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책임진다던 정부, 수확기 산물벼 5만톤 ‘방출’

농식품부 “쌀값 영향 최소화 … 9월까지 ‘판매완료’ 조건” 해명

농민들 “원칙없는 방출, 차라리 쌀 목표가격 재도입하라” 비판

  • 입력 2023.08.17 18:46
  • 수정 2023.08.21 09:08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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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생산비 폭등과 기후재난을 겪으며 노심초사 벼농사를 해 온 농민들에게 ‘정부양곡 5만톤 방출’ 악재까지 겹쳤다. 농민들은 2023년산 쌀값 20만원을 공언하던 정부가 수확기를 맞아 쌀값을 위협하는 정부양곡 방출 결정을 내린 것에 불신감을 드러내며 맹비난했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는 지난 16일 정부가 소유한 산물벼 5만톤을 방출한다고 밝혔다. 업체들의 의향조사를 한 이후 방출이 진행되는 순서다.

전한영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공공비축으로 매입한 산물벼를 지난 6월에 전량 정부창고로 옮기겠다고 발표한 이후 산지쌀값이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올해 수확기 쌀값을 20만원선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지금 상승세로 추정하면 21만원까지 갈 것 같다”고 향후 가격상승에 무게를 뒀다. 이번 정부양곡 5만톤 방출 발표에 대해서 정한영 식량정책관은 농협·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들이 원료곡 부족을 호소했고 ‘부족 물량’을 낸다는 의미에서 전량 인수하려던 산물벼 중 5만톤 가량만 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확기 쌀값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조치로 △9월까지 판매 완료 조건을 내걸었으며 △산물벼 40kg 1등급 기준 6만7,280원으로 지난해 정부 수매가 대비 4.26% 오른 가격에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번 정부양곡 방출은 농협RPC조합장협의회 등 농협에서 적극 촉구했고, 지난 10일 농식품부에서 관계자들이 모인 회의를 통해 방출규모가 결정됐다.

그러나 불과 한 달 전만해도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에서는 ‘농협이 보유한 원료곡(벼)을 민간에 원활하게 공급하도록 정부가 노력하며, 정부양곡 방출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공공비축으로 정부가 매입한 산물벼를 정부창고에 입고한다는 것도, 수확기 쌀값 20만원에 대한 의지표명’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농민들이 원칙 없는 정부양곡 방출에 맹비난을 하는 이유다. 이번 정부 발표가 가격상승세에 제동을 걸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강원 철원군의 농민 김용빈씨는 “20~25일에 조생종 벼 수확을 한다. 정부가 물가관리 차원에서 농산물값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쌀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란 우려는 있었다”면서도 “5만톤이든 10만톤이든 방출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올해 쌀값을 결정하는 민감한 시기에 방출을 했다는 것 자체가 쌀값에 악영향을 준다. 필요할 때 언제든 정부양곡을 확보할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분명히 전달했기 때문에 쌀시세는 또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다”고 반발했다. 김용빈씨는 “이렇게 원칙없이 쌀을 방출하려거든 목표가격제라는 확실한 안정장치를 복원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전북 익산지역의 한 농민도 쌀 방출 소식을 듣자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올해 전남·북과 충남 등 벼 주산지에는 비·태풍 등 피해가 크다. 작황이 좋지 않고 잎집무늬마름병 등이 번져있다”면서 “생산비는 폭등했고 재해까지 겹쳤는데, 정부양곡이 방출되면 가격까지 폭락해 출구가 없다”고 낙담했다. 특히 정부가 올해 수확기 20만원을 목표라고 한 것도 정부의 명분쌓기용 값일 뿐이라며 “정부한테 원료곡 풀라고 촉구한 농협도 제정신이 아니다”고 질타했다.

전국쌀생산자협회(회장 김명기, 쌀협회)는 지난 16일 ‘수확기 농민쌀값 위협하는 쌀 방출 결정을 규탄한다’면서 성명을 냈다. 쌀협회는 “2021년처럼 쌀값 대폭락을 정부가 조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정부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하면서 약속한 쌀값 20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시장가격임에도 방출을 결정한 것은 결국 약속이행에 대한 의지에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또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의 태도는 더 가관”이라며 “농협은 정부양곡 보유벼의 재고가 많다며 산물벼 정부 인수를 요구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재고 부족을 이유로 방출을 촉구했다. 수확기 농민 쌀값은 낮추고 자신들의 유통마진만 높게 받겠다는 심사 아닌가. 농민을 위한다면서 탐욕만 채우는 농협 행태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규탄했다.

쌀협회는 이번 정부양곡 방출은 양곡관리법 개정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정부가 수확기 가격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농민들에게 밝힐 것을 촉구했다. 특히 나락값 1kg에 2,300원(40kg 벼 9만2,000원)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산지쌀값은 지난 5일 기준 19만1,844원(80k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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