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농협법 개정을 가로막고 있나

  • 입력 2023.12.17 18:00
  • 수정 2023.12.19 15:1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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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10월 13일 농협중앙회, 한국마사회, 한국농어촌공사에 대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업무보고를 마친 뒤 자리에 돌아와 물을 마시고 있다. 이날 이 회장은 목디스크 시술을 이유로 조기이석을 요청, 업무보고만 한 뒤 국감장을 떠났다. 한승호 기자
지난 10월 13일 농협중앙회, 한국마사회, 한국농어촌공사에 대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업무보고를 마친 뒤 자리에 돌아와 물을 마시고 있다. 이날 이 회장은 목디스크 시술을 이유로 조기이석을 요청, 업무보고만 한 뒤 국감장을 떠났다. 한승호 기자

지난 5월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는 20개의 「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을 하나로 묶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로 올려보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쟁점은 단연 ‘셀프연임’이다. 단임제로 개정해 잉크도 마르지 않은 농협중앙회장의 임기를 연임제로 되돌리면서, 이를 ‘현직 회장부터’ 소급적용하자는 조항이다. 의원들의 자발적 입법발의라 해도 논란이 있을 내용인데 심지어 농협중앙회의 대국회 입법로비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기까지 했다.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농민단체, 소비자·시민단체, 생협, 농협노조, 일부 농협조합장 단체들까지 총 20여개 단체가 반대 비대위를 결성했고 법안이 이슈화된 지난해 말부터 1년 넘게 끈질긴 활동을 전개했다. 농해수위는 귀를 닫고 법안을 의결했지만, 법사위는 비대위 주장의 합리성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 8월과 9월 한 차례씩 법사위 회의안건에 이 법안이 올랐음에도 의원들 간 격론 끝에 무산됐고, 이후로는 농협중앙회 측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아예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20개의 법안을 하나로 묶어 놓은 만큼 그 내용은 셀프연임이 전부가 아니다. 본지가 이미 정리해 보도한 바 △도시농협의 농업역할 제고 △비상임조합장 임기 제한(12년 적용유예) △농협중앙회 회원조합지원자금 투명화 △농협 계열사 명칭사용료(농업지원사업비) 인상 등 부족하나마 농협개혁에 필요한 조항들이 포함돼 있다. 그간의 지지부진했던 농협개혁의 보폭을 돌아보면, 좀처럼 나오기 힘든 법안임은 분명하다. 연임제와 별개로 이들 조항이 몽땅 발 묶여 있는 건 법안 찬반 진영 모두가 아쉬워하는 일이다.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이들은 이 개혁 조항들이 통과되지 못하는 데 대한 책임을 반대 비대위와 법사위에 묻고 있다. 모처럼 등장한 개혁법안에 비대위와 법사위가 무리하게 어깃장을 놓고 있으며, 법안 무산 시 농협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안에 찬성하는 모든 이는 ‘셀프연임’의 도덕적 문제와 농협중앙회의 로비 의혹에 약속이라도 한 듯 함구하고 있다. 아주 드물게 “로비는 사실무근”이라는 짤막한 항변이 튀어나오지만, 농해수위·법사위 의원들 개개인의 입에서 농협중앙회의 다양한 로비 정황이 쏟아져 나온 마당에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개혁을 하고자 부조리를 눈감는다면 이는 이미 개혁이 아닌 퇴보다. 법안 무산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문제의 조항을 발의하고 통과시킨 농해수위 의원들, 그리고 끝내 연임 불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는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라 보는 게 이치에 맞다. 애당초 셀프연임 조항을 개혁 조항들과 묶어 지금 같은 상황을 만든 것이 농해수위와 농협중앙회의 의도였으리라는 의심도 팽배하다.

이성희 회장이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연임 ‘현직 소급’ 조항 삭제를 요청했다면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는 데 하등의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이 회장은 광폭의 농협 개혁을 이끌어낸 공로자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셀프연임 조항의 효력은 선거 도래에 따라 자연소멸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셀프연임 논란이 사라지고 개혁 조항만 남을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 회장에겐 ‘본전’이 될 것이나, 끝내 법안 전체가 사장된다면 이 회장은 ‘농협 개혁을 막은 회장’으로 역사에 오명을 남길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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