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근로자 보호장치·운영규정 관련 법·제도 사실상 공백

중앙정부 역할 부재 속에 운영·관리 등 지자체에 떠맡겨

계절이주노동자 인권 표류 … 모두를 위한 법·제도 시급

  • 입력 2024.01.28 18:00
  • 수정 2024.01.28 20:17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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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외국인 계절근로자제도(이하 계절이주노동)는 일손 부족에 허덕이는 우리 농업에 맞춤한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2015년~ 시범사업, 2017년~ 본사업). 주로 특정 시기 단기 인력이 필요한 농업 특성에 부합하고, 장기간 정규직 고용이 어려운 중소 규모의 농가 경영체엔 안정적 인력 공급 체계다(최대 8개월 고용 가능).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인력 대란을 넘긴 지 얼마 안 됐고, 고령화와 인구절벽까지 겪는 농촌에서 일손은 귀하디귀하다. 폭등한 생산비 환경에서 인건비 역시 농가 경영을 옥죄지만 그나마 가용 인력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한숨 돌리는 상황이다.

송출국 노동자들에게도 계절이주노동은 새로운 기회다. ‘계절 이주노동자의 삶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국가인권위원회, 2023년 11월 발표)’를 보면 응답자의 95.1%(조사 참여자 89명·6개국)가 취업 연장을 원했고, 재입국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고용허가제는 한국어 능력 시험(유효기간 2년) 등 여러 시험을 높은 점수로 합격하고도 2년 넘게 입국하지 못하는 등 입국 가능성이 최대 34%에 그치지만, 계절이주노동은 입국까지 준비 기간이 보통 2~3개월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송출국 중년층에겐 기회다.

수요와 공급의 일치, 팬데믹 해소를 계기로 계절이주노동의 규모는 급증 추세다. 2021년 1,850명에서 2022년 1만9,718명, 지난해 4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2024년엔 상반기만 4만9,286명이 일하게 된다.

이처럼 모두에게 기회로서 번창하는 이 제도는 한편으론 이주노동자 인권의 사각지대기도 하다. 겉으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대대적으로 운영하는 듯 보이나 곳곳이 구멍이다. 법무부가 주무 부처이고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가 함께 배정위원회를 구성해 인력 도입·선정을 결정하지만, 역할은 거기까지다. 실제 운영은 기초지자체(시군)가 전담한다. 송출·입출국·현장 관리 등 관련 업무 전반을 극소수의 시군 담당 공무원이 떠맡고 있다. 계절이주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는 물론 시군 담당 공무원 업무 지원 체계 등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사실상 없다.

법무부는 이탈(체류 기간 내 사업장 무단이탈)·미등록(이른바 불법체류) 방지만 집중한다. 이탈률에 따라 인력 배정과 인력송출을 제한하거나, 최근 3년간 평균 이탈률이 5% 미만인 (한국) 시군엔 인원 배정을 늘려주는 등(농가당 기본 9명에 최대 5명 추가) ‘당근과 채찍’으로 통제할 뿐이다.

물론 이탈 방지는 중요하다. 현재 계절이주노동자 무단이탈 시 제도적 사후 조치가 마땅히 없어 그 피해는 농가 몫이 되고 있어서다(<전북 농촌지역의 계절근로자제 이용실태 및 운영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조원지·이서연, 2023). 이탈한 노동자도 재입국 제한이나 귀국보증금 몰수 등 피해가 막심하다. 그런데도 이탈이 계속되는 건 주로 각종 수수료에 따른 저임금 수취와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이다. 통제 일변도가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따른 이탈 지속·인권침해·농가 피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실제로 송출국에선 노동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과도한 귀국보증금을 예치하게 하고, 국내 시군은 이들의 여권·통장을 보관하는 등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법무부는 2022년까지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 기본계획 운영지침’에 송출국 지자체에 귀국보증금 예치를 명시했다 인권침해라는 문제 제기에 따라 2023년부터 폐지했지만, 실태조사 결과 귀국보증금 제도는 여전히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운영지침’만 있을 뿐, 관련 법·제도는 공백

그러나 한국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시군에 모든 걸 떠넘겨 놓고 노동실태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고용노동부나 농촌 인력 생태계의 건강성을 다방면으로 지원해야 할 농식품부의 역할도 현재로선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계절이주노동제 운영에 대한 법적 장치가 없어서다.

2020년부터 E-8비자(계절근로)가 도입되면서 계절이주노동이 본격화됐지만, 계절이주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 도입과 고용관리·보호 등을 규정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전윤구 경기대 교수는 “이는 법적으로 계절근로제가 온전히 법무부 관할이란 의미다. 계절근로의 운영과 근로자 보호와 관련한 법령 제정을 추진하지 않고 관계 부처 간 협의에서 나온 내부 지침만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상태”로 “계절근로제에 대해선 오로지 「근로기준법」과 관련 부속 법률만이 그 보호기능을 수행”한다고 지적했다(<농업분야 외국인력 활용제도의 변용과 중간착취>, 2020).

앞선 연구도(조원지·이서연, 2023) 법적 공백을 짚었다. 계절이주노동이 법무부가 매년 발표하는 ‘계절근로자제 운영지침’에만 근거할 뿐 계절근로 관련 법·제도가 미비해 문제 발생 시 대처가 어렵고 이에 따른 피해가 농가에 전가된다는 것이다. ‘계절근로자제 추진 체계 공공화’와 ‘전담조직 구성’이 농가 피해 방지와 계절이주노동자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

법적 공백을 메꾸는 한편 구체적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계절이주노동자 노동권 침해에서 가장 큰 문제가 근로계약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계절이주노동자 모두 표준근로계약서를 썼지만, 계약서가 한글·영어로만 돼 있고 노동자들에게 모국어 번역은 제공되지 않아 근로조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브로커의 농간’이나 ‘강제노동 위험’에 놓이는 원인이 된다. 이를테면 ‘월급과 휴일을 노동자와 합의한다’ 같은 문구는 고용주의 의사에 따르기 십상이고, 주 1회 휴무가 격주 휴무가 되거나 숙식 제공이 숙식비 공제가 되기도 한다. 모국어로 된 근로계약서 제공은 매우 시급하다.

아울러 업무 특성상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 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을 농·축·수산사업 노동자에겐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계절이주노동자에 대한 근로시간·휴식 보호장치는 더 섬세하게 챙겨야 할 지점이다.

앞서 전윤구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출입국 비용 보전 정책도 제안했다. 단기 계절근로는 고용허가제에 견줘 총수입이 적은 일자리이므로 고용주나 지자체가 항공권 비용 등을 제공(양도나 환금이 불가능한 기명채권 형식)하면 다음 해 계절근로를 기약하고 자발적 귀국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귀국보증금을 강제하는 방식보다 사업장 이탈 방지에도 효과적이다. 결국 “계절근로는 농·어번기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농업경영주나 수산업경영주의 이익(즉 안정적 인력수급)을 위해 시행되는 제도”다. “안정적이고 적정한 인력 확보를 위해선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합치되고 교환적 정의에도 부합한다.” 전 교수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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