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뺏고 임금 갈취하고...’ 외국인 계절노동자 인권침해 심각

계절이주노동자‧인권단체들, ‘인신매매성 범죄’ 고소‧국가인권위 진정 나서

해남군, 업무협약 계절근로 프로그램 잠정 중단‧‘철저 점검 뒤 재개 결정’

  • 입력 2024.01.15 16:25
  • 수정 2024.01.17 11:42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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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농촌 인력난 해소를 위해 시행 중인 계절근로자제도(계절이주노동자) 현장에서 각종 노동권 위반과 인권침해가 벌어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계절이주노동자들의 여권을 압류하거나 근로계약엔 없는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임금의 상당 부분을 떼가고, 이탈을 막기 위해 큰 액수의 귀국보증금을 예치하게 하는 등 인력송출 중개인(브로커)들이 불법적 행위를 일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근로자제도 관리 당국은 법무부지만 실제 인력 송출과 운용은 국내 기초지자체(시군)와 외국 지자체 간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사설업체가 인력 모집‧송출‧관리를 하며 이권을 챙겨가는 구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15일 오전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인신매매, 강제노동, 임금착취 피해 계절이주노동자 긴급 구제 요청 진정 기자회견'에서 우다야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이 이주노동자들의 피해 회복 및 권리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15일 오전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인신매매, 강제노동, 임금착취 피해 계절이주노동자 긴급 구제 요청 진정 기자회견'에서 우다야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이 이주노동자들의 피해 회복 및 권리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9일 필리핀 국적의 A(29)씨와 B(45)씨가 필리핀에서 인력사업을 하는 중간 브로커 한국인 C씨를 ‘노동력 착취 목적 약취유인(형법 제288조 제2항)’과 ‘예비적 인신매매(형법제289조)’로 전라남도경찰청에 고소했다. 15일엔 또 다른 계절이주노동자 2인과 이주인권단체들이 피해자 구제와 법무부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A‧B씨는 계절근로자제도로 입국해 지난해 8월 9일경~지난 9일까지 5개월간 전남 해남군 산이면 배추 경작지에서 일했다. 근로계약서상 △월 급여는 200만1,000원(월 208시간, 4회 휴일) △임금은 근로자 명의의 통장으로 전액 지급 △숙박시설 제공시 근로자부담금 0원이지만, C씨는 중개수수료‧숙소비 등을 이유로 75만원씩 세 차례 이들의 급여에서 선공제했고, 공제된 첫 급여마저 이들의 계좌가 아닌 타행계좌로 이체돼 C씨와의 관련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 C씨는 이들의 여권을 가져가 출국 이틀 전까지 돌려주지 않아 이들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외국인등록증을 수취하거나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없었다. 한편 계약을 어기면 벌금 100만원을 물린다는 규정까지 뒀던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인단(이소아‧위서현‧김문석 변호사)은 “피고소인은 노동력을 착취할 목적으로 필리핀에 사는 고소인들에게 한국에서 일하게 해주겠다고 말하며 모집하여 그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와 해남의 배추농장에서 일하게 한 다음, 그들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해 중개수수료를 착취하고 종전 근로계약서의 내용과 상반된 금원들을 공제해 가지고 가거나 근로계약서에 없는 사업장에서도 일을 시켜 고소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인신매매했다”라고 밝혔다.

국가인권위 진정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와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국가인권위가 지난 4~6일까지 전남 해남군과 완도(일부)에서 25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에 따라 진행됐다. 이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10일 국가인권위가 이 단체들과 진행한 이 지역 계절이주노동자 인권상황 모니터링 경과에 따른 후속 조치다.

15일 오전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인신매매, 강제노동, 임금착취 피해 계절이주노동자 긴급 구제 요청 진정 기자회견'에서 이주인권단체 대표자들이 정부에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15일 오전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인신매매, 강제노동, 임금착취 피해 계절이주노동자 긴급 구제 요청 진정 기자회견'에서 이주인권단체 대표자들이 정부에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외노협 등 81개 이주인권단체들은 진정서 접수에 앞서 15일 국가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인신매매‧강제노동‧임금착취 피해 계절이주노동자 긴급 구제 요청 진정)을 열었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브로커와 고용주들은 계절노동자를 돈을 뽑아 쓰는 ATM 기계 취급하듯 했고, 인간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있는 듯했다”라며 “여권 등의 신분증 압류와 일상적 임금착취는 상상을 초월했다. 해남지역에 배정된 계절노동자들은 배정된 농가를 벗어나 건설업‧어업‧제조업 등에 파견되기도 했고, 노동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라고 밝혔다.

노동 착취 사례로는 △휴무 없이 일하고도 월평균 급여는 75만~95만원(브로커가 석 달 동안 매달 75만원씩 자동이체, 고용주도 숙식비로 30만원(일부 20만원) 공제 △입국을 위해 가족과 마을대표 등이 부동산을 담보로 잡힘(그 총액은 계절노동자가 감당할 수준이 아님) △여권‧통장을 브로커가 회수(해남군이 9~12월까지 30여명 여권 보관 뒤 브로커에게 돌려줬으나 계절노동자들은 출국 직전에야 돌려받음) △월급은 ATM 카드로만 확인 등이다.

귀국보증금 예치제도의 경우 인권침해 소지가 있어 2023년부터 폐지한 상태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여권 등 신분증은 본인이 항상 보관해야 하며, 외국인등록증 등의 채무이행 확보수단 제공도 금지된다. UN 인신매매방지의정서(팔레르모 의정서)에 따르면 폭행이나 물리적 위협을 가하지 않아도 착취를 목적으로 노동조건을 속이거나 당사자의 취약한 처지를 이용해 사람을 모집‧이동시키는 행위는 인신매매로 정의된다.

이주인권단체들은 진정서에서 “브로커는 계절노동자들의 취약한 처지를 이용해 근로계약과 상이한 노동조건, 신분증과 통장 압류, 과도한 귀국보증금과 담보 설정 등 착취 구조를 설계‧실행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인터뷰에 응한 계절노동자들은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겪는 위험에 처해 있었다”라며 “관리‧감독을 책임져야 할 기초‧광역지자체와 법무부 등 공공기관은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인터뷰 진행 도중, “인근 지역 계절노동자들에게도 구제 요청을 요구받고 관련 내용을 확인했다. 이번 문제가 해남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고 우려하면서, △인신매매 피해 계절노동자 구제 △계절노동자 브로커 개입 차단 △계절노동자 운영 관련 해남군‧전라남도‧법무부에 철저한 진상조사 △계절노동자 쿼터를 대폭 확대하면서도 관리‧감독은 소홀히 한 법무부의 사과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해남군은 지난 9일 “외국 지자체간 업무협약 체결로 입국하는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하는 한편 추가 피해를 특별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 체류 기간이 남은 이들은 체류기한 만료시까지 운영하고, 중개업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해남군 내 결혼이민자의 본국 가족과 친척 등을 초청하는 방식을 확대한다. 한편 “올봄 영농기까지 철저한 점검을 통한 개선으로 업무협약 체결 외국인 계절근로 프로그램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에 대해 고기복 외노협 계절노동자 실태조사 책임연구원은 “해남군의 실태조사는 낮시간 사업주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 어렵다”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해남군이 계절근로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해버린 것은 근본 해결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라며 “이는 재입국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이나 인력이 절실한 농민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결과만 낳는다”라며 근본 대책을 촉구했다.

법무부는 2022년 1만9,718명, 2023년 4만647명을 계절이주노동자에 배정했고 2024년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에 견줘 77.4% 늘어난 4만9,286명이 131개 지자체에 배정될 예정이다. 농촌 인력난에 따라 배정 인원은 급격히 늘고 있지만 관련 정책은 이탈 방지 관리에만 집중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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