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장 연임법, 조합장들 간에도 의견 분열

친이성희 성향 전현직 조합장들 국회 앞 찬성 시위에

반대대책위 “상식·염치 내버리고 온 사람들” 맹비난

정명회 조합장들 “이성희 회장, ‘셀프연임’ 포기하라”

  • 입력 2023.11.21 14:11
  • 수정 2023.11.22 17:4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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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중앙회장 셀프연임법(「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두고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0일 일단의 전현직 조합장들이 국회 앞 상경시위로 법안 찬성 입장을 표하자 ‘농협조합장 정명회’ 등 다른 조합장들은 곧바로 반대 의견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 법안은 단임제인 농협중앙회장직을 연임제로 전환하면서 이를 현직 이성희 회장에게 소급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 자체의 도덕적 결함과 법안 진행 과정에서의 로비·인사청탁 의혹이 대두되면서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2회 연속 계류 중이다.

법사위의 벽이 점점 더 견고해지자 법안을 지지하는 지역농협 조합장들은 행동에 돌입했다. 지난 16일 농협 하나로마트 선도조합협의회(이성희 회장 참석) 직후 몇몇 조합장들이 전국 조합장 상경시위를 결의, 나흘 뒤인 20일 국회 본관 앞에 200여명의 전현직 조합장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농협중앙회 및 자회사의 이사 조합장들을 중심으로 이성희 회장의 지지기반인 수도권·대도시 조합장, 법안 로비·인사청탁 의혹의 중심지인 호남지역 조합장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회장을 선택하는 건 전국 농·축협 조합장들이지 법사위원들이 아니다.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회장 선거가 다가올수록 농협법 처리를 고의적으로 지연하고 있으니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연임제가 도입되더라도 그 선택은 조합장들의 몫이다. 그런데도 현 회장의 연임을 단정하며 법안처리를 미루는 건 조합장들의 의식수준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 역시 현장을 찾아 지지 의사를 밝혔다.

전국 농·축협 전·현직 조합장 200여명이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농협법 개정안의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국 농·축협 전·현직 조합장 200여명이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농협법 개정안의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편 시위 참여 인원이 조직 중이던 지난 주말 동안 농협중앙회의 개입 의혹이 등장해 농협 관계자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익명의 조합장들이 작성한 투서에 “농협 지역본부장이 참석을 부탁해왔다. ‘중앙회에서 직접 챙기는 일이라 이번에 동원하지 못하면 곤란해진다’고 했다”는 주장이 수록된 것이다. 일부 조합장들에겐 이성희 회장이 직접 연락을 해 참여를 부탁한 정황까지 확인되고 있다.

이에 법안 반대 비대위(농민단체·노조 등)는 20일 성명을 발표, “정부의 살농 정책과 농협중앙회의 협동조합 포기 행보엔 납작 엎드려 있더니 이성희 회장 셀프연임법 통과를 위해선 만사를 제쳐두고 서울까지 달려온 이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집회에 동원령을 내린 농협중앙회나, 오란다고 상식과 염치까지 몽땅 내버리고 온 사람들이나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꾸짖었다.

하루 뒤인 21일엔 개혁적 성향의 조합장 모임인 농협조합장 정명회가 성명을 발표했다. 정명회 조합장들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셀프연임제’로 인해 (동 법안에 담겨 있는) 중요한 농협개혁안들이 좌절돼선 안 된다”며 “현재로서 그 유일한 방법은 회장이 ‘셀프연임’을 내려놓고 법안 통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논란과 농협 내부의 분열을 막고 농협 발전을 이루기 위해 용단을 내리시라”고 촉구했다.

대부분 실명을 밝히길 꺼리지만 정명회 회원 외에도 상당수 조합장들이 이번 시위를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조합장은 “조합장들이 나설 일이 아닌데, 이성희 회장 쪽 ‘비선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연락을 돌린 것 같다. 지역농협 조합장으로서 우리 조직이 심히 우려된다. 정말로 농민이 잘살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데 중앙회장 선거 때문에 이래서야 되겠나”라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확인 결과 이성희 회장의 연임을 위한 법 개정 마감시한은 본후보 등록이 이뤄지는 1월 중순이다. 법안 반대 단체들이 당초 마감시한으로 판단했던 12월 초(선거공고일)보다 한 달 이상 늦다. 하지만 마감시한이 가까워올수록 ‘위인설법(특정인을 위해 법을 만듦)’ 논란은 거세질 수밖에 없으며 이미 법사위 내부에 부담감이 팽배해 있어 법안 통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2일 예정됐다가 여야 갈등으로 파국을 맞은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셀프연임법’은 애초에 상정되지 못했다.

전국 농·축협 전·현직 조합장 200여명이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농협법 개정안의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국 농·축협 전·현직 조합장 200여명이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농협법 개정안의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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