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장 연임법안, 왜 ‘셀프연임’이라 불리나

법안 발의부터 최종 의결까지

법안 수혜자가 영향 행사 가능

  • 입력 2023.12.17 18:00
  • 수정 2023.12.19 15:1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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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중앙회장 연임법안은 단임제의 성과를 채 확인해볼 기회도 없이 곧바로 연임제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이미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그보다 더 노골적인 문제는 ‘현직 소급’ 조항이다. 4년 총급여 40억원에 이르는 농협중앙회장 자리에 현직 회장의 연임길을 터주는 법안. “전두환도 이렇게까진 안 했다”는 냉소가 등장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 개정을 제안할 수 있고 그 과정에 힘(권력 남용)을 가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때문에 만약 대통령직을 연임제로 전환하면서 현직 대통령에게 이를 소급한다면 ‘셀프연임’ 논란이 생길 수 있다. 헌법 제128조 2항은 이같은 민주주의 교란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취지를 품고 있다.

윤준병 국회 농해수위 위원은 이번 농협법 이슈에서 농협중앙회의 대국회 로비를 처음이자 가장 상세하게 폭로했다. 윤 의원 이후 국회 법사위 위원들의 크고 작은 폭로들이 뒤를 이었다. 한승호 기자
윤준병 국회 농해수위 위원은 이번 농협법 이슈에서 농협중앙회의 대국회 로비를 처음이자 가장 상세하게 폭로했다. 윤 의원 이후 국회 법사위 위원들의 크고 작은 폭로들이 뒤를 이었다. 한승호 기자

표면적으로 볼 때, 대통령과 농협중앙회장의 입장은 같을 수 없다. 대통령과 달리 농협중앙회장에겐 법 개정 발의 권한이 없고 개정 과정에 영향을 행사할 방법도 없다. 때문에 농협중앙회 측은 “연임제로 전환하면서 현직 회장을 제외시키면 오히려 특정인에 대한 부당차별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현실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오류다. 일단, 농협중앙회와 중앙회장은 국가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국회에 민원을 제기하고 법안 발의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 직접발의 권한이 없을 뿐 간접발의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농협중앙회 관리급 임직원들의 대국회 활동은 국내 기업들 중에서도 유독 촘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2021년 12월부터 3개월여에 걸쳐 완전히 똑같은 네 건의 ‘현직 소급 연임제’ 법안이 집중 발의된 현상은 “농협중앙회의 민원에 의한 것”이라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공통된 소견이다.

게다가 농협중앙회엔 법안 관철을 추진할 만한 힘(금전 로비)이 있다. 국회 농해수위에서의 부자연스러운 법안 강행 처리에 농협중앙회의 대국회 금전·인사 로비 의혹이 폭로되기 시작했고 이는 법사위에 이르러 한층 다양화됐다. 설령 폭로에 나선 모든 의원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 가정해도, 최소한 ‘셀프연임’이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구조는 십분 확인할 수 있다. 실정이 이렇게 때문에, 중앙회장 연임제의 현직 소급적용은 대통령의 그것과 다름없이 민주주의를 심대하게 교란하는 조항이다.

농협중앙회장 단임제 전환 이래 현직 중앙회장의 셀프연임 시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처음 단임제를 적용받은 김병원 전 회장은 연임제 추진 중 선거법 위반 혐의에 발목이 잡혔지만, 이성희 현 회장에 이르러선 모든 농협 의제를 집어삼키는 소모적 논쟁을 초래하고 있다. 후대에 계속해서 같은 문제를 겪지 않기 위해선 ‘셀프연임’이 갖고 있는 이 본질적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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