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은 생산하건만 ‘직불제’에선 배제된 농민들

  • 입력 2022.04.17 18:00
  • 수정 2022.04.17 22:5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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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사지으며 ‘공익’을 생산하는 농민이 정작 ‘직불금’은 못 받는 상황. 누군가는 자신의 농지가 없어서, 또 누군가는 농사를 지음에도 국가가 규정한 농사방식 표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공익직불금 대상에서 소외됐다. 농업·농촌의 공익 증진에 기여하는 농민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공익직불제는 이런 상황에서 “누구를 위한 직불제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여전히 남아있는 독소조항

공익직불금의 절대치를 차지하는 기본형직불금과 관련해 농민들이 특히 문제 제기하는 독소조항은 △2017~2019년 중 1회 이상 직불금을 지급받은 농지 △옛 직불제(쌀·밭 고정직불, 조건불리직불) 대상이었던 농지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한 곳에만 직불금 자격이 주어진다는 내용이다.

강원도 홍천군에서 4년째 친환경농사를 짓는 강석헌 씨는 이 독소조항 때문에 지금도 직불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으나, 2017~2019년 딱 3년 동안 강씨의 농지에서 농사짓던 농민이 직불금 신청을 안 했다는 것이다. 이 독소조항이 사라지지 않으면 강씨 뿐 아니라 누가 이 1,300여평 농지에서 농사짓건 직불금을 받을 수 없다.

강씨는 “2017~2019년에 아프거나 다쳐서 농사를 못 지어도 그것은 고려대상이 안 된다. 이 조항은 청년농민 또는 귀농자의 지역 정착에도 심각한 진입장벽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명분은 부재지주들의 직불금 부당수령 사례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지만, 부당수령 문제는 별도의 규제와 농지 전수조사 등을 통한 감시로 해결할 문제다. 2020년 이래 계속 이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고 토로했다.

2017~2019년 직불금을 받지 못한 농가가 불가피한 사유를 증빙할 수 있다면 직불금 지급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됐으나, 불합리한 사항은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2일 충북의 한 산촌 지역에서 농사짓는 농민과 함께 둘러본 ‘직불신청 불가’ 농지. 수십 년간 농지로 이용했으나 ‘임야’라는 이유로 공익직불금을 받을 수 없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충북의 한 산촌 지역에서 농사짓는 농민과 함께 둘러본 ‘직불신청 불가’ 농지. 수십 년간 농지로 이용했으나 ‘임야’라는 이유로 공익직불금을 받을 수 없었다. 한승호 기자

특정 농지에서 실제로 농사를 지음에도 직불금을 정당하게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충북 한 지역의 산골에서 고추·대추 등의 품목을 친환경 방식으로 재배하는 농민 J씨는 최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지역사무소로부터 9군데 농지에 대한 ‘직불신청 불가’ 통보를 받았다.

농관원 지역사무소가 내민 ‘직불신청 불가’ 사유 중 일부를 보자. 첫째, 지적(토지 이용 목적)이 ‘임야’라서 안 된다. 임야는 임업직불금 신청만 가능하고 공익직불금 신청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J씨는 해당 농지에서 고추농사를 지어왔다. 농지 옆엔 생협 생산자의 농지임을 표시하는 팻말이 있었다. J씨는 “산림청 측에선 수십 년간 논·밭으로 이용해 온 농지에 임산물을 심어야 한다고 했다”며 “졸지에 고춧대 다 뽑아내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야 할 상황”이라고 증언했다.

둘째, ‘농지형상 보전’이 안 돼 있기에 안 된다. ‘농지형상 보전’ 원칙은 논·밭에 건물을 짓거나 농지를 훼손하는 등의 상황을 막기 위해 마련된 원칙이다. 문제는 농관원이 농지형상 보전대상으로 삼은 곳 중 친환경 과수를 초생재배한 농지, 무경운 농지, 휴경지, 멧돼지가 수시로 출몰해 농지 관리가 어려운 농지 등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이다. 무경운·초생재배, 또는 휴경을 통한 농지 지력 향상은 국가 ‘표준농법’이 아니라서 ‘농지형상 보전’이 어렵기에, 국가 지정 ‘공익’에서 배제된다는 뜻이다.

J씨는 문서를 보여줬다. 기본형직불금을 지급받기 위한 17가지 준수사항 중 ‘농지형상 및 기능유지’ 항목을 ‘위반’했다는 내용으로 J씨 등 지역농민 78명에게 보낸 통지서였다. ‘위반사항’은 공부상 면적 628㎡의 농지 중 45㎡에 창고가 들어서 있다는 내용이었다.

창고에 가 봤다. 늦어도 1960~70년대 새마을운동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슬레이트 지붕 창고였다. 그 창고는 마을에서 과거부터 장례식에 사용해 온 상여 및 장례 물품이 보관된 창고였다. 그 옆엔 지금도 실경작이 이뤄지는 농지가 있었는데, 그 곳이 ‘농지형상 유지항목 위반’ 농지다.

J씨는 “한마디로 창고를 없애고 상여를 딴 곳으로 치워야 ‘준수사항’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창고를 없애면 상여와 장례 물품은 어디 두란 말인가. 농가에서 보관해야 하나? 별도의 창고를 새로 지어야 하나?”라며 “지금은 이 상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랜 세월 사용해 온 상여는 ‘문화유산’이라는 게 농촌의 공익적 기능 논의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지 않나. 저 상여를 잘 보관하는 것은 ‘공익’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누구를 위한 공익직불제인가?

J씨는 “농정당국은 해당 농지가 직불금 지급대상이 맞는지 아닌지를 살피고자 위성사진 촬영 방식까지 동원했다. 정작 불경지 기준도 명확하지 않아서, 정말로 농지관리를 잘 못했던 곳은 경지로 인정하더라”라며 “(농정당국이) 직불금 지급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혈안이 됐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라고 밝혔다. 누군가는 J씨가 실경작자가 아닌 거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겠지만, J씨는 그 산골의 농민공동체에서 10여년간 생태농사를 지어왔다. 그가 ‘실경작자’인지 아닌지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물어만 봐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홍천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민 K씨는 기본형직불제의 준수사항 중 일부 내용에 대해 쓴소리했다. K씨는 “원론적 수준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농업·농촌 공익증진 교육’을 받기 위해 온라인 영상을 틀어야 하는데, 이걸 제대로 교육받나 안 받나 살피겠다는 건지 영상 1.5배속이나 중간 스킵(영상 넘어가기)도 안 되고, 2분에 한 번씩 영상을 클릭해야 하는 등 별 의미 없는 장치는 잔뜩 담아놨다”고 한 뒤 “영농일지 작성 문제도 그렇다. 고령농들 중 한글을 읽지 못하거나 시력이 안 좋아 부득이하게 작성 못하는 농민도 준수사항을 ‘위반’하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K씨는 또한 “정부는 공익직불제 개편 과정에서 쌀 농가 소득안정을 위한 변동직불금은 폐지해 놓고서, 정작 법적으로 규정된 쌀 시장격리 약속은 지키지도 않았다. 누구를 위한 공익직불제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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