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투기는 현재진행형 … 농지법 취지 무색케 하는 구멍들

농민들 “농지투기에 대한 법적 책임 제대로 물어야”

농지보존 취지 위해선 농지 취득 조건 더 강화해야

  • 입력 2023.06.11 18:00
  • 수정 2023.06.12 09:14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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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난달 지자체 현역 의원들의 농지투기 의혹이 경북과 전북에서 앞다퉈 터져 나왔다. 해당 지역 농민과 시민사회는 이들이 정치 지도자이자 공직자로서의 도의를 저버렸다고 규탄했지만, 이들에 대한 법적, 윤리적 책임을 누구보다 먼저 물어야 할 소속 의회와 정당은 조용하다.

이에 창녕군농민회(회장 강창한)와 창녕군정의실천연대(대표 김미정)는 지난달 30일 이경재 도의원(국민의힘)을 농지법 위반 혐의로 경남경찰청에 고발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의장 이대종)과 전주시민회는 이기동 의장(더불어민주당)이 “고위 공직자로서 헌법상 경자유전의 원칙을 위반했다”며 사퇴를 촉구한 상태다.

창녕군농민회와 창녕군정의실천연대가 지난달 24일 ‘이경재 도의원 농지법 악용·땅 투기 철저하게 고발조치(행정)·수사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창녕군농민회 제공
창녕군농민회와 창녕군정의실천연대가 지난달 24일 ‘이경재 도의원 농지법 악용·땅 투기 철저하게 고발조치(행정)·수사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창녕군농민회 제공

이번 사태를 접한 농민들은 농지법이 강화됐지만 농지취득자격증명 내용과 달리 허위 경작, 농지 불법 임대 등 농지법 위반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법망을 교묘히 피한 농지투기도 계속되는 만큼 실제로 농사짓는 이들만 농지를 취득하도록 농지법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강창한 창녕군농민회 회장은 “이경재 도의원은 공인이기에 더 문제다. 이 도의원뿐 아니라 일반인의 농지투기도 만연해 있다. 일단 공인부터 법적 책임을 제대로 져야 일반인도 경각심을 갖지 않겠나”라며 “우리 농민회에도 땅을 임대해 하우스 농사짓는 회원들이 있는데, 땅 주인이 실제 농사를 짓지 않는데도 농지를 산 사례들이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땅 주인이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하우스는 농민 소유라 철거하거나 놔두고 가야 하는데 소유권이 있으니 버릴 수도 없고, 철거한다 해도 또 돈이 들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이경재 도의원과 똑같은 사례다. 본인이 직접 경작하지 않을 뿐더러 계약서도 쓰지 않고 임대차를 한 것”이라며 “(계약서 없는)임대농은 경영체 등록을 할 수 없어 실제로 농사지으면서도 관련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개정 농지법의 농지보존이란 취지는 좋지만, 적용에선 구멍이 많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실상 투기’지만 불법은 아닌 농지취득 때문이다.

이문옥 전주시민회 사무국장은 “이기동 의장은 전북도 5개 시·군에 논밭이 있는데 그걸 다 농사지을 수 있겠나? 불가능하다. 그래서 농사짓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며 “보유 토지 대부분이 형제, 배우자의 동서지간, 아버지와 공동 소유다. 세금을 줄이기 위한 꼼수로 법을 잘 아는 가족의 조직적 농지투기”라고 비판했다.

정충식 전농 전북도연맹 사무처장은 “이기동 의장의 경우 나무를 심어놓거나 농어촌공사 농지은행에 임대해서 법적으론 문제없게 했지만, 도덕적으로 비판받아야 한다. 농사짓기 전인데도 논을 밭으로 변경해 나무를 심어놓고 나중에 목재로 쓴다고 하더라. 이 의장이 지금 60세다. 목재로 쓰려면 수십 년이 걸릴 텐데 아마 죽어서도 못 쓸 거다”라며 “사실상 투기다. 이를 인정조차 안 하는데 이 의장의 양심에 맡겨야 하니 안타깝다”고 전했다.

현재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 임대수탁제도의 수탁요건에는 농지 보유기간 기준이 없다. 농지 취득 직후 한국농어촌공사에 임대를 맡기면 헌법과 농지법에 따른 자경 및 농업경영이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도 취득 농지를 계속 소유할 수 있어 농지 투기에 악용되고 있다. 이에 보유기간 기준 설정과 농지이용실태 조사를 통한 농지 처분 사유 검증을 강화하라는 내용의 개정안(주철현 의원 등 11인)이 국회 계류 중이다.

정 사무처장은 “농민들은 오히려 법을 착실히 지키려 노력하는데 권력 있고 정보를 빨리 얻는 위치의 사람들이 법을 교묘히 피해 투기한다”라며 “농지와 농민을 위한 법이란 큰 틀은 맞는데 적용에서 투기꾼들이 맘껏 투기할 수 있으니 실질적으로 농지법에 구멍이 많은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강창한 회장은 “실제로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누가 봐도 이경재 의원 본인이 농사 안 지을 거 빤하잖나. 그런데도 농사짓겠다고 땅을 사고 담보 대출(농협)도 해줬다”면서 “정말 농사지을 사람인지를 심사하는 절차가 더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현행 농지법의 ‘구멍’이 지적되지만, 농지법 개정 뒤 농지취득 자격심사가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승한 농식품부 농지과장은 “조사·분석 결과,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긴 어렵지만 강화된 농지 취득 사전 절차가 투기 방지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개정 전 심사에선 자경 의사가 있다고만 하면 보통 통과됐고, 심사절차도 지자체 담당자가 단독으로 처리해 이른바 ‘가짜 농민’도 농지를 사기 쉬웠다. 이 때문에 농지 거래가 어려워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현장 농민들은 실제로 농사짓는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한다.

2021년 3월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서 열린 ‘LH 농지투기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농민이 ‘농지투기 원천 차단, 농지법 전면 재개정'을 촉구하는 선전물을 들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21년 3월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서 열린 ‘LH 농지투기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농민이 ‘농지투기 원천 차단, 농지법 전면 재개정'을 촉구하는 선전물을 들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지법, 진짜 농민·농촌에 도움되려면…

농지법이 투기에 악용되지 않고 농민·농촌에 진짜 도움이 되려면 어떤 장치가 더 필요할까? 농지가 삶의 필수인 농민, 농지의 공공성 유지를 책임지는 농정 당국의 입장을 각각 들어봤다. 농민 대표는 조병옥 전농 부산경남연맹 의장(전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지분과위원장), 농정 당국 대표는 이승한 농식품부 농지과장이다.

먼저 최근 농지법을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조 의장은 “농지법이 1996년 제정 뒤 18번 개정됐는데, 17번이 아무나 농지를 살 수 있게 문턱을 낮추는 것이었다. LH사태로 그나마 문턱이 약간 높아졌지만 농민은 아무 문제 없다”면서 “주식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정상이듯 농지가격도 그렇다. 산 사람은 비싸게 팔고, 사려는 사람은 싸게 사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일 뿐이다. 그런데도 경남도의회는 한쪽 편에서만 땅값 떨어지니 농지법을 완화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들이 말하는 시장질서에도 맞지 않는다”라고 일갈했다.

이승한 과장도 이를 강화된 농지법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고 봤다. 이 과장은 “경기 침체와 이자율 급등으로 농지뿐 아니라 전국 부동산 거래가 급감했다”면서 “특히 경남도의회가 농지 가격 급락의 사례로 밀양을 들었는데, 밀양은 영남권 신공항 대상 지역 검토라는 개발 호재로 매매가가 급등락(약 3~8배)한 영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농지법에서 먼저 손봐야 할 점으로 조 의장은 △8년 자경 양도세 면제·감면제 폐지(「조세특례제한법」에 해당. 농지를 8년 이상 경작하면 자격 조건에 따라 양도소득세 감면 및 면제) △농업진흥지역 외 주말·체험영농용 농지 소유 허용 폐지 △농지이용실태조사 내실화 △농지 전수조사 및 (농민 이용 가능한)자료화를 들었다.

조 의장은 “8년 자경 양도세 감면제는 부재지주와 임대농을 양산해 실제 농사짓고도 직불금 등을 받을 수 없게 한다”라며 “농업진흥지역 외에서 취득하는 주말체험농장용 농지도 실제로는 대부분 별장·농막용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형식적인 농지이용실태조사부터라도 제대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지법은 자경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농지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지만 10개의 예외 규정을 둔다. 그 가운데 농업진흥지역 외에서 주말·체험영농용 농지 소유(총 1,000㎡(약 300평) 미만)가 허용된다. 농지이용실태조사는 농지의 소유·거래·이용·전용 등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는 행정조사로 2022년부터 매년 의무 실시된다.

이승한 과장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상속·부재지주 같은 현실 문제를 무시할 순 없다. 농지 소유자와 경작자가 달라도 농지를 농업용으로만 쓰도록 제도를 바꿔가야 한다”면서 “농지 소유나 자경 요건을 전국에 획일적으로 적용하기보단 소멸지역에 한해 농지 임대는 좀 유연하게 적용하되 해당 농지가 농업용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지 투기 예방책으로 개발행위에 관한 법률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보통 개발 정보나 소문을 먼저 접한 이들이 투기하므로, 지금처럼 개발 예정지를 먼저 선정·발표하지 않고, 입지 협의와 선정 등 관련 논의를 모두 마친 뒤 지정·고시하고 동시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게 하면 투기를 막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승한 과장은 “각 부처나 민간 기업별로 먼저 발표해 ‘거기 개발된대, 뭐 들어선대’ 하면 그때 이미 투기 세력들이 들어가 땅값은 물론 개발 비용도 오른다”면서 “이후 사업이 좌초돼도 이미 높아진 땅값 때문에 정작 농사지으려는 이들만 피해를 입는다. 투기세력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으니 사들인 땅을 바로 내놓지 않아 결국 농지거래까지 막힌다”고 설명했다.

즉 개발정보 공개에 앞서 농지관리 계획과 농촌공간 정비계획을 함께 세워 난개발이 되지 않도록 부처와 기관 간 입지 협의를 끝낸 뒤 발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승한 과장은 “이를 위해선 관련 법들의 방향을 맞추고, 관련 부처·단체, 농민 등 이해당사자 각각의 요구를 충분히 조율해야만 긍정적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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