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관원 주 업무는 ‘농민 통제·처벌’인가

  • 입력 2023.07.02 18:00
  • 수정 2023.07.02 21:01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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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올해 기본형 공익직불금을 신청한 농가를 대상으로 직불제 준수사항 점검 명목으로 감시 활동을 진행하는 가운데 농관원의 `직불금 후려치기'에 대한 농민들의 원성이 높다. 사진은 수십 년간 농지로 이용했으나 ‘임야’라는 이유로 공익직불금을 받을 수 없었던 ‘직불신청 불가’ 농지. 한승호 기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올해 기본형 공익직불금을 신청한 농가를 대상으로 직불제 준수사항 점검 명목으로 감시 활동을 진행하는 가운데 농관원의 `직불금 후려치기'에 대한 농민들의 원성이 높다. 사진은 수십 년간 농지로 이용했으나 ‘임야’라는 이유로 공익직불금을 받을 수 없었던 ‘직불신청 불가’ 농지. 한승호 기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서해동, 농관원)에 대한 현장 친환경농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농민을 통제 대상으로 여기며 주기적으로 기본형 공익직불금(기본직불금) ‘후려치기’에 나서는 기조, 일부 지역 농관원이 농가 차원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채종하던 토종종자가 친환경 인증필지 내에 있다는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기조. 농민, 특히 친환경농민들은 이러한 농관원의 행태를 규탄하고 있다.

자가소비용 채종 토종작물에 과태료를 부과?

전북 장수군에서 17년째 친환경농사를 지어온 이필재·정유생씨 부부. 이들은 지난 5월 31일 농관원 전북지원 장수사무소의 모 주무관으로부터 “인증필지 내 11개 품목이 인증서 목록에 기재되지 않았기에 과태료 처분대상”이라는 고지를 들었다.

‘과태료 처분대상’인 품목은 청상추 7포기, 우엉 1포기, 고수, 근대, 아욱, 배추, 고추, 감자였다. 모두 이씨·정씨 부부가 채종을 통해 자가소비할 목적의 토종종자였다. 친환경인증을 받아 판매할 목적의 농산물은 인증서에 기재해야 하지만, 자가소비·채종 목적의 소량 생산물은 굳이 생산계획서와 인증품목에 기재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이씨·정씨 부부는 결과적으로 농관원 측으로부터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장수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 익산·김제·고창 등 전북 내 타 지자체에서도 벌어졌다는 점이다. 모두 장수에서 이씨·정씨 부부에게 과태료를 처분했던 주무관의 전출 이력이 있는 곳이라는 게 한국친환경농업협회(회장 강용) 측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친환경농업협회는 지난달 26일 낸 입장문에서, 농관원이 지난해 발간한 친환경농업 의무교육 교재 3장(인증기준에 맞는 종자 사용원칙)의 “지역 환경과 토양에 잘 적응된 유기종자 또는 인증기준에 맞게 재배된 종자 사용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인용하며 “대다수의 친환경농민은 유기종자를 구할 수 없으므로 인증기관의 증명과 허락하에 예외적으로 관행종자를 사용한다. 이필재·정유생씨 부부는 지역과 농장에 잘 적응된 토종종자를 기르고 채종하는, 인증규정을 훌륭히 지키는 유기농민”이라고 언급했다.

세계 각지에서 세운 유기농업 관련 기준, 특히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의 기준을 봐도 토양 비옥도와 생물활동의 증진·유지를 위해 다양한 작물을 심어 자연환경과의 공생을 추구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한국친환경농업협회는 “꼭 농산물을 생산해 시장에 팔아야 농업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토양 물리성 향상과 채종으로 농장 내 순환을 활성화하는 것은 더 경제적인 일이다. 이필재·정유생씨 부부가 받은 부당한 과태료 처분은 꼭 철회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시 도래한 농관원 발(發) ‘기본직불금 후려치기 시간’

농관원은 올해 기본형 공익직불금(기본직불금)을 신청한 133만여 농가(신청면적 약 114만ha)를 대상으로 ‘직불제 준수사항 점검’ 명목의 감시 활동을 지난 1일 시작해 오는 9월 15일까지 진행한다.

기본직불금 신청 농민들은 농관원이 규정하는 17가지 의무 준수사항을 지켜야 하는데, 올해 농관원은 이 중 △농지형상·기능 보전 △영농폐기물 관리 △마을공동체 활동 △영농일지 작성 등 4가지를 중점 점검하겠다는 계획이다.

농관원 측이 농지형상·기능 보전 여부를 살핀다는 건 ‘농작물의 생산이 가능하도록 토양을 유지·관리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살피겠다는 뜻이며, 마을공동체 활동 여부를 살핀다는 건 마을축제, 마을 주변 청소 등 ‘농촌사회 공동체 활동 참여 여부’를 따진다는 뜻이다.

농관원은 점검결과 준수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농민에겐 지자체와 해당 정보를 연계해 준수사항별로 공익직불금 총액의 5~10%를 깎아 지급하고자 하며, 같은 준수사항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반복해서 ‘위반’할 시엔 감액률 2배 적용, 즉 깎는 금액을 2배 늘린다고 밝혔다.

영농폐기물 미관리, 마을공동체 활동 불참, 영농일지 미작성 건의 경우 금액을 5% 깎으며, 그 외 14가지 준수사항을 미준수시 10%의 금액을 깎는다.

일부 농민들은 농관원의 ‘기본직불금 후려치기’ 행태를 비판한다. 강원도 의 농민 L씨는 지난 2021년 8월의 경험을 이야기한 바 있다. 700평 가량의 친환경 벼 농지 한 켠에 인근 축산농가들로부터 구해 사용하고 남은 퇴비를 비닐에 덮어 저장했는데, 농관원이 그 퇴비를 발견하고 ‘농지형상 보전의무 위반’이라며 직불금 10% 삭감 통보를 해왔다는 것이다. 퇴비를 마땅히 저장할 공간도 없고, 어차피 농지에 투입해야 할 퇴비를 농지 한 켠에 저장한 것이 ‘농지형상 보전의무’를 어겼다는 것이다.

L씨는 “농관원은 농지형상 보전 여부를 확인한다는 명목하에 드론까지 동원해 온 사방의 농지를 살피더라. 농관원은 사실상 친환경농업 ‘육성’보단 ‘감시’와 ‘통제’에 더 방점을 찍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며 “이런 식의 규제 중심 정책하에서 친환경농사를 짓기는 어렵다는 생각, 친환경농사 자체가 일반농사보다 훨씬 어려운데 관련된 농사기술은 확보하기 어렵다는 생각 등이 어우러져, 조만간 친환경 벼농사는 그만두려 한다. 그냥 일반농사로 전환하련다”고 토로했다.

한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현장 농민들이 실천하는 무경운 농법 실천농지 또한 농관원, 나아가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 관점에선 ‘농지형상이 보전되지 않은 농지’로 간주돼, 직불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농식품부는 기본직불금 지급 대상 농지를 ‘1회 이상 경운을 실시한 농지’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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