 한 한국인을 ‘노동력 착취 목적 약취유인(형법 제288조 제2항)’과 ‘예비적 인신매매(형법 제289조)’로 전라남도경찰청에 고소했다. 고소당한 한국인은 필리핀에서 인력업체를 운영하는 이른바 인력 중개 브로커다.

피고소인이 “노동력을 착취할 목적으로 필리핀에 사는 고소인들에게 한국에서 일하게 해주겠다고 말하며 모집해 해남의 배추농장에서 일하게 한 뒤, 그들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 중개수수료를 착취하고 종전 근로계약서의 내용과 상반된 금원들을 공제해 가거나 근로계약서에 없는 사업장에서도 일하도록 해 고소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고소장)”는 것이다.

실제로 피고소인은 매달 75만원씩 세 차례 임금에서 선공제했고, 근로계약 당시 고소인들은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제된 첫 급여조차 다른 통장으로 송금된 정황이 있다. 근로계약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직접 관리하지 못했다. 이들의 급여 통장은 S은행에서 신규 발행됐는데, 해남군에는 이 은행의 지점이 없다. 당시 같은 근무지로 보내진 노동자들은 모두 계좌 비밀번호가 같고, 피고소인과 사용자도 비밀번호를 알고 계좌를 이용했다. 이들은 귀국 항공권 예약일(1월 9일) 이틀 전까지 여권도 돌려받지 못해 휴대전화 개통이나 자유로운 이동도 불가했다. 조건 위반 시 벌금(100만원), 입국 과정에서 생긴 이동경비·숙박·이탈보증금 등에 대한 채무 부담은 이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했다.

법률대리인인 이소아 변호사(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는 “인신매매 피해자보호법에 따른 피해자 식별 지표상 ‘모집인을 만나 수수료를 주기로 약속’하는 것, ‘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이동 및 관련 비용에 대한 채무부담’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떠나기 어려운 경우를 인신매매의 한 표지로 보고, 이 경우 피해자가 합의해도 인신매매는 성립한다”라며 “브로커들의 농간은 인신매매의 한 범주가 분명하며, 당사자들이 이러한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알고 왔더라도 인신매매는 성립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이것이 계절이주노동자들이 꼽은 한국 생활의 어려움 중 가장 빈번한 ‘폭언·폭행·인종차별·출신국 비하’처럼 인권 감수성이 결여된 일부 농가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 착취란 점이다. 주무부서인 법무부가 이탈 방지, 농림축산식품부가 인력수급에만 몰두하는 사이 실행을 맡은 지자체들은 인권침해를 방조하고 이용하며 문제를 키운 셈이다.

“농업 이주노동자 문제는 기본적으로 인권 문제이자 지자체 차원이 아닌 외교적 차원의 문제로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등록관리·쿼터 유지만 신경 쓸 뿐 여전히 값싼 노동력이라는 천박한 인식을 드러낸다. 귀농·귀촌 활성화, 청년농민·스마트팜 육성 등 다각적 노력에도 농업은 결국 사람 손이 여전히 필요한 영역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노력과 함께 농민운동계가 앞장서 진보 진영과 함께 규준을 만들어 가야 한다. 현실적으로 선진국 간 농업 이주노동자 유치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한국은 과연 와서 일하고 싶은 나라일까. 이대로라면 전망은 매우 어둡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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