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청년 먹거리기본권, 청년의 힘으로 바로 세우자

먹거리기본권 고민하는 청년들 모여 국회서 심포지엄 개최

  • 입력 2023.12.09 12:25
  • 수정 2023.12.09 13:1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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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023 농업먹거리 청년 심포지엄’이 열린 가운데 토론회 패널을 비롯한 농업먹거리청년모임 회원들이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023 농업먹거리 청년 심포지엄’이 열린 가운데 토론회 패널을 비롯한 농업먹거리청년모임 회원들이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건강한 먹거리를 접하기 어려운 생활환경, 열악한 노동환경, 누릴 수 없는 시간적 여유, 일에 집중하거나 비용을 아끼고자 먹거리를 ‘자기검열’하는 상황까지, 이 모든 환경이 청년의 ‘먹거리기본권’을 해치고 있다. 이에 먹거리기본권을 바로 세우려는 청년들이 나섰다.

농업먹거리청년모임(대표 김인규, 농먹청)은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2023 농업먹거리 청년 심포지엄 – 청년이 생각하는 먹거리기본권 실현방안은?’을 열어, 청년들 스스로 먹거리기본권 실현방안을 이야기할 판을 깔았다. 이 판의 공동주최엔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가톨릭농민회, (재)지역재단,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 한국친환경농업협회, 한살림연합 식생활센터가 함께했다.

아침 먹으려고 `달리기 경주' 해야하나

이날 김진호 지역재단 정책연구팀장은 농먹청이 지난 10월 4일부터 11월 4일까지 진행한 ‘청년 먹거리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했다(아래 관련 기사 참고).

다음 발제자인 송원규 전국먹거리연대 정책위원장은 “최근 청년 먹거리 불안정에 대응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나, 청년의 어려움에 대한 지역별 차이는 무시되고 식비 지출용 전자카드 발급이나 공유부엌 운영 등 유사한 정책만 재생산된다”며 “청년 먹거리정책이 청년의 건강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건강한 식사, 건강한 식재료의 공급 방안에 대한 고민은 정책적으로 아직 미흡하며, 외국에서 보이는 ‘청년 식생활-정신건강 연계정책’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현재 진행되는 청년 대상, 또는 1인 가구 대상 먹거리 지원정책의 대표 사례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일부 대학에서 진행하는 ‘천원의 아침밥’, 서울시의 ‘1인 가구 건강한 밥상’ 등을 꼽을 수 있다.

천원의 아침밥은 학생과 중앙정부가 각각 1,000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비용을 지자체·학교가 부담하자는 취지의 사업이나, 학교별 이용 가능 대상이 극히 한정돼 있다. 서울 모 대학교의 경우 올해 2학기 기준 매일 오전마다 1시간 동안 하루에 학생 150명을 대상으로 이 사업을 진행했고, 그나마도 식재료 소진 시 조기 마감할 여지를 뒀다. 서울의 또 다른 대학교에선 아침마다 학생들이 천원의 아침밥을 먹고자 ‘달리기 경주’를 해야 한다. 1인 가구 건강한 밥상의 경우 서울에서 청년 1인 가구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5개 자치구(관악구·구로구·동작구·영등포구·종로구)에서만 한정적으로 실시한다.

송 정책위원장은 청년 먹거리기본권 보장을 위해 △현금지원 정책(전자카드·지역화폐 등) 속에서 식사 지원 적절히 연계 △먹거리 구매 및 식사 위한 전용 바우처 정책 도입 △대학 또는 청년층 다수 이용 시설 대상 단체급식 정책 도입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학 급식과 관련해 송 정책위원장은 “학생 수가 감소하는 시대에 접어든 현재, 대학 무상급식 정책도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추진 가능하다”고 한 뒤, “다만 대학 진학 대신 사회로 바로 진출해 일하는 청년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주거·노동문제 해결해야 먹거리기본권도 실현 가능

농업먹거리청년모임은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2023 농업먹거리 청년 심포지엄 – 청년이 생각하는 먹거리기본권 실현방안은?’을 열었다. 한승호 기자
농업먹거리청년모임은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2023 농업먹거리 청년 심포지엄 – 청년이 생각하는 먹거리기본권 실현방안은?’을 열었다. 한승호 기자

청년들은 먹거리기본권이 무엇인지, 그것의 실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놓고 다양한 목소리를 제시했다.

식문화 플랫폼 ‘벗밭’의 교육담당 활동가 배기현씨는 “벗밭의 식문화 활동 과정에서 만난 청년들의 공통된 지향은 ‘건강한 식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청년 먹거리기본권을 위해 ‘알 권리’와 ‘건강한 식사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알 권리란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 누가, 어떻게 길러냈는지, 내가 한 끼를 선택하는 것에 농업·먹거리 시스템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아는 것, 그리고 그 정보를 내가 애써 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접할 권리”라는 게 배기현씨의 설명이다.

벗밭에선 어떤 것이 건강한 먹거리인지 알 수 있는 기회, 건강한 먹거리에 청년이 접근할 기회를 늘리고자 농부시장도 열고, 여럿이 모여 식사하는 모임도 자주 연다. 농촌에서 소농이 생산한 과일을 함께 먹는 프로그램인 ‘즉흥과일클럽’이 그 예시로, 청년들은 이 모임을 통해 일상에서 접할 기회가 거의 없던 ‘농민의 과일’을 만나고, 먹는다.

배씨는 벗밭이 지난달 듣는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청년 식문화 토크’ 당시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벗밭은 청년 8명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들이 지향하는 식사와 실제 식사 간의 간극을 확인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거주지의 인프라 부족 : 도시 거주민의 지역산 식재료 확보 난항, 지역 거주민의 채식 먹거리 이용 난항 △돈의 부족 : 채식 먹거리·조미료의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시간의 부족 : 일과를 마친 뒤 시간이 늦어 요리할 시간·체력이 불충분, 이로 인해 배달음식·간편식 이용 △윤리적 식사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 분위기 : 육식 위주 체계, 채식주의자에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 등의 문제를 토로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청년들은 ‘개인의 의지’, 예컨대 주말에 시간 내서 주 1회 이상 집에서 밥을 만들어 먹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나, 여러 환경적 제약은 청년이 원하는 식사를 못하게 한다. 배씨는 “우리가 바라는 식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식품 시스템 속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소외되는 이들 없이 모두가 자신의 식사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주거·노동 등 다른 삶의 영역이 함께 개선돼야 먹거리기본권도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문형욱 기후위기기독인연대 공동대표도 청년 먹거리 문제를 청년의 ‘노오오오력’만으로 해결할 게 아닌, 정부·지자체 차원의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형욱 공동대표는 “기후위기로 인한 생존 불안, 경기침체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우울증 증가로 지친 청년들에게 비싼 농산물을 `알아서' 사 먹으라거나, 시간 좀 더 내서 요리를 직접 해 먹으라는 건 안 될 말”이라며 △스마트농업 대신 유기농업 확산·유기농산물 유통 중심으로의 정부 정책 조정 △유기농산물 가격조정 △청년을 위한 공유주방 운영 및 프로그램 지원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기농산물 가격조정과 관련해, 문 공동대표는 “휘발유 유류세는 유가 파동으로 인해 할인해주는데 왜 친환경먹거리는 여전히 비싸야 할까? 청년 유기농산물 바우처 또는 정부 차액지원을 통한 정부 차원의 유기농산물 가격조정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친환경먹거리 활성화 정책(바우처, 공공급식 등)에 대해, 충남 논산의 여성농민인 이수민 논산청년농부영농조합 이사는 “해당 사업의 수혜자들이 사업 종료 뒤에도 국내산·친환경 먹거리에 대해 고민하고 관심을 두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며 “사업비와 바우처를 통해 저렴하게 먹거리를 소비하는 과정이 끝난 뒤 그만큼 값이 싼 먹거리를 찾는 첫째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겠지만, 왜 바우처와 사업비를 써가며 이 먹거리를 제공했는지, 이 먹거리의 소비가 어떤 변화로 나아가는지에 대해, 이용자들이 알아서 찾아보게 만들지 말고 관련 정보제공을 의무화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교육도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 못지않게 먹거리의 생산과정 및 가치를 ‘알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건강한 먹거리 생산하는 청년농민, 그들의 먹거리기본권은 어디에?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2023 농업먹거리 청년 심포지엄 – 청년이 생각하는 먹거리기본권 실현방안은?’ 중 참가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2023 농업먹거리 청년 심포지엄 – 청년이 생각하는 먹거리기본권 실현방안은?’ 중 참가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경남 산청에서 온 청년농민인 이종혁 산청군농민회 사무국장은 농사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신념 아래 딸기를 가능한 한 친환경적으로, 땅에서 생산하고자 노력한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한 그지만, 정작 그런 이종혁 사무국장의 먹거리기본권은 안녕하지 못하다.

이 사무국장은 “농사짓다 보면 청년농민들은 식사를 거르거나 간단히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부터도 아침 7시부터 딸기를 수확해 오후 5시까지 출하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땐 신경이 굉장히 예민해진다. 출하 시간을 맞추려면 쉴 새 없이 일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아침은 안 먹을 때가 많고, 점심도 농막에서 요리해 먹기 곤란하다 보니 라면·빵으로 때우거나 그것도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했다.

이 사무국장은 동료 청년농민들의 이야기도 전했다 주변 동료들은 “급식시설에서 식사를 마련해 배달해주면 좋겠다”, “식당 바우처 카드가 있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 사무국장은 “그것마저도 제대로 식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농사일을 최대한 방해받지 않으려는 방편으로 이야기하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밝혔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자 분투하는 농민들이 건강한 삶을 살 방안을 정책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게 이 사무국장의 제언이다.

“우리가 시간과 여유를 가질 방안은?”

이날 참가한 청년들은 △청년은 먹거리기본권 문제 해결의 주체 △청년 먹거리기본권은 사회적·환경적 요인 해결이 병행돼야 실현 가능 △청년의 ‘느슨하지만 때로는 굳건히 뭉칠 수 있는 연결망’ 구축 등의 대의에 공감했다.

한살림연합 실무자 김진아씨는 “청년이 겪는 문제는 엄연히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할 문제건만, 젊은 사람들만의 문제로 여기며 청년을 대상화하니 정책도 지원정책 위주로 마련된다.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주체적 식생활이 어려운 청년들, 취사가 금지된 기숙사에서 밥솥을 숨겨가며 밥해 먹어야 할 정도로 주체적 식생활을 통제당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천원의 아침밥 같은 정책을 펼치는 건 기만”이라며 “청년을 문제시하지 말라. 배달음식 먹는 게 왜 문제인가. 그것은 청년이 스스로 먹는 문제를 중요시하기 어렵게 만드는 우리 사회가 만든 문제”라고 주장했다.

가톨릭농민회 실무자 이지웅씨 또한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있고, 밥을 제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청년이 시간과 여유를 가지도록 할 방안을 얼마나 고민했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한편 농먹청은 청년 먹거리기본권을 △먹거리 정보 접근권 △건강한 먹거리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이 땅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이용할 권리 △먹거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청년이 실천·교류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권리 등으로 정의한다.

특히 청년이 이 땅에서 만들어진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맛까지 음미하며 먹어야 한다는 입장 아래, 농먹청은 농업·먹거리 문제를 고민하는 광범위한 청년이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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