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창·강선일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회원조합 외면·중앙회 이익 대변’ 지주회사 체제, 연합회 체제로 바꾸자
[주제발표] 이지웅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
1988년 농협중앙회장을 선거로 뽑게 된 이래 3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농협중앙회는 회원조합과 농민 조합원이 주인이라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러한 문제 인식하에,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와 정명회는 회원조합 중심의 민주적 농협중앙회 개혁과제에 대한 현장 의견을 파악하고, 오는 25일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공정·정책선거로 만들자는 취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기간은 지난해 11월 6일부터 12월 22일까지였으며, 조사 대상인 전국 농협 조합장 1,111명 중 135명(응답률 12.2%)이 응답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다수의 조합원이 현 농협중앙회 운영체제를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데 동의함을 알 수 있다. 농협중앙회 개혁과제에 대해 질의한 27개 항목 중 23개 항목에서 80% 이상이, 19개 항목에서 90% 이상이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분야별로 보면, 특히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과 교육·지원사업을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경제사업 영역에선 1순위로 ‘품질 향상, 가공사업 활성화 등을 통한 농축산물 부가가치 증대(응답자의 99.3%가 개선 필요성에 동의)’, 2순위로 ‘농협중앙회 계통구매물자 세부 계약 내용 공개 및 판매장려금 환원, 수수료 인하를 통한 가격 인하(97.8%)’, 3순위로 ‘농축산물 판로 확대 및 다변화, 영업 혁신 등 판매사업 강화로 농협 시장점유율 확대(97.7%)’ 등의 과제가 꼽혔다.
교육·지원사업 영역에선 1순위로 ‘조합실태조사와 의견 수렴을 통한 농협 장기발전계획 수립 및 경영 컨설팅 강화(99.3%)’, 2순위로 ‘협동조합으로서의 사회연대활동(지속가능한 농업, 도농상생, 협동사회 건설 등) 전개(99.2%)’, 3순위로 ‘농민 권익 신장을 위한 농정 활동 강화(97%)’가 꼽혔다. 사실 우선순위를 매기는 게 큰 의미가 없었던 게, 경제사업과 교육·지원사업 영역의 과제 전부 95% 이상의 조합장이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사업구조 영역에서도 대다수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회원조합과 지주회사 간 사업 경합 해소(98.4%)’, ‘금융지주회사 수익을 회원조합 연합사업에 적극 투자(95.4%)’, ‘경제지주회사를 회원조합이 직접 소유·지배하는 경제사업연합회로의 전환(90%)’ 등의 요구가 많았다. 그만큼 농협중앙회의 현 지주회사 체제가 ‘회원조합 중심 사업구조’와 거리가 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지주회사 체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배구조 영역에선 ‘조합장 이사의 민주적 선출 및 역할 강화(99.2%)’, ‘중앙회장 선거의 공정성·민주성 강화(97.7%)’, ‘대의원회의 민주적 구성 및 역할 강화(96.2%)’ 등의 요구가 특히 높았다. 다만 일부 항목, 예컨대 ‘지주회사·자회사 이사회에 조합장을 이사로 파견(79.6%)’ 등의 과제엔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이 나타났다. 이는 농협중앙회·지주회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 필요성에 공감하되 조합장의 지나친 권한 확대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상의 설문조사 결과 및 최근 조합장들 간 토론 내용 등을 근거로 정책을 제안해보려 한다. 우선, 현 지주회사 체제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 2020년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농협 경제사업활성화 평가> 보고서를 낸 것 이외에 제대로 평가를 한 적이 없다.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 시 내건 명분이 ‘회원조합 경제사업 활성화를 통한 농가소득 증진’이었는데, 현장에선 ‘경제사업 활성화’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된다.
둘째, 경제사업·신용사업 및 교육·지원사업 모두에서 ‘회원조합 중심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경제사업 영역에선 농협중앙회와 그 지주회사의 이익이 아닌, 회원조합의 경제사업을 활성화할 획기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경제사업연합회로의 전환이 검토돼야 한다. 교육·지원사업 영역에선 회원조합 공동이익 구현을 위한 장기발전계획 수립 및 농정 활동 강화, 교육활성화를 통한 주체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셋째, 회원조합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가 보다 촘촘하고 강력하게 구축돼야 한다. 대의원회 등 기존 대의기구의 역할이 요식행위에 그치지 않도록 정비함과 함께, 농협중앙회 이사회 산하에 분야별 소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제대로 된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 구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넷째, 농촌농협과 도시농협 간 선순환적 발전 방안도 절실하다. 농촌농협과 관련해선, 특히 면 단위 농협의 생존을 위해 △면 단위 농협의 의견이 대의기구 내에서 소외되지 않는 방안 △좋은 직원이 사명감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이 필요하다. 도시농협은 ‘농촌농협 없이는 도시농협도 없다’는 관점 아래, 하나로마트를 통한 농촌농협 농산물 판매 및 도농교류에 앞장서야 한다.
요컨대, 이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중앙집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지배구조 △회원조합 대신 농협중앙회 자체 이익을 우선시하는 하향식 사업구조 등의 문제를 지닌 지주회사 체제를 연합회 체제로 전환(경제지주회사를 경제사업연합회로 전환, 상호금융총본부를 상호금융연합회로 전환)할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와 함께 현 지주회사 체제에 대해 냉정히 분석·평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