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인한 이른 개화, 과수 냉해 부추겼다

까맣게 타들어 간 꽃 … 전국 각지서 저온피해 발생

농민들 “피해 ‘상상 이상’, 영농 지속 가망 없을 지경”

심화되는 기상이변 속 재해대책 강화 필요성 대두

  • 입력 2023.04.21 14: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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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9일 전북 장수군 계북면 매계리 일원에서 박인석 계북사과연구회장이 냉해를 입은 과수원을 응시하고 있다. 꽃이 만발해야 할 과수원은 냉해로 꽃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었다.
지난 19일 전북 장수군 계북면 매계리 일원에서 박인석 계북사과연구회장이 냉해를 입은 과수원을 응시하고 있다. 꽃이 만발해야 할 과수원은 냉해로 꽃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었다.

 

사과·배·복숭아·떫은감 등 품목을 구분할 필요 없이 과수 냉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농민들은 올해 초 따뜻한 날씨로 개화가 약 일주일가량 앞당겨졌고, 이후 갑작스러운 영하권의 저온 탓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과수 냉해는 최근 전국에서 확인되는 추세다.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배 농민들은 올해 냉해 예방을 위해 방상팬과 미세살수장치, 연소장치 등의 노력을 평소보다 더 기울였지만, 이상저온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며 생산성 하락과 상품성 저하 등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게다가 천안배원예농협 관계자에 따르면 관내 배 농가 중 냉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농작물재해보험 특약에 가입한 농가는 절반도 안 돼 농가 경영에 큰 타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난 19일 천안시 성환읍 왕림리 일원에서 만난 농민 조일암씨는 “특약 가입 여부에 따라 농가가 부담하는 보험료 차이가 3배나 난다. 보험에 가입해도 자기부담비율 20% 제하고 나면 실제 보상받을 수 있는 금액이 많지 않기 때문에 특약에 가입하지 않는 농가가 많은 게 사실이다”라며 “올해는 꽃이 평소보다 일주일 정도 빨리 폈는데, 3월과 4월에 이상저온이 몇 차례 발생해 꽃이 50% 이상 죽어버렸다. 암술머리를 살펴보면 까맣게 타들어 간 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다”라고 토로했다.

덧붙여 조씨는 “연소제도 피워보고 어떻게든 피해를 줄여보려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피해는 피해대로 발생해 착잡한 심정이다. 지금 착과된 것도 살펴보면 늦게 펴 냉해를 입지 않은 세력 약한 꽃이 대부분으로, 저온 영향을 일부 받아 과실이 정상적이지 않고 비스듬한 모습인데 수세 유지 차원에서 이걸 적과해 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라면서 “농민들은 팔 수도 없는 과실을 내년, 내후년 농사 때문에 억지로 키워낼 수밖에 없는데 보험사에서는 피해율을 오직 착과량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상품성 떨어지는 이러한 과실들을 피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농민들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라고 전했다.

전북 장수군 계북면의 사과 농가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19일 계북면 매계리 일원의 사과 과수원에서 만난 박인석 계북사과연구회장은 “평상시 같으면 지금 꽃이 만발해 있어야 하는데, 보다시피 꽃이 보이질 않는 지경이다. 냉해를 입어 꽃이 아예 피질 못한 거다. 솎아낼 꽃이 없기 때문에 적화는 생략한 채 벌통을 갖다두고 수정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라며 “현재 (가장 상품의 과실을 얻을 수 있는)중심화를 찾아볼 수 없다 보니 수정이 된다 해도 상품성 있는 좋은 과실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직 수세 유지 차원으로 나무를 관리하는 것밖에 안 된다. 농민들이 보기엔 피해가 100%에 이르는 경우도 많은데, 농작물재해보험에서 보장하는 냉해의 경우 태풍 등과 달리 보상률 자체가 적어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 몫이 될 전망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박 회장은 “이 정도 수령이면 나무당 사과가 적어도 150개는 달려야 하는데, 지금은 30개나 달리면 다행인 지경이다. 농민들 입에서 ‘올해 농사는 포기할 판이다’라는 말이 도는 이유다. 전부 빚더미에 앉게 생겼다”라며 “과거 냉해로 보험금을 수령한 농가는 피해율의 50%만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자부담비율을 제해야 한다. 사실상 농약대 정도밖에 안 되는 보험금도 보험금인데 과일을 못 달면 수세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해 약제비 등 생산비는 평상시보다 더 들어가는 반면, 기형과가 발생할 확률은 더 크고 이러한 기형과는 정상적으로 판매할 수도 없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떫은감 주산지인 전라남도 영암군에서도 피해가 확인되고 있다. 정철 영암군농민회장에 따르면 피해율은 70%에 육박한다. 정철 회장은 “언론 등에선 피해율을 60% 정도로 잡는데, 농민들이 보기엔 피해율은 70% 이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피해가 심한 것으로 파악된다”라며 “이전에는 영하권 저온이 원인이었다면, 올해는 이례적으로 따뜻한 기온이 계속되다가 일시적인 저온 현상으로 나무가 피해를 입은 것 같다. 반복·심화되는 이상기후에 대응한 농업 재해대책 개선·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농민들은 운영사 적자 예방을 이유로 거듭 개악한 농작물재해보험을 현장에 맞게 대폭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기존에는 특약 가입 없이 종합보험 가입만으로 냉해의 80%를 보장해줬는데, 보험도 피해가 잦아지고 보험사에서 내줘야 할 보험금이 많아지자 특약 가입으로 냉해 보장을 따로 분리하고, 보장비율도 50%로 대폭 줄였다. 농민들 영농 지속을 위해 마련된 정책보험이 왜 보험사 운영을 우선시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며 “올해 전국적으로 냉해 규모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생계를 걱정할 농민도 많다는 걸 정부가 꼭 알았으면 한다. 현행 농작물재해보험은 재해대책으로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재해대책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전국에 걸친 과수 냉해 발생 상황을 인지 중이며, 시간 경과에 따라 피해 여부가 추가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만큼 한 달 정도 기한을 두고 피해 집계에 나서겠단 계획이다. 지난 17일 기준 농식품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전국 저온피해 면적은 2,079.6ha에 달한다. 지역별로 전라북도과 경상북도, 충청북도의 피해면적이 각각 620.8ha와 533.2ha, 392.1ha 순이며, 품목별로는 사과와 복숭아, 배 피해면적이 각각 858.5ha, 541.8ha, 407.7ha 수준으로 확인된다.

냉해로 꽃이 전부 떨어진 사과나무의 모습.
냉해로 꽃이 전부 떨어진 사과나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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